28개월 아기 이야기
28개월인 딸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책을 들고 온다.
"엄마, 이거 읽어줘."
할 일이 있거나 나가야 할 상황이 아니면 바로 읽어준다. 읽어줄 때 연기하듯 읽어주는 게 좋다고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동물 등 상황에 맞게 연기를 하며 읽는다. 이렇게 여러 권 읽어주다 보면 어느 날은 턱이 아플 때도 있다.
난 아이가 6개월 때부터 책을 읽어주었다. 난 4녀 1남의 셋째로 큰언니가 산 책을 둘째 언니네 아이들이 읽고 나한테까지 오게 됐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 교육에 열심인 친구가 준 책까지 어렵지 않게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넓은 집에 사는 게 아니라서 책도 짐이 될까 봐 친구가 책을 준다고 했을 때
"괜찮아. 도서관에서 빌려 볼게."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물건을 집에 쌓아놓기보다는 빌려 쓰고 반납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친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집에 책을 비치해 놓는 게 아이한테 좋아. 빌려보는 거랑 또 달라."라고 했다. 그때부터 책을 받았고 책꽂이에 비치해 놓았다.
6개월 아이라 겨우 목이나 가누는 정도로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나름 싫어하지 않고 책에 시선을 주었다. 그렇게 계속 꾸준히 읽어주자 어느 날부터는 좋아하는 책을 갖고 오기 시작했다. 특히 돌즈음에는 프뢰벨에서 나온 제인 카브레라의 '음매음매'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한번 읽어주면 또 읽어달라고 했다. 며칠 동안 그 책만 갖고 온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다른 책에 관심을 갖았고 읽어달라고 했고 들고 오는 책이 달라졌다. 어느 날은 하루종일 10권 정도 갖고 왔고, 많이 갖고 오는 날은 20권도 갖고 왔다. 코로나에 온 가족이 걸려 일주일간 집에 격리됐을 때 아이는 하루종일 책을 갖고 왔고 계속 읽어주다 턱이 아픈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18개월쯤부터 책을 갖고 오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발달과정상 18개월부터는 다른데 호기심이 많이 생겨 책을 보는 횟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난 아이가 책을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읽기를 바랐기 때문에 억지로 책을 읽혀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한 권도 안 갖고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이가 이러다 책을 안 읽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인근 도서관 프로그램 중 독서교육에 대한 김은하 작가의 강연이 있어 들으러 갔다. 독서교육, 문해력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강연 후 질의응답시간이 있었다. 내 차례가 됐다.
"25개월 딸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6개월부터 책을 읽어줬고요. 아이가 책을 좋아해서 한때는 하루에 20권도 읽어 줬습니다. 그런데 18개월부터 책을 안 읽기 시작하고 어느 날은 한 권도 안 읽을 때도 있습니다. 전 아이가 책을 싫어하게 될까 봐 억지로 안 읽어주는데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다시 책을 좋아하게 될까요?"
"아이는 책을 어른이 생각하는 학습 개념이 아니고 놀이 개념입니다. 그래서 책에 대해 재미있는 것, 즐거운 것,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등으로 생각하게 해 주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면 책을 읽어줄 때 안아주면서 읽어주면 아이는 스킨십이 좋아서 책을 들고 올 수도 있습니다. 책을 갖고 꼭 읽어주지 않고 놀이를 해도 좋고요. 읽어줄 때 역동적으로 읽어줘서 아이가 책은 재미있는 거라고 느끼게 해 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억지로 안 읽히는 것은 잘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아이가 책을 갖고 왔는데 '엄마 피곤해. 다음에 읽어줄게.' 이런 식으로 하면 아이가 점점 책을 안 갖고 오게 되니 아이가 요청할 때 힘드시더라도 가급적 즐겁게 읽어주시는 게 좋습니다."
김은하 작가의 강연과 질의응답은 꽤 큰 도움이 됐다. 난 그날부터 딸아이가 책을 갖고 오면 최대한 노력해서 연기하듯 읽어줬다. 사실 아이가 책을 갖고 오고 읽어달라고 하면 그것을 바로 해주고 계속해주는 게 쉽지는 않다. 나도 할 일이 있고 또 귀찮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간을 내야 한다. 하지만 아이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귀찮아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기에 이후로는 아이가 원하는 만큼 읽어주려 노력했다.
22개월 전까지 단어만 몇 개 말하던 아이는 22개월 어느 날 분유를 주는 나에게 "안 먹을 거야."라고 말하며 처음으로 문장을 말했다. 그때부터 말이 늘기 시작했다. 명절에 외갓집에 가서 사촌오빠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7살 조카가 말했다.
"아기가 왜 이렇게 말을 잘해요?"
아기인데 말을 잘하니 신기한 모양이다.
둘째 언니는 아이가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자
"마트에 자주 데려가. 그럼 말이 금방 늘어."라고 했다. 그때부터 어린이집 하원하면 근처 대형마트에 데려갔다. 책은 평면이라 책보다는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는 글을 보기도 했다. 마트를 가면 채소부터 과자, 심지어 물고기, 햄스터까지 있으니 말 늘리기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마트에 가면 질문을 많이 했다.
"엄마 이거 뭐야? 저건 뭐야? 등"
28개월인 요즘 다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많이 갖고 오는 날은 20권도 갖고 온다. 최근엔 친구가 책을 정리한다며 또 책을 한 상자 줬다. 친구 딸은 내 딸보다 4살이 많아 옷도 받아 입고 정보도 얻고 여러모로 좋다. 친구에게 받은 책을 딸아이 방 한쪽 편에 쭉 나열해 놨다. 아이가 하원 후 집에 와서 방을 보더니
"와우"
소리 지른다. 그리고 곧장 달려가 뒤지더니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엄마. 이 책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