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 Mar 20. 2024

엄마. 안 이뻐!

29개월 아이 이야기

에어로빅을 가기 위해 전에 요가할 때 입던 요가복을 챙겨 입었다. 하은이는 아침마다 옷을 고르는 일로 20~30분을 잡아먹는다.

"하은아. 오늘 이 옷 어때? 이거 입자."라며 옷을 억지로 입히면 결국 벗어버린다.

"그럼 뭐 입을 거야?"

"엄마. 책 읽어줘."

"지금 어린이집 가야 해. 옷 뭐 입을 거야?"

"엄마. 나 피곤해. 잘래."

"시간 없어. 엄마는 운동하러 갈 거야. 뭐 입을 거야?"

"......"

"그럼 엄마 운동하러 간다. 하은이 혼자 있어."

"싫어. 나도 갈 거야."

"그럼 옷 입어. 무슨 옷 입을 거야?"

"아기상어옷"

"그래."

아기상어옷 목 부분을 아기 머리 위에서부터 내린 후 양팔을 끼워 준다.

"바지는?"

"엄마. 나 이 책 읽어줘."

"지금 시간 없어. 늦으면 선생님이 싫어해."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

"엄마 운동 가야 돼. 바지는 뭐 입을 건데? 그럼 엄마 운동 간다. 하은이 혼자 집에 있어."

"나도 갈 거야."

"그럼 바지 입어. 바지 뭐 입을 거야?"

"아기상어 바지."

"알았어."

아기상어 캐릭터가 무릎 부분에 그려져 있는 바지를 한 발 한 발 끼운 후 허리 부분으로 끌어올린다.

"양말 뭐 신을 거야?"

.

.

.

.

.


이런 식으로 옷, 바지, 양말, 잠바, 신발까지 선택이 끝나고 나야 겨우 어린이집으로 향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이런 일이 반복되니 참으로 지친다. 에어로빅을 다니면서 아침에 요가복을 입고

"엄마 운동복 입었다."

그러면

"나도 운동복 입고 싶어."라고 해서 사준 분홍색 추리닝이 있다. 혹시나 운동복 입었다고 뽐내면 아이가 스스로 운동복 입겠다고 할까 봐 이제 겨우 자다 아이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엄마, 운동복 입었다. 이쁘지?"

나는 거실에 있었고 하은인 방 이불 위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은인 조금 있다 나를 불렀다.

"엄마~"

"응?"

"엄마 안 이뻐."

"뭐라고?"

"엄마 안 이뻐."

오~~!! 나도 안다. 난 예쁜 얼굴이 아니고 예쁘단 말 들은 적도 거의 없으니. 하지만 아이의 주어 없는 안 이쁘다는 말의 주어를 확인해야만 했다.

"하은아. 엄마 어디가 안 이뻐? 얼굴? 아님 옷 입은 거?"

나도 왜 이렇게까지 하은이의 생각이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무척 알고 싶었다.

"엄마 운동복 안 이뻐."

"그래?"

"엄마 얼굴은 이뻐."

'내 얼굴 이쁘다고?'

아이의 말이지만 그래도 얼굴이 아닌 운동복이 안 이쁘다고 하니 내심 기분이 좋다.

아이의 예쁘다는 말에 절로 웃음이 났다.

"하은이 오늘 뭐 입을 거야? 운동복 입을까?"

"아니."

"그럼 뭐 입을 거야? 아기상어 입을까?"

오늘도 또 시작되는 지치는 옷 입히기 시간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힘들지 않다.

이전 12화 엄마, 책 읽어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