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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Feb 17. 2024

역할놀이에 빠진 28개월 아기

28개월 아이 이야기

28개월이 된 아이는 어느 날부터 역할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신생아 때 잠깐 썼던 이동식 아기 침대에 들어가더니

"엄마. 이건 배야. 엄마도 타!"

"어? 이거 너무 좁아서 엄마 타기 힘들 것 같은데?"

그러니깐 아이는 앞쪽으로 더 이동한다. 뒤에 조금 남은 공간을 가리키며

"엄마. 여기 타"

자리까지 마련해 줬는데 안 탈 수 없어 좁은 침대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자 침대 안에 있던 공을 주더니

"엄마. 이제 버스야. 버튼 눌러." 그런다. 공을 잡아들고 꾹 누르면서

"삐~ 버튼 눌렀어요. 버스 세워주세요."

그랬더니

"엄마. 우리 이제 물고기 잡자."

이러면서 이동식 침대에 들어있던 공을 바닥에 쏟아붓는다. 바닥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엄마. 이제 여기서 물고기 잡자."

그러면서 장난감 프라이팬을 갖고 오더니 거기에 공을 담는다. 나에게도 프라이팬 하나를 주며

"엄마도 물고기 잡아."

그러고는 잡은 물고기를 이동식 아기 침대에 집어넣는다. 기저귀만 남기고 옷을 벗어서

"하은아. 추워. 옷 입어야지." 그랬더니

"엄마. 여긴 수영장이야. 수영장에선 옷을 벗어야 돼."라고 한다.


한참 그러더니 이제는 방에 마련돼 있는 장난감 부엌으로 간다. 그 부엌에는 버튼을 돌리면 불빛이 나오며 끓는 소리가 나는 두 개의 화구가 있다. 그걸 돌리고 위에 장난감 그릇을 올려놓고 무언가 열심히 한다. 그러더니

"엄마. 샌드위치 먹어."라며 나에게 무언가 준다. 봤더니 장난감 레몬, 빵, 토마토 등을 붙여서 햄버거 비슷한 모양이다. 버거킹 햄버거가 생각나서

"햄버거네." 그랬더니

"아니야. 샌드위치야."

이후 프라이팬에 장난감 계란프라이, 물고기 등 부엌에서 조리한 후 갖다 준다.

"엄마. 물고기 구운 거야. 맛있게 먹어."

"응. 그래. 엄마 커피도 줄래?"

"응. 엄마. 기다려."

그러더니 장난감 주전자를 장난감 컵에 따른 후 갖다 준다.

"엄마. 커피야."

그래서 집에 있는 부루마블 종이돈을 줬더니 장난감 주전자에 집어넣는다.


한참 놀다가 아빠가 왔다.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보니 이제는 아빠와 의사놀이를 하고 있다. 청진기를 목에 걸고 집에 있는 인형을 하나씩 데려온다.

"펭귄 아파요. 치료해 줘야 해요."

그러고는 청진기로 배, 등, 머리 등 여러 군데 누른다.

"주사 맞아야 돼요."

그러고는 주사기로 인형을 찌른다. 체온기를 귀에 대고 "삐~" 소리 내며

"열 없어요. 괜찮아요."

이런 식으로 인형을 계속 치료해 준다. 나중에 보니 인형 여러 개가 모여 있다.


하은이의 역할놀이는 배->버스->물고기잡이(수영장)->부엌놀이->의사놀이로 진행되며 막을 내렸다. 이후 외갓집에 가서는 이모와 마트 놀이를 신나게 한다. 잘 놀다가 나에게 와서

"엄마. 라면 먹어"라며 빈 손에 무언가 담은 시늉을 하며 내 손에 주는 동작을 한다.

"라면?"

난 입에 넣는 시늉을 하며

"라면 너무 맛있다."

외갓집에 놀러 온 초등 사촌 오빠들에게 라면을 갖다 주니

"라면이 어디 있어?"라고 한다. 이모가

"너네 눈엔 이 라면이 안 보이니?"

그래서인가 하은이는 이모를 매우 좋아한다.


언젠가는 하은이 눈에도 라면이 안 보이는 날이 올 텐데 그날이 조금은 느리게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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