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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Jun 20. 2024

더욱 강력해진 내가 할거야

32개월 아이 이야기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어린이도서관이 있다. 2층에는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3층에는 성인 열람실이 있으며 그 안에 별도로 어린이 도서실이 구분돼 있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하원 후 도서관 2층 놀이터에서 1시간 정도 놀다가 3층 어린이 도서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은 별도로 문이 있어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그렇기에 바닥에 앉아서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줄 수 있다.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 아이들처럼 엘리베이터 버튼, 자동문 버튼을 누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가급적 엘리베이터와 자동문에 가게 되아이가 버튼을 누르게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하원 후 2층 실내놀이터에서 놀고 3층 어린이 도서실로 왔다. 아이는 성인 열람실 자동문 버튼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간 후 내부에 있는 어린이 도서실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32개월 아이가 요즘 좋아하는 책은 기요노 사치코의 <개구쟁이 아치 시리즈>다. 일본 작가가 쓴 그림책으로 3세 정도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이야기가 구성돼 있다. 목욕하기 싫은 아치, 혼자 그네 타고 싶은 아치, 놀고 나서 청소하기 싫은 아치 등 책을 읽어주며 일상생활에 대해 교육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혼자 그네 타는 아치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이렇게 아치처럼 친구들 기다리는데 혼자 그네 타면 돼요 안 돼요?"라고 물으면

"혼자 타면 안 돼요"라고 답한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놀면서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준다. 목욕하기 싫어하는 아치 이야기를 읽어주며

"이것 봐. 아치는 목욕 안 하니깐 지저분하지? 목욕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목욕해야 돼요"

"맞아요. 그래야 깨끗해지고 병에도 안 걸려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해 준다.

아무래도 아이가 자기 또래 이야기다 보니 아치 시리즈를 좋아했다. 도서관에 오면 거의 이 책들만 읽었다.

그날도 역시 한참을 읽다가 집에 가고 싶은지 몸을 꼬고 자꾸 문쪽으로 나갔다.

"집에 가자"라고 하니 아이는 신이 나서 신발 신는 곳으로 향했다. 아이는 신발을 신고 자동문 버튼을 누르고 밖으로 나갔다.


보통 때는 아이가 먼저 뛰어가 커다란 열람실 자동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은 아이와 같이 나가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커다란 열람실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렸고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내가 열거야. 엄마 하지 마"

아이는 화가 나서 소리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성인 열람실이라 도서관 여기저기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몸부림을 치며

"엄마 하지 하지마"이러면서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아이는 본인이 자동문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내가 대신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이다. 나 역시 아차 싶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아이를 달래며

"엄마가 미안해. 다음엔 하은이가 눌러"라고 했지만 아이는 진정되지 않았다. 도서관 직원분이 걱정이 됐는지 따라 나왔다.

"사탕이라도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라고 한 후 아이를 안고 복도 쪽으로 나왔다. 2층 계단으로 내려가자 아이는 몸부림치며

"가지 마. 도서관으로 가"라며 크게 울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이는 다시 그 문에 가서 자동문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것이다. 난 아이 양손을 꽉 붙잡았다.

"알았어. 그럼 이렇게 울면 안 돼. 울면 거기로 갈 수 없어. 안 울면 다시 가서 문 열게 해 줄게"라고 말했다. 아이는 다시 도서관 문으로 간다니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 손을 잡고 다시 3층 도서관 방향 계단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이가 아까처럼 크게 울면 어쩌지? 그렇다고 억지로 집에 데려가면 울고 난리일 텐데' 

오만가지 생각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3층 도서관 입구로 가니 직원분이 아직 계셨다.

"괜찮으세요?"

"네. 아이가 자기가 다시 누른다고 해서요. 그래야 진정될 것 같아요."

다행히 아이는 어느 정도 진정이 돼 훌쩍 거리는 정도였다. 난 아이와 손을 잡고 문 쪽으로 갔다. 아이는 버튼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자동문이 닫히길 기다렸다. 아이가 진정하긴 했지만 계속 훌쩍였기에 그 소리가 너무 신경 쓰였다. 자동문이 다시 닫히는 몇 초가 몇 분처럼 길게 느껴겼다. 문이 닫히자 아이는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아이 손을 잡고 나왔다. 그제야 아이는 집에 가겠다고 했다.

'휴~'

직원분에게 눈인사를 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요즘 들어 혼자 옷도 입고 다시 "내가 할 거야"가 강해졌다. 가끔 혼자 옷을 입고 신발을 신기도 한다. 한 단계 또 성장하는 시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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