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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Jun 18. 2024

삶의 중심은 항상, 내 안

마흔, 그대 7. 프랜시스 베이컨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

  일상이 중첩되는 시간 중, 오늘 같은 날엔, 크게 심호흡을 합니다어딘가 다른 곳에서 불어오는 맑고 청량한 공기를 들이켜고 싶어서. 조금 전 그곳은 그동안 갈고닦은 사회생활의 숙련도와 인내심이 극도로 필요한 재난 지역이었습니다. 모임의 중심이 누구인지, 누가 구성원인지, 각자의 아우라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관심이 너무 커서 서로의 명함을 주고 받느라 글을 소개하는 목소리는 다 묻혀 버렸습니다고해성사를 하듯 책 소개를 마쳤습니다저 깊은 곳에서 '숨 막혀'하는 소리가 들렸지요.  

   

  빨리 빠져나오고 싶다는 마음을 수차례 다독이며 주어졌던 제 역할을 다했습니다멀리 떠난 정신을 기어코 붙잡아 지하철을 타고 온전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들 잠든 늦은 밤, 거실은 불을 켠 채 홀로 잠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TV에서 윌 스미스가 분투 중이더군요. 최고의 스나이퍼이자 유능한 전사였던 그는 자신과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맞아 맹렬히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복제 인간을 만든 회사의 이사를 찾아갔습니다. 이제 한 판 제대로 붙을 모양이었어요.


영화 <제미니 맨> 중에서


 그런데 찾아간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이 제 눈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아! 전 냉장고에서 술병을 꺼내 들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고통을 감지하는 통각이 심장을 향해 거세게 풀무질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고통을 날 것으로 보여줍니다. 분노를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그의 캔버스에서 외치는 200db(데시벨)의 아우성은 듣는 이의 고막을 터트립니다. '평화, 사랑, 부드러움, 정직, 양보, 이해, 정의, 온정' 같은 단어를 '위선'이라는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립니다. 그는 우리의 건너편에 있습니다. 대다수 인간의 대변자인 헨리(윌 스미스 분)의 적중률 높은 탄환이 수도 없이 그를 쏘아 쓰러뜨렸지만, 그는 더 기괴하게 일그러질 뿐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의 제단 앞에 엎드린 벨리알이자 파리대왕이고 곧 우리의 뒷모습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열 번쯤 손에 들었다 열한 번쯤 내려놓은 화가가 바로 그,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입니다. 도무지 전체를 마주 대할 수 없습니다. 늘 한 점씩 찔끔찔끔 간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결코 다루지 않았을 숙제입니다. 겁 많은 저는 오늘도, 영화 속 깜짝 등장한 저 작품만 곁눈질하겠습니다. 그의 작품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 1944>


   보는 순간 몸이 움츠러듭니다. 창문이나 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외부와는 단절된 폐쇄된 공간입니다. 바탕을 꽉 채운 얼룩덜룩한 주황색은 불길하기 짝이 없고 인간 같기도 동물 같기도 한 형상이 고통 속에 울부짖는 모습입니다. 목은 장어처럼 길고 커다란 입을 벌려 물거나 삼킬 듯 으르렁댑니다. 혐오스러운 입에는 혀는 없고 단단한 이만 보입니다. 말이나 언어처럼 두 가지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못하겠지요. 적어도 두 작품엔 눈도 보이지 않습니다. 절대 고독 속에 홀로 남겨진 무기력입니다. 인간을 쥐어짜 있는 걸 다 흘려보낸 뒤 남은 찌꺼기가 저런 공포와 두려움, 외로움일까요?  

   

  그는 전통적으로 성소의 제단화에 쓰였던 '세폭화'라는 형식을 빌렸습니다. '십자가 책형'이라는 종교적 숭고와 헌신의 아이콘도 빌렸습니다. 등장하는 사지 없는 생물은 고대 그리스의 폭력적인 범죄자를 살해하는 퓨리(Furies)에게서 왔다고 했습니다. 베이컨은 기독교의 형식(대상)과 고대 신화를 빌려 인간의 폭력적인 내면과 잔혹함, 불안을 이미지화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이 작품은 1945년 4월, 런던 르페브르(Lefevre) 갤러리에 헨리 무어(Henry Moore)와 그레이엄 서덜랜드(Graham Sutherland)의 작품과 함께 처음 전시되었습니다. 무명의 베이컨을 배려한 친구 서덜랜드의 추천 때문이라고 하지요. 베이컨에게 서덜랜드는 '귀인'이었던 셈입니다. 이 작품이 공개된 1945년은 6년 간의 길고 광폭한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해였습니다. 나치 강제 수용소의 사진과 영상은 잔인했던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핵무기는 인류 모두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절묘한 시점과 맞물려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 이 작품은 무명의 그를 단번에 화단의 늦깎이 기린아(麒麟兒)로 데뷔시켰습니다.   

  


이전의 삼폭화 예) 로베르 캉팽 <메로드 삼폭 제단화, 1427~1432>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은 영국 화가입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지요.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던 16세기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복 형인 니컬러스 베이컨이 먼 선조(先祖)입니다. 그의 집안은 부유했습니다. 그가 손대는 건 대부분 가질 수 있었지요. 안타까운 건 그는 전통을 중요시하는 영국인의, 더욱이 보수성이 강한 아일랜드인의 선택지에는 없는 것을 욕망했습니다. 그는 동성애자였습니다. 하인들은 그를 거절하지 못했고 이를 알게 된 강직한 아버지의 분노를 샀습니다. 그는 여러 번 아버지의 채찍질을 견뎌야 했습니다. 결국 열여섯 살에 어머니의 속옷을 입고 있다 들켜 삼촌이 있는 베를린으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양 무리로 쫓은 격이었지요. 그는 마음껏 쾌락을 탐했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베를린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영국으로 떠돌았습니다. 잠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지만 그는 좀 더 높은 명성을 원했습니다. 1,2차 세계대전의 대공포에 부서지고 핵폭탄에 녹아내렸던 세상에서 그는 그 찢어지고 박살 난 현재를 그리기로 마음먹습니다. 그건 그의 내면이 아직도 아버지의 채찍을 맞고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 세상에서도 천국에서도 지옥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일까요? 지독한 외로움에 기반한 그의 혼란과 양면성은 그를 좌절과 폭력과 음울함을 대변하는 20세기 회화의 한 축이 되게 했습니다. 아이러니지요.


  비평가 알랭 조프로이(Alain Jouffroy, 1928~2015)는 195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두고 이렇게 평했습니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미래를 묘사한 이 작품은 의심할 나위 없이 비엔날레를 통틀어 단 하나의 진정한 발견이다."


  내 안에 저런 어두움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저는... 침.묵.합.니.다.


  이안 감독은 베이컨의 작품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을 사악한 클레이 베리스 뒤 벽면에 배치했습니다. 오늘, 이 늦은 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엔 이렇게 매력적인 문구도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나를 노린다’ 

    


  밤은 깊고 홀로 술 한 잔을 따릅니다. 쪼로록 술이 담깁니다. 향기롭습니다. 책 소개가 술을 따르듯 향기로웠나 되짚어봅니다. 두 잔엔 세상이 담깁니다. '명함'에 대한 관심은 처음 가는 도로의 표지판을 읽고자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일 터입니다. 낯선 길이니까요. 또 각자의 현실, 각각의 상황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 자신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세 잔엔 마음이 담깁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든 나를 파괴하는 것이든 내 안에 있는 것이겠지요. 내가 성숙하고 있다면 내 안에서 깨달아 더 깊어지는 것일 테고, 내가 무너지고 있다면 내 안의 결함으로 스스로 붕괴하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왜 항상 삶의 중심이 내 안을 향해야 하는지 깨닫습니다. 네 잔 째쯤 술잔에 별이 퐁당 빠졌습니다. 전 반짝이는 별을 호호 불며 마셨습니다.   

   

  별을 마시며 오늘 하루를 잘 감당한 절 토닥입니다. 

  “잘했어. 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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