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 딸이 아니야

by 박 혜리

고등학교에 다니며 함께 자취를 하는 나와 남동생은 주말에 부모님을 뵈러 고향을 찾았다.

엄마 밥이 먹고 싶고 엄마품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룻밤을 묵지 못하고 다시 살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엄마는 당신 삶이 버거웠는지 우리에게 그 밤을 허락지 않으셨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우리는 차가운 도시에 다시 스며들었다.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뜸을 들인 "여보세요" 하는 엄마의 목소리엔 짙은 한숨이 배어있다.


지치지 않는 한숨소리... 엄마의 언어..


밖은 불꽃놀이를 하는지 마녀가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치솟은 불길로 집안은 대낮처럼 훤했다.

어른거리는 불빛에 놀라 잠결에 눈을 번쩍 나는 방문을 열고 "불이야 불이야" 하고 소리쳤다.

식구들을 깨우고 난 어둠에 잠긴 마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불길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손에 세숫대야 하나씩을 들고 화장실을 태우고 마구간을 삼키는 불을 끄느라 부지런히 우물물을 퍼 날랐다.

다행히 불은 절반의 마구간만 태우고 사그라들었다.

불은 우리 집 화장실 옆 퇴비 거름에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궁이에서 타고 남은 재가 나오면 봉분처럼 쌓아 올린 거름으로 옮겼는데 나는 며칠 전부터 거름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 연기를 미심쩍은 눈길로 봐오던 차였다.


그날 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자다 잠을 청하려고 자리에 다시 눕는데 엄마는 " 죽게 두지 다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 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는 그 말을 하는 엄마가 무서웠고 또한 싫었다.


저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은 수제비가 너무 맛있었는지 난 엄마에게 다가오는 설날에는 떡국 대신 수제비를 먹자고 제안했는데 엄마는 그러자고 하셨다.

먹은 수제비가 체했는지 머리가 아파오더니 늦은 밤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난 초경을 했다.

두 손에 움켜진 아랫배는 뱀들이 똬리를 틀고 소용돌이치듯이 욱신거렸다.

생리대를 사야 하는 나는 허둥거리며 엄마에게 설명한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뭐가 못마땅하신지 잔소리와 함께 위아래로 눈을 흘겼다.


원서를 보낸 학교에 시험을 보는 날 결국 버스에 난 오르지 못했다.

전날 학교만 보내주면 어떻게든 집에 손 안 벌리고 동생들 뒷바라지도 하고 엄마 호강도 시켜줄 거라고 설득했지만 엄마는 그날 아침 내게 끝내 차비를 건네지 않았다.

대신 네 동생들 공부는 네가 책임지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공부를 해서 집안을 일으키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분분한 꽃잎처럼 흩어졌다.


집을 떠난 이후로 엄마는 내가 있는 도시로 오실 때면 머리에 뭔가를 이고 오시긴 했어도 내 집에서 음식을 해서 우릴 먹이진 않으셨다.

엄마는 내게 늘 손님이었다.


여덟 살 때 친어머니를 여읜 엄마는 들어오신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거드느라 소학교도 나오지 못한 당신보다는 장학금이 아니었으면 다니지 못했을 졸업장을 두고 "너흰 그래도 나보다 낫지 않느냐 " 는 말로 늘 당당하시다.


화를 잘 내는 엄마..

뭘 해 드려도 곧잘 잊고 부족하다 하신다.

엄마는 자신의 삶과 딸인 나를 비교하며 말끝엔 당신은 아버지를 만나 이렇게 살고 넌 신랑 잘 만나 그렇다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난 하고 싶은 말을 참느라 입술을 꼭 깨문다.


나는 엄마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분이고 당신 말씀처럼 학교 근처도 못가 본 분이시기 때문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엄마가 우리 앞을 한 발자국만 앞서 걸어가는 용기만 냈었더라면 우리 삼 남매가 조금 덜 외로웠을 거라고..



육순이 넘으시자 삶의 모든 무대에서 일찍 은퇴하신 엄마는 화석처럼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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