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집은 내가 꿈꾼 최초의 욕망이었다.
언덕 위에 장미꽃으로 울타리가 쳐진 창문이 크고 현관문이 아치형인 하얀 벽돌집으로 오르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나의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밭에 심은 옥수수가 여물어 가는 더운 여름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동네 오빠는 우리 집이 무너졌다는 말을 전했다. 난 한달음에 집으로 달렸다. 부엌은 한쪽 벽면이 무너져 솥과 그릇들을 덮치고 초라한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오랜 장마로 점성이 약해진 흙담은 개미가 구멍을 파내 듯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엔 화장실이 무너져 아버지가 새로 지붕을 이고 고쳤다.
엄마는 평소에 입버릇처럼 할아버지께서 토지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집 한 칸 마련해주지 않는다고 한탄하셨다.
내가 태어난 집은 앞마당에 키가 큰 가죽나무와 담벼락 옆 텃밭 가장자리에 감나무 한그루가 있는 방 두 칸짜리에 딸린 부엌 하나와 화장실 그리고 마구간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봄이면 마당에는 엄마가 달걀을 얻기 위하여 병아리를 키웠는데 그 사이를 지날 때면 노랑 새끼 병아리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내 발뒤꿈치를 쪼아대었고 얼굴 생김새가 준엄한 우리 집 개가 부엌 아궁이 앞에서 졸고 있는데 눈을 뜨지 못한 강아지들이 어미젖을 먹기 위하여 배를 드러내고 누운 어미 주위로 모여들었다. 엄마가 시집올 때부터 비어있었다는 집은 쇠죽을 끓일 때면 아궁이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에 스며들었고 밤에는 천장 위에서 뛰어노는 쥐들의 부산한 소란으로 시끄러웠다.
이사를 할 때마다 매캐한 연기 냄새는 우리를 따라다녔다.
엄마는 이사를 가야겠다고 말씀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몸집이 커지고 있고 대신 방은 점점 좁아졌다. 장맛비는 그칠 줄 모르고 할 수 없이 우리는 비 오는 날 이삿짐을 꾸렸다. 이사 갈 집은 아랫마을에 손주를 봐주기 위하여 딸 집으로 가신 동네 아주머니의 빈집이었다. 마을 사이로 길이 있었지만 많이 우회해야 해서 우린 지름길인 도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계속 내린 비로 보퉁이를 인 머리 밑 얼굴은 차가운 빗물이 흐르고 종아리까지 차오른 도랑물을 쉴 새 없이 건너느라 내 입술은 새파랗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주인이 없는 사이에 가슴팍까지 자란 잡초들로 무성했다. 다음날 햇살이 드러난 틈을 타서 나는 호미자루 하나로 풀들을 뽑았는데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마당은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풀물이 든 내 손톱 밑은 시퍼렀다. 마당에 우물이 있는 그 집은 동네에서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한 벽돌집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리면 부엌 바닥으로 물이 차올라 밥을 지을 때면 엄마는 물을 퍼내고 쌀겨를 깔았다. 그리고 바닥이 어느 정도 마르면 그것들을 걷어내었다. 여름이면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였고 옆집에 사는 친구와 담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침에는 함께 학교를 갔다. 이사를 한 후 아버지는 술주정이 차츰 줄어들었다. 나는 그 집에서 오래 살고 싶었지만 삼 년 후 집이 팔렸다는 주인아주머니의 통보를 듣고 우리는 또다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시골 사람들은 보통 한집에 계속 사는데 우리는 그 이후에 두 번의 이사를 더 하였고 정착할 때까지 총 네 번의 이사를 오 년 사이에 다녔다. 마지막으로 이사 한 집은 동네 친구의 집이었는데 친구 가족이 도시로 떠나고 대신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마루가 손바닥만 하고 천장이 낮은 흙집이었다. 거기로 이사한 지 몇 달 후 나는 도시로 떠났다.
나는 어느 집에서 새어 나온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사는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퇴근한 아버지와 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돌아온 가족을 위하여 저녁밥을 차린 엄마와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그날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고 혼자 상상을 한 나는 괜히 서러워 눈시울이 붉어졌다.
집을 떠난 후 비가 많이 내리면 난 밤잠을 설쳤다.
옛날에 청개구리 엄마가 죽을 때 말을 듣지 않고 반대로 하여 산 대신 강에 묻어달라고 청개구리에게 유언하였는데 엄마를 강에 묻고 비가 오면 엄마 무덤이 떠내려 갈까 봐 슬프게 운다는 전래동화처럼 고향을 떠난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헌 집이 무너질까 봐 쉽게 잠들지 못하다 까무룩 잠들곤 했는데 집이 무너져 흙더미에 깔린 부모님을 향해 어서 나오라고 소리치다 꿈에서 깨곤 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부모님의 어떤 도움도 없이 내 학비를 벌었고 남동생 고등학교도 보냈다. 남동생은 군 복무 대신 특례를 받아 취직을 했고 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곧 고등학생이 되는 동생을 위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몇 년 후 남동생과 나는 고향에 헌 집을 허물고 부모님을 위하여 새집을 지었다. 전화를 하려면 큰집으로 가야 하는 불편함을 알기에 난 장롱을 비롯하여 부모님을 위하여 필요한 가전을 마련했다. 새집은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할 수 있고 수도꼭지에서는 따뜻한 온수가 나왔다. 등불이 환히 켜진 방에 등을 마주하고 나란히 누운 우리는 처음인 것처럼 이를 드러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식구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새집에서 십 년 가까이 사시고 돌아가셨다. 엄마 진갑은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어드렸다.
나의 오랜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이십오 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집은 작년에 새로 리모델링하여 엄마는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