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다녀온 아들

by 박 혜리


대학생이 되어 떨어져 살게 된 아들은 용돈이 더 필요할 때 먼저 내게 전화를 하였다. 용돈을 줄 때마다 나는 아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카톡으로 남기라고 하였는데 활동이 많은 아들은 바빠서 많이 놀아주지 못한 아빠가 어색하다는 대답을 하였다.

타 도시에 있는 대학을 간 큰애를 짐과 함께 기숙사에 내려주고 돌아섰을 때 차의 백미러로 멀어지는 아들을 본 나는 처음 하는 이별에 가슴이 먹먹하였는데 나의 걱정과 달리 사교성이 좋으며 활동적인 아들은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며 적응을 잘하였다.


오월의 꽃이 얼굴을 내밀며 흐드러지게 핀 날,

복학시기와 맞추고자 해병대에 지원한 아들이 발자국을 지우는 첫눈처럼 멀어지며 연병장의 온동장으로 뛰어갈 때 내 눈에는 이슬이 맺히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집에서 훈련소로 출발할 때 큰아이 얼굴을 볼 때마다 울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아이를 학교 기숙사에 내려주고 돌아올 때처럼 차 안에서 나는 내내 눈물을 훔쳤다. 집에 도착하여 아들의 빈방을 열었을 때 커다란 구멍이라도 생긴 가슴이 허전하였는데 신병훈련기간 동안 나는 응원한다는 내용의 인터넷 편지를 매일 써서 보냈다. 마침내 신병훈련이 끝나고 수료식을 하는 날, 갓 다림질한 것처럼 반듯한 제복을 입은 그 사이에 반쪽이 된 아들 얼굴을 보자 나는 또 한 번 마음이 울컥하였는데 집에서 편식을 하던 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밥 두 공기를 거뜬히 비웠다. 아들 면회를 처음 간 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호미곶에서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커피숍에서도 연신 시계를 흘끔거리며 음료와 케이크를 먹는 군기가 바짝 든 아들을 보며 군대에서 인내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고 나오면 앞으로 할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는데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아들은 편지에 높은 산을 행군한 일이며 낙하산 훈련을 해볼 거라는 포부를 밝혀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응원을 보내며 더 멀리 비상하기 위한 과정이라 여겼다. 코로나 시국이라 그렇게 두 번의 휴가를 보내고 여름 더위와 추운 겨울을 지난 후에 아들은 몸 건강하게 무사히 제대를 하였다.


초등학생 때 시내로 이사해서 전학을 온 아들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였다. 일일이 학생을 찾아다닐 수 없어서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많이 괴롭힌 학생의 부모에게 전화를 하여 나는 주의를 당부하였는데 고등학생 때 엄마가 많이 혼내주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는 아들에게 낯선 친구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하며 나는 미안하다 말하였다. 더 많은 기회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시내로 다시 들어온 것인데 네가 그렇게 힘들어 한 줄 몰랐다며 사과를 하자 그제야 아들은 마음을 풀었는데 늦게라도 마음을 표현한 아들이 나는 고마웠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행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라서 게임을 하며 불만을 얘기할 때 여동생의 일을 통하여 성인이 되면 큰 것을 잃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아들의 사춘기의 변을 가만히 들어주었는데 아빠가 놀아주지 않았다며 아쉬워하는 아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네게 주기 위해서라는 말을 하였다.


사귀는 여자 친구에 대해서 스스럼없는 아들이 친구 같아서 나는 좋은데 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다 보면 아빠를 더 잘 이해하는 날이 다가오리라 믿으며 아버지의 자리가 처음이라 서툴 수밖에 없는 남편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홀로 견뎠을 외로운 자리가 아빠라고 나중에 아들에게 말해야겠다.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나는 앞으로 자신만의 아름다운 무늬를 직조하며 살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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