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화양연화

마음의 낙원

by 박 혜리


"변신"의 작가 카프카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은 성급함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태만함 때문에 낙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땡 하고 여섯 시면 집에 오던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고부터는 점점 퇴근하는 시간이 늦어졌는데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나는 하이웨이를 질주하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남편의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 막내인 점이 나는 특히 마음에 들었다. 집안의 장녀로서 책임감을 다 하느라 말수가 많지 않았던 나는 아기자기한 애교를 기대하였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였지만 남편은 고집이 센 데다 연애할 때는 두드러지지 않아 몰랐던 조급함을 많이 느꼈다.


연애를 시작할 때 마음을 채워줄 거라고 내게 공언한 남편은 일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며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내가 둘째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재활용 쓰레기를 비우기 위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에서 내렸을 때 마주친 아래층에 사는 지인 언니는 아이를 등에 업은 내 모습을 보고 힘들어 보인다며 가끔 반찬을 해서 가져다주었는데 바쁜 남편 대신에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첫째와 둘째의 유치원 입학식과 졸업식 그리고 공개수업과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내 몫이 되었다. 하루종일 혈기왕성한 아이들과 함께 놀며 학업 스케줄을 챙기다 보면 하루해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지나갔는데 배우고 싶은 것을 미루다 나는 약간의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하였다.


나는 남편에게 부탁을 하며 당신은 바쁜 사람이니 시간 날 때마다 충분히 아이들과 교감하며 놀아주라고 말하였다. 그럴 때마다 온 정신을 일에 빼앗긴 남편은 시간이 흐르면 아이는 저절로 커는 것처럼 말하면서 꽃이 어떻게 물들고 하늘의 구름이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는지 시간의 향기를 잃어버렸는데 내 몸이 아프자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은 사람처럼 그제야 집안일을 돕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어려운 난관이 닥쳤을 때 함께 헤쳐나가며 성장을 나누고 하나밖에 없는 내편이 되어주는 것이 내 결혼의 소박한 꿈이었다. 시어머니가 막내라고 집안일을 시키지 않아 정리정돈 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가르쳐보기도 하였지만 제대로 이행이 안되어 내 입이 더 아플 때가 많았는데 이제 남편은 아침이면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출근을 하고 어깨가 아픈 나를 위해 가끔 화장실 청소를 거든다. 내가 전화를 하면 퇴근길에 필요한 것을 사다 주며 주말에 식사를 하고 나서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돌리는데 마트에서 생선을 사면 비린내가 난다는 듯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든 남편이 지금은 아랑곳없이 집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양연화라 하였다. 내 몸이 아팠던 일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듯이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며 용사가 되었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더라는 성경 속 히브리 지혜자의 말처럼 남편에게도 이 일은 쉼 없이 저어 가는 자전거 페달 위의 발을 가끔은 늦추면서 가족을 돌아보고 풍경을 즐기는 계기가 되었는데 아이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일상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기이자 화양연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등 뒤에서 놀아달라고 말하는 딸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놀아주지 못한 것을 두고 뒤늦게 후회하는 어느 아버지의 고백을 남편이 듣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며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요즘 나는 행복하다.


많은 시간을 몸과 마음으로 옆에서 남편을 도운 나는 바보 온달에게 글과 무술을 가르쳐 훌륭한 무사로 만든 평강공주의 이야기처럼 나는 이제 평강공주직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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