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에 걸린 결혼사진

by 박 혜리


옛날에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냇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지켜본 나무꾼은 선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옷을 숨겼고 하늘로 올라갈 수 없는 선녀는 나무꾼과 결혼을 하였다. 나무꾼이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숨긴 옷을 찾은 선녀는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래동화처럼 나는 거짓 없는 순수한 왕자를 찾고 있었다.


사업을 하는 오빠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는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하였다. 사교성이 좋은 친구는 업무차 사무실을 방문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좋은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그의 말에 내가 떠올랐다고 하였다. 날씨가 화창한 오월에 우리는 커피숍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였는데 소개를 마친 친구가 자리를 떠나자 데이트를 시작하였다. 약속시간에 맞춰서 항상 먼저 나와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성실해 보였는데 금요일 저녁이면 우리는 저녁을 먹은 후 바다를 보러 나갔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늘 손을 잡지 않으면 내가 나비처럼 금방 날아가버릴 것 같다며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재물로 나를 기쁘게 해주진 못하더라도 마음고생은 시키지 않고 행복하게 해 주겠노라며 그는 프러포즈를 하였는데 그의 믿음직스러운 말에 지나가는 한 사람에 지날 수도 있었지만 서로에게 길들여지며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어 주기로 하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우리는 웨딩업체에 의뢰하여 결혼식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최근에 지어진 깨끗한 주민센터가 있다며 소개를 하였는데 우리는 청소비만 지불하기로하고 양가 부모님과 일가친척을 모시고 그곳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피로연은 주위 음식점에 예약하여 준비하였는데 나는 그가 어떤 차를 타는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지 않았고 내가 가진 돈을 보태어 우리가 살 집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장만하였다.


결혼 후에도 나는 계속 직장을 나갔다. 퇴근시간이 비슷하고 주말에는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나는 좋아하였는데 함께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이상적인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하였던 나는 첫째가 생기자 나의 바람과는 달리 친정에도 연로하신 시부모님에게도 아이를 맡길 수 없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동생의 학교 문제로 은행에 다닐 수 있는 선생님의 추천서를 거절한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후회를 하였는데 당시에는 여성이 결혼을 하면 계속 근무할 수 없는 분위기가 한몫하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남편은 다른 지역에 있는 센터에 발령이 났다며 내게 말하였다. 자기 자본이 많은 회사에 다닌 남편은 타 지역에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데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정착을 하기에는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복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겠다며 통보하였다. 공무원처럼 출퇴근이 일정하였던 남편의 수입은 내가 아껴서 모은다 하여도 분양가가 고공행진하는 아파트 하나 청약하기도 벅찼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는 말에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시부모님이 나이 마흔 넘어 얻은 늦둥이인 신랑은 물려받을 재산도 가진 것도 많지 않았는데 남편의 고뇌를 모르지 않는 바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나는 무언중 동의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샐러리맨과 결혼한 것을 다행이라 여긴 내 생각과 달리 야망이 있었던 남편은 그렇게 도심의 괜찮은 아파트를 청약하려고 모은 것으로 선배회사에 임대료를 지불하며 사업을 시작하였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남편은 얼마의 수익이 발생할지 모르겠다며 꼭 필요한 생활비 목록을 적어 달라 말하였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것을 적어주었는데 이삿날을 뽑기 위하여 찾아간 철학관에서는 생일을 물어보더니 막내인 남편이 장남 사주라며 태클 걸지 말고 가만히 두면 된다 하였고 체질에 맞는 건강탕을 만드는 곳에서는 음양오행을 공부하신 분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 말하였다. 그것이 맞았는지 일은 처음부터 꾸준히 들어오며 남편의 귀가시간은 늦어졌는데 밤낮없이 분주한 덕분으로 두 번의 이사 끝에 사무실을 겸한 공장을 마침내 마련하였다.


지인은 대기업에 다니는 연구원인 남편이 오십을 넘기자 회사에서 명퇴신청을 받는다 하였다. 그분은 퇴직을 하여 가족을 떠나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서른 중반의 나이에 남편이 사업을 한다 할 때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부지런한 데다 한결같은 신념으로 작지만 튼튼한 회사를 일구어 잘릴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지금 나는 고마울 따름이다.


아이가 자랄 때는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한 데다 의견이 달라서 충돌을 하기도 하였다. 발효할수록 깊어지는 음식처럼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오누이처럼 서로 닮았는데 결혼 삼십 주년에는 리마인드웨딩을 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오늘도 맞춰 논 알람시계처럼 변함없이 출근하는 남편의 등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천천히 가자고 말해본다.


지역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여동생은 얼마 전까지도 우리 사진이 그곳에 걸려있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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