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by 박 혜리


지난밤 누가 지나갔을까

흰 종이 위에 또각또각 검은색 발자취를 남긴 것은


까마귀와 까치가 몸을 맞대어 만든 은하수 위 칠월칠석 일에 만난 오작교의 견우와 직녀처럼


오랜 세월 고독을 견디며 그리워한

그것은 우리의 눈물이며 우정이었나


자그마한 키에 굵은 테의 돋보기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책을 좋아하던 그녀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바람을 가르며

너른 들판 사이를 씽씽 달릴 때에는

넘어질까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듬직하였는데


배움을 위하여 교정을 넘나드는 방금 깎은듯한 턱수염 자리가 파르스름하게 남은 어린 학생처럼


굽은 어깨에 백팩을 메며 배움에 늘 목말라하며

열의가 넘쳐난 친구였던 그녀는


폭풍우가 할퀴고 지나간 어지러운 밤처럼

그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눈이 부신 듯 아지랑이 같은 햇살이 부서지고

헐벗은 나무가 몸을 떨며 연둣빛 새싹을 틔우던 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여는 늦은 저녁에

옥양목 같은 매트리스에 아픈 몸을 누인 나는


정적에 쌓인 창밖의 어둠을 잠시 바라보다

열두개 숫자가 적힌 다이얼을 돌려보았네


시계의 초침 굴러가는 소리 우렁차게 들리던 밤

마른침 삼키며 고스란히 안부를 친구에게 알린 날에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위로를 해주던 내 친구는


시간이 거듭되며 몇 번의 계절 지나자

말투는 변하여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더니


바로 옆의 동료가 아래로 떨어졌다며

어느 날은 활동하던 동호회를 그만둔다 하였고


또 다른 날은 함께 직장을 다니던 몸이 아픈 동료가

일을 하다 다시 아프게 되었다 하였는데


비난도 충고도 조심해야 하는 남일은 알 수 없는 일


하루는 내게 스스로 자초했다 하였다가

또 다른 날은 너도 이기적으로 변하지 하였는데


어느 하루, 영원하자며 맹세로 썼던 편지가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만큼 야속해지려는 날에


아아, 아픈 내가 죄인이었구나

참으로 위로란 어렵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는데


중간계의 대혼란을 가져온 절대 군주 사우론은

악의 반지를 흔들어 잠에서 깨우고


반지의 제왕 돌킨은 원정대를 꾸려 모르도르로 떠난 프로도와 네 명의 친구에게 평화를 지키라 명하였다는데


뒤늦게 신앙의 길에 접어든 남편을 둔

목사님의 사모님이 들었던 터무니없는 야유처럼


아픈 자녀를 두고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냐며

장애를 가진 딸의 아버지에게 했던 어떤 이의 질타처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세상 질서 안에

내 말이 부메랑 되어 돌아올 수 있는 이치를 안다면


나는 그들 같은 어리석음 범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는데


화분에 심어진 푸르고 붉은 잎이 넓은 집안의 화초와

공원 산책길에 마주친 꼬리를 흔들며 살랑거리는 고양이와 반려견이 주는 위로


사람이란 위로받을 존재가 아니라

끝없이 사랑해야 하는 존재임을 하나님은 나의 고난을 통하여 뒤늦게 알게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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