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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 Nov 01. 2019

영악한 낙타에게 눈탱이를 맞지 않으려면

마흔 살 욜로족의 부동산 힐링 에세이 4


낙타는 겁이 많았다.



인생을 살면서 꼭 완수해야만 한다고 여겼던 대입, 취업, 결혼, 육아의 과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차근차근 밟아왔던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것이 맞다고 하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 삶이 답답해졌다. 정말로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니체가 말한 낙타가 된 기분이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의 과업을 위해 터벅터벅 사막을 걷고만 있는 낙타. 주인이 주는 대로 짐을 등에 싣고 주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의심 없이 성실하게 걷는 낙타. 순하고 착하지만 겁이 많아서 주인이 될 용기는 내지 못하는 낙타.


바로 나였다.


왜 어른들은 좋은 대학에 가서 취업을 하고 나면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키우는 삶을 종용했는가. 혹시 이들은 다른 종류의 삶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




세상의 평범하지 않은 삶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의 나보다 나은 삶과 못한 삶. 분명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현재보다 못한 삶으로 떨어질 것을 더 두려워한다.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부정적인 측면에 예민하게 반응하므로 나는 이것이 위험을 회피하려는 본능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본능이 가져오는 공포를 극복해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우리의 정신은 현대의 자본주의의 발달 속도에 현저하게 못 미치는 속도로 진화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공포를 느끼는데 이것을 잘 분별해 내서 근거가 있는 것인지를 분석하는 일이 일상이 된 사람이 많았다.




나는 몇 년 전 분별력 없던 시절 경험이 떠올랐다.


성실하기만 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여윳돈을 펀드에 적립하면서 괜찮은 수익을 봤고 이것을 환매하면서 증권사 직원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적이 있었다.


펀드가 안정적이긴 하나 수익률 측면에서 주식보다 못하고 사실 주가가 떨어지면 펀드 또한 무사한 것이 아니니 그다지 위험회피 효과도 없다는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게다가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 본인 같은 전문가가 나 대신 주식을 사고팔아 수익을 남겨줄 수 있으니 주식에 대해 몰라도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마침 펀드로 수익을 좀 봤으니 도전해 볼 만하지 않냐며 나를 부추겼고 순진한 나는 젊은 사람은 좀 공격적인 투자도 필요하다는 책에서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을 핑계 삼아 권하는 대로 순순히 계좌를 개설했다.


펀드 환매금에 내 돈을 더 보태서 전문가에게 목돈을 쥐어주며 나는 더 큰 눈덩이를 굴릴 생각에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전문가를 믿었다. 왜냐하면 전문가니까.




불과 1년 만에 나는 전문가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맡긴 금액의 십 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잔액을 확인한 날, 증권사를 찾아가 책상을 뒤집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화가 났다. 주식투자에 대한 내 공포심을 이용해 내 돈을 무책임하게 휘둘러서 없애버린 소위 전문가란 자의 면전에다 욕을 해주고 싶을 만큼.


과거에 재미 삼아 주식을 잠깐 했던 나도 이 정도 수익률, 아니 손해율은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일이 벌건 대낮에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데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건 나였지만 전문가라는 호칭은 아무한테나 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니... 그것도 합법적으로.




나는 이때부터 전문가를 믿지 않는다.


전문가라는 지위는 누가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내 돈을 지키기엔 너무나 추상적인 단어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실 나와 다르지 않은 낙타에 불과했다. 그 또한 주인으로부터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잘못이 없다. 오히려 멍청한 낙타 한 마리를 꼬셔서 주인의 배를 채워줬으니 칭찬을 들었을 지도.


영악한 낙타에게 눈탱이를 맞은 듯 얼얼했다.


나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깨달았다. 전문가에게 돈을 맡기는 것은 근거 없는 공포심에 휘둘려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는 빨리 눈을 떠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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