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업 시장에서는 영어 실력을 증명하기에 토익만으로는 부족하다. 토익은 영어 듣기와 읽기에 관한 시험이므로 지원자의 영어 말하기 능력을 입증해줄 Speaking 시험 점수도 있어야 한다. 영어 말하기 시험에는 대표적으로 토익 스피킹과 오픽(OPIC)이 있다.
처음 취업 준비를 하면 토익 스피킹과 오픽 중에 어떤 시험을 볼지 결정하는 것도 은근히 고민이 된다. 기업마다 토익 스피킹을 선호하는 곳과 오픽을 선호하는 곳이 따로 있어서 둘 다 시험을 보아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다가 내가 보기로 결정한 것은 오픽이었다.
내가 토익 스피킹이 아닌 오픽 시험을 보기로 결정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비용적으로 유리했다. 토익 스피킹은 응시료가 77,000원, 오픽은 78,100원이다. 나에게는 오빠가 먼저 취업하고 물려준 오픽 문제집이 있었다. 따라서 오픽 시험을 친다면 새로운 문제집을 사느라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었다. 둘째, 토익 스피킹의 시험 방식보다는 오픽의 시험 방식이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두 시험 간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시험 방식이다. 토익 스피킹은 채점 시 점수를 주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어느 정도 정해진 방향대로 답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픽은 가이드라인이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 말하기에 유독 쥐약인 나는 말하기 시험을 보면 준비한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엄청나게 긴장을 하기 때문에 차라리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는 오픽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물려준 책의 정가는 17,600원이었다. 시험 응시료와 책값을 합치면 토익 시험을 2번 보는 비용에 맞먹는다. 오픽도 매번 말하기 주제가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두세 번씩 접수해서 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옷도 15만 원어치를 안 사는데, 시험 응시료에 15만 원가량의 돈을 지불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번에도 시험은 한 번만 접수하고 준비를 많이 해서 가기로 다짐했다.
말하기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부 시절 나는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는데, 도서관이 너무 조용해서 말하기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카페에 가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고, 집에서 연습을 하자니 가족들이 내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듣는 것보다 더 부끄러웠다. 결국 학교 도서관에서 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뻐끔거리는 연습을 하며 오픽 시험을 준비했다.
오픽 등급 중 가장 높은 것은 AL이다. 나는 스스로 영어 말하기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그 아래 등급인 IH를 목표로 공부했다. 시험장에서는 어떻게든 오픽 시험 시스템 내 가상의 시험 출제자인 Eva가 물어보는 주제와 내가 생각해간 주제의 공통점을 찾아가며 최대한 많이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다행히 바로 오픽 IH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력서를 쓰다 보면 실무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직업이라면 상관없지만 영어를 안 쓰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왜 영어 자격증만 두 개씩이나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원자의 입장에 있다 보니 불만이 생기다가도 영어 쓰기 점수까지 필요하지 않은 게 어디냐, 하며 감사하게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