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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Sep 16. 2023

숨기지 말고 흔들어 버려, 결핍

소수종교에서 벗어나기 ①

양친이 버젓이 살아계신데, 나는 최근에 부모님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부모님이 믿고 있는 소수 종교에서 내가 '무활동' 상태가 된 지도 어언 11년,

당연히 신앙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방인'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부모님은 상견례부터 결혼식까지, 오래전부터 예고해 왔던 대로 결혼에 관련된 모든 일에 불참을 선언했다.


시부모님은 다행히 이런 상황을 연애초부터 인지하고 계셨고, 다 받아들인 상태셨다.

그래서 결혼식도 우리 원하는 대로 - 절에서 둘이서만 끝내도 되고, 결혼식 안 해도 된다 - 진행하라고 해주셨다. 아무래도 신부의 혼주석이 비어있는 것이 많이 신경 쓰이셨던 것 같다.


나는 그 '우리 원하는 대로'를 좀 폭넓게 해석하기로 작정을 하고 결혼식을 준비했다.

1년 전부터 대학교 밴드 동아리 친구들과 선곡을 하고,

공연이 가능한 식장과 장비를 대여하고, 축가 제외 무려 4곡을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시간 관계상 어렵다며 화촉점화, 부모님께 드리는 인사와 같은 절차를 모조리 생략하고 내친김에 혼주석도 없앴다. (그럼에도 결혼식은 3시간을 거의 꽉 채워서 진행해버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너네 부모님 진짜 안 오셨더라."라는 말이 나올 틈이 없었다.

다들 "신부 하고 싶은 것 원 껏 했더라."라는 말을 하며 혀를 둘렀지.


결혼식에 부모님과 관련되어 트러블이 생기는 사례를 종종 보고 들었다.

부모 중 누군가가 결혼식을 가네 마네, 절차가 마음에 안 드네, 뭐 이런 일들.

일종의 화목한 가정에 대한 결핍이 가져오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가리려 해도 어딘가에서 그 긴장감과 불편함 등이 고스란히 느껴지곤 했다.


나도 사실 무난한 결혼 방식을 택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혼주석에 이미 부탁드렸던 대로 큰고모와 큰 고모부를 모셔두고 마치 부모님께 하듯 끌어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 어색함을 도대체 어떻게 하냐고?

부모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그 자리에 고모내외를 모셔둔다고 해도

그 순간 그 결핍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부모님의 종교로 인한 결핍을 너무 자주 경험했다.

그 난감한 순간들을 겪어오며 생긴 나만의 노하우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결핍을 덮어서 가리기보다는, 아예 판을 뒤흔드는 쪽을 선택했다.

덮으려 애쓰던 나의 유년기, 청소년기가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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