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선 Sep 17. 2023

축하가 그냥 그 사람 기분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더라

소수종교에서 벗어나기 ②

어느 날 우리 집에서 생일 케이크가 사라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구의 생일도 기념하지 않으리라고.

대신에 우리 남매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케이크를 사주겠다고 엄마는 약속했다.


내가 정확히 시점을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어릴 때였다.

어른이 되어 부모님과 소통을 하며 알아낸 타임라인의 얼개를 맞춰보면 아마 대여섯 살이었으리라 추측이 가능하다. 

부모님이 종교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시점이었고

우리 집에서 "예수가 대속 희생을 위해 돌아가신 날 외의 날을 기념하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 생일을 포함한 모든 기념일에 대한 권리와 책임이 사라진 날이었다. (나는 그래서 명절에도 뭔가 비일상적인 음식과 문화를 겪어본 적이 없다.)


우리 남매는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난다고 마냥 좋아하며 약속했다.

"우리 이제 다른 사람 생일 파티도 안 갈 거고, 생일 축하도 받지 않을 거야."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약속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어린이 자신만의 힘으로 친구를 사귀기엔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다.

그런 아이들을 대신하여 엄마들이 생일파티 등의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서로의 집에 왕래를 하면서 물리적으로 아이들의 교류에 도움을 주곤 한다.


이런 맥락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굉장히 자주 아이들의 생일파티가 열리며 아이들이 집집을 오갔다.

학교 밖에서 아이들이 서로 똘똘 뭉쳐가며 친해지는 동안, 나는 내향적인 아이가 되어갔다.

내가 어떻게 애써도 이미 친해지고 있는 저 그룹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나는 생일 파티가 있을 때마다 엄마와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엄마는 단순히 내가 놀고 싶은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애들의 생일파티 때마다 아이스스케이트, 피자/치킨 만들기 같은 이벤트 기획을 하며 나와 놀았지만...

친구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과 가족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어느 날은, 우리 바로 윗골목에 사는 여자아이의 집에 "생일파티 때는 다른 방에 있다가 끝나면 함께 놀고 오기"로 약속을 하고 간 적이 있었다.

생일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그 아이의 서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왁자지껄,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동안...

그 아이의 어머니는 상냥하게도 "진선이는 책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말을 건네며 음식을 따로 챙겨주셨다.

한참을 거기서 책을 보던 나는 "생일 축하 의식"이 끝난 뒤에 아이들과 합류하여 노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집으로 걸어갔다.

그 애들 틈에 내가 낄 자리는 없어 보였으니까.


울고 싶은 기분이 계속 올라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짜리가 이해하기에 그 상황과 감정은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아마 그 아이의 방을 가득 채운 책장이 부러워서 그랬던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엄마가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물어보는 질문에는, 

해맑게 책장이 너무 부러웠다는 답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이 때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내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이전 02화 숨기지 말고 흔들어 버려, 결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