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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Sep 23. 2023

비국민으로 살아남기

소수종교에서 벗어나기 ④

2002년 월드컵으로 모두 하나 되고 있을 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이른바 '비국민'으로 낙인찍히고 있었다.

  *비국민이란 일제강점기 등의 시기에 일본에서 국민의 자격이 없는 자를 일컫던 멸칭이다.


월드컵 응원을 하기 위해 우리 반 전체가 시청 앞으로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모이기로 했는데, 나는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볼 때에도 나 혼자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던 때문이기도 했다.


대체 왜?


부모님의 종교에서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애국가도 부르지 않고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는다.

전쟁을 하지 말라 했기 때문에 병역도 거부하고 감옥에 가는 동료 종교인들이 있는데,

일종의 대리전쟁에서 한 나라의 편을 들어서 응원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도 컸다.

(여타 다른 이유가 더 있었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계는 여기까지다. 추가의견이 있는 경우 수정하겠다.)


비국민에게 '국가'란 어떤 존재로 다가오는가.

나는 그것을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이런 식으로 체험했다.

아이들이 나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것.

언제고 함부로 말해도 되고, 공격해도 괜찮은 존재가 되는 것.

부당한 공격에 항의했을 때, 권력(교사)이 내 편이 아니라 상대의 편을 든다는 것.

심지어 교사조차도 사소한 트집으로 나에게 가혹하게 대해도 괜찮다고 느끼게 되는 것.


지금도 기억에 나는 순간이 있다.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사는 나를 수업시간 내내 책상 밑에 들어가 있도록 했다.

모둠별로 앉아있었기 때문에 내 책상 맞은편에는 다른 아이들의 책상이 맞대어져 있었다.

그리고 수업시간 내내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맞은편의 아이는 나를 발로 툭툭 찼다.

나 역시 꽤 성깔이 있는 편이었으므로,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그 아이를 쫓아가 걷어찼다.

그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교사는 내게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그 아이의 밝은 색 옷에 발자국을 남긴 것을 탓하며 체벌을 가했다.


어렸을 때에는 단순히 그 아이의 편을 들었던 교사가 미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떠오르는 기억이 시작부터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업권을 그렇게 침해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은 아니었으리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무도 내 편이 되거나,

혹은 자신들이 당하는 부당함에 목소리 높이지 못하는 교실 풍경에도

무언가 단순한 왕따 문제 이상의 것이 녹아있으리라는 점까지 말이다.


어쨌든 점점 무시와 괴롭힘은 점점 강도를 더해갔다.

나는 그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고, 전학을 보내달라고 부모님께 요구했다.

부모님의 입장은 단호했다.

어디를 가든 네가 변하지 않으면 똑같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 했다.

나는 내 성격이든 어디든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고 거듭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1년이 끝나고, 교사는 마무리 활동 중에 하나로 칭찬 페이퍼 쓰기를 했다.

나는 총 7장을 받았다.

그리고 그 7장 모두, 나를 칭찬하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친절히 대한다.'를 꼽았다.


그때 처음 어렴풋이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을 수도 있구나.

초등학교 5학년이 끝나는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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