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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Oct 01. 2023

나를 살린 건 너희들

소수종교에서 벗어나기 ⑥

나는 언젠가 엄마가 죽은 다음에야 종교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동생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 아이는 스물이 되고 금방 각을 잡았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확실한 건 4월 전에 이미 그 애는 엄마에게 폭탄선언을 날렸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엄마와 함께 종교 모임에 가지 않을 거야. 성경 말씀대로 살지도 않을 거야."


엄마는 나에게 더 큰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무 살짜리 어린 나는 엄마의 말을 그럭저럭 잘 듣는 편이었다.

엄마가 악의 소굴이라며 OT를 못 가게 했을 때에도,

그래서 친구들을 사귀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그러려니 했다.

평일저녁 이틀, 주말 이틀을 종교모임을 가야 하는 것도 빠진 적 없었고, 미리 예습까지 해갔다.

나는 용돈을 전혀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과외를 두 개나 하고 있었는데,

과외에 종교모임까지 하고 나면 나는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게다가 대학에 가자마자 엄마가 연결해 준 대학교 내의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열대여섯 명 정도였던 그들은 모여서 교내에서 선교를 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나는 너무 싫었지만, 엄마가 바라는 착한 딸을 연기하며 그대로 거기에 끼어있었다.


술을 마실 때면 "저는 건배는 하지 않습니다."라는 멘트로 매번 이상함을 확인했다.

술을 마시는데 건배를 안 해? 너 진짜 이상하다.

교수님들은 다행히 굉장히 재미있는 개성으로 받아들여주셨다.

덕분에 대놓고 나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학생들은 없었다.

다만, 보이지 않는 벽이 놓인 것 같은 느낌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때쯤 나는 스무 살짜리들이 흔히 그러하듯 술로 고통을 잊으려 시도하기 시작했다.

매번 술 먹고 울고불고 난리가 나는 나와 엄마의 갈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중

동생이 폭탄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아빠를 원망했다.

당신이 모범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가족들이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만큼 엄마는 내게 요구하는 것이 늘었다.

나에게는 더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더 열심히 전도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졸지 말라고.


하루도 쉬지 않고, 학교-과외, 학교-집회, 선교, 선교-집회의 삶을 살고 있던 나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는데?

그해 4월에 나는 엄마의 바람에 따라 집중적으로 선교 시간을 늘리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한 달에 50시간의 전도를 하려면 주말만으론 모자랐다.  

선교활동을 위한 시간을 늘리고, 학교생활도 하려면 내가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잠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를 이렇게 사랑하고,

엄마가 원하는 걸 이렇게 들어주고 싶지만,

내 몸은 그걸 다 할 수가 없었다.


그날도 나는 집회시간에 졸다가 엄마가 옆구리를 때려 깼다.

엄마는 나를 정말 한심하고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다가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평생 엄마를 만족시킬 수 없어.

이 짓거리는 다 병신 같은 짓거리야.


그 가엾은 병신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내가 참아볼 수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중 엄마가 기가 막힌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너 지금 시위하니?"


엄마한테 내 감정이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도 그렇게 깨달았다.

엄마한테는 엄마만 중요했구나. 그래서 나한테, 동생한테 그럴 수 있었어.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간 이후 동생과 마찬가지로 다시는 종교모임에 나가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엄마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학비를 끊겠다고 협박했고, 나는 조용히 휴학을 신청했다.


신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나라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학교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가족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혼자일 줄 알았다.

그럼 그냥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몇 번씩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안전이 개인들에게 내맡겨져 휘둘리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나를 고통에서 구원한 것들도 결국에는 다정한 개인들이었다.

나는 너무 운이 좋았다.


한번은 트랜스젠더들이 가족의 지지를 받을 수 있냐 없냐에 따라 삶의 질이 너무 달라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경제적/심리적/사회적으로 약자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지지하는 가족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나는 그 말이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글을 읽고 울다가 성소수자단체에 후원을 시작했다.

지지하는 것이 꼭 가족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누군가 딱 한 명만 있어도, 이렇게 살아남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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