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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Oct 03. 2023

행복의 반비례

소수종교에서 벗어나기 ⑦ 마지막

"너무 행복해하지 마. 네가 행복한 만큼 네 엄마는 불행해지니까."




선언과 불참 만으로 자유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가족들은 함께 부대끼며 서로 말라가고 있었다.

서로의 존재가 그저 서로에게 상처일 뿐이었다.


엄마를 떠나보려 무작정, 그저 돈이 제일 적게 드는 곳으로(나는 수능을 본 고3 11월 이후로 계속 과외로 내 식비, 교통·통신비, 교재비등 용돈을 스스로 감당하고 있었다.) 교환 학생을 떠났다.

종교 밖에서의 인간관계에 서툰 내게 너무 외로운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너무 편안한 곳이기도 했다.

나는 그 1년 동안, 지난 세월을 우울 속에 잠겨 지냈음을 처음 알았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기대가 되고, 운동을 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먹는 것 하나하나 어마어마한 의지력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이 너무 낯설었다.

나는 누가보아도 행복한 사람 같았다.


그때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고, 나와 엄마의 중간 연령이어서 양쪽과 가깝게 지냈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한참 나의 생활을 떠보다 완전히 두 손 다 들었다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너무 행복해하지 마. 네가 행복한 만큼 네 엄마는 불행해지니까."


어떻게 자식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과 반비례를 할 수 있을까?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의 상태메시지는, 엄마가 카톡을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쭉 '기다릴게'였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우리라는 걸 누구나 알았다.

하지만 종교 밖에서의 우리 남매는 이전에 겪어본 적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불행을 신앙으로 돌아올 단초라 한다면, 불신을 유지하는 연료는 행복인 셈이었다.


이들의 신앙에서 인류는 영혼을 별도로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죽게 되면 천국도 지옥도 가지 않고 존재가 소멸한다.

다만 때가 되어 악인들이 심판받아 영구히 사라진 이 땅에, 의인들이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된다.

악인의 기준 중 하나는 신의 존재와 신앙을 알고도 따르지 않은 자들이다.

이 교리에 따르자면 우리가 심판의 때에 죽는다는 것은 엄마와의 완전한 작별을 의미했다.

엄마는 그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교환학생이 끝나 귀국한 내게 엄마는 고통에서 몸부림치다 그만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네가 탄 비행기가 추락해서 지금 죽으면 (혹시라도 부활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으니)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어."


나는 더 이상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와 계속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젠 나도 살아야 할 때였다.


"엄마는 '종교를 믿는 나'만 사랑하잖아."

동생이 어느 날 만취해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나는 단 한순간도 신앙으로 위로받은 적이 없고, 행복했던 적이 없어."

나도 입을 열었다.


우리가 속마음을 꺼낼 때마다 부모님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엄마는 내 눈앞에서 한 번 자살을 시도했다.

나는 아빠가 우는 것을 두 번째로 보았다.


서로가 너덜너덜해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대부분 같은 신앙을 공유하고 있었던 외가 식구들과의 모임에서 아빠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애들한테 어떻게 더 강요를 하겠니. 부활의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그 애들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시간도 길어야 80년이야. 그렇다면 오히려 더 사랑해줘야 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이미 우리의 전철을 밟고 있는 사촌동생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을 터다.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날부터 아빠의 말은 그들의 행동 지침이 되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고, 우리의 행복을 바란다는 부모 되기의 연습을 그제야 시작했다.

우리 역시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삶을 그제야 연습할 수 있었다.


긴 터널의 끝이자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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