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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Oct 01. 2023

내 안전을 왜 네가

소수 종교에서 벗어나기 ⑤

"이 반에 김진선이라고 있니? (여기 있다는 나의 대답) 얘들아, 쟤 이단이야. 놀지 마."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 아침, 영어교과 선생님이 반에 와서 선언하신 말씀이다.

영어교사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가 미션스쿨에 다니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미션스쿨(선교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에 들어간 소수종교 신앙인의 6년은 
이 사회에서 소수자가 살게 되는 삶과 닮아있었다.


내가 살던 달동네에는 미션스쿨이 가득 차 있었다.

뺑뺑이를 돌리는 중/고교 신청서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일차로, 나라에서 만든 시스템에서는 소수자를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나라에서 방치된 나는 어떻게 되었느냐?

나는 선택권 없이 6년을 기독교 학교에 배정되었고, 매년 연초면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교사, 교목(학교 담당 목사), 교감과 다투다 못해 부모님(주로 엄마)이 소환되어 와야 했다.


기경례? 안 해요. 애국가? 안 불러요. 애국시?(이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는 분이 많겠지만..) 안 읊어요. 예배? 안 봐요. 종교수업? 특정종교만 가르친다면 안 들어가겠습니다. 아침 반별 예배? 안 해요.


하나하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 담임은 다투다 못해 나의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국어교사다.)

"지금 개고기 집 와서 전 내놓으라 하시는 격이에요."

이 너무 멋진 비유에 잠시 벙찐 나의 엄마는 "제가 개고기 집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나요?"라고 응수했다.

내게는 "네가 학교의 아이덴티티를 위협하고 있다"라고 까지 말했는데,

그때는 너무 착한 어린이여서 말을 못 했지만,

나 하나 정도로 위협받을 아이덴티티면 없는 편이 낫지 않나 싶었다.


하나하나 너무 고통스러웠다.


1. 나는 그 종교를 진심으로 믿고 있느냐? -> 가족에게서 억압을 받고 있는 상황.

2. 그리하여 그 종교인으로서 살고 있을 때 존중받았느냐? ->공교육은 소수자를 보호할 생각이 없다.

3. 그럼 학교를 벗어나면 이 고통이 끝나느냐? -> 사회인들이라고 인권의식이 고등학생과 뭐가 다른가.

4. 그렇다고 종교를 벗어나면 고통을 끝낼 수 있나? -> 당장 가족으로부터 모든 지지가 사라질 상황.


어린 '나'라는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적어도, 이 혼란을 드러내는 순간 학교에서는 예배를 봐야 한다고 억지로 나를 끌어들일 것이었다.

나는 '가족'에 초점을 두기로 결정하고 고집스럽게 종교에 관한 부모의 관점을 밀어붙였다.


제도적으로 예배를 보지 않는 자를 상정하여 만든 분리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예배를 보기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안 

나는 한 마리 연어처럼 그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 도서관(중), 독서실(고)로 향했다.


안 그래도 모든 아이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나에 대해 교사들의 대응방안은 다양했다.

최대한 감싸고 아이들 사이에서 고통을 받지 않도록 애쓰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종교 문제 외의 것들까지 물고 늘어지며 학생들과의 관계를 두배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분도 계셨다.


똑같이 수업시간에 떠들다가 걸려서 불려 나갔을 때,

"진선이는 언어영역 점수가 좋으니까 들어가서 앉아도 돼."라고 한 뒤 나머지 아이들을 때렸던 선생님.


나한테는 학교의 아이덴티티를 위협한다고 4달을 넘게 예배 보라고 싸웠던 선생님이 아침조회시간에

"진선이는 너네 예배 보는 동안 독서실에서 공부하잖아. 너희도 고2라서 마음 급할 텐데 예배 빠지고 공부하고 싶지 않아? 한 시간이라도 아까우면 너네도 가서 말하던가~?"라는 발언을 하신다던가.


분명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고 말을 했음에도 내 생일 선물을 준비해서 반 앞으로 세웠던 선생님.

식은땀 뻘뻘 흘리면서, 반 아이들의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생일을 기념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내게 이미 샀으니 책을 가져가라고 떠안기 셨다. 남들 앞에서 그렇게 안기면 거절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용한 건 아닐까? 그분의 별명은 천사였지만, 내게는 그냥 천사의 탈을 쓴 뭣 같았다.


놀라운 건,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교사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 매년 거의 일치했다는 점이다.

담임의 태도에 따라 나는 때로는 조금 덜 불편하게, 때로는 자살을 생각하면서 1년을 보냈다.

담임이라는 개인의 사고방식에 따라 이렇게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는 교육시스템이라는 것이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소수자의 안전을 그가 만나게 되는 개인의 따뜻한 마음 혹은 인권의식에 기대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같은 맥락에서, 아이에게 부모가 종교를 '권유'하는 상황에서 그 부모의 인권의식에 기대어 '강요'는 하지 않기를 바라며 국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과연 안전한가?

시스템은 도대체 소수자의 안전을 위해서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나는 '너'에게 내 안전에 영향을 미칠 힘과 권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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