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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Aug 31. 2022

아이들에게 폭력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이상한 정상가족: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를 읽고

이 책의 프롤로그는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라는 넬슨 만델라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처럼 저자는 국제구호 개발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던 경험을 살려서 아이들과 가족에 초점을 맞춰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다룬다. 아동학대/체벌, 자녀 살해 후 자살(가족동반자살), '정상가족'에 대한 환상과 그 바깥의 이들에게 가해지는 차별, 입양과 출생률, 국가/공공의 권력이 가족의 어느 선까지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 / 가족 안 - 자식은 내 소유물", "한국에서 '비정상' 가족으로 산다는 것 / 가족 바깥 - '정상'만 우리 편", "누가 정상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규정하나/ '믿을 건 가족뿐'이라는 만들어진 신념", "가족이 그렇게 문제라면/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총 네 가지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중 첫 번째 장인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에서 아동학대와 체벌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나는 우선 여기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아동학대와 체벌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한국 사회에서 체벌이란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으로 학교에서 직접 체벌이 금지된 것은 극히 최근인 2012년의 일이다. 현재 성인이 된 사람들은 얼차려 등의 간접체벌은 물론이고, 직접체벌도 겪거나 주변에서 보며 자라 온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체벌에 대해서 분명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음에도 '체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체벌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잘 자랐다고 믿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가 하면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저렇게 끔찍한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분노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 아주 악한 사람이라고 선을 그어버리고 처음부터 아이를 괴롭히려거나 사망하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여긴다. 사랑이 담겨있는지 여부가 아동학대와 체벌의 주요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다르게 이야기한다. 아동학대와 체벌은 한 끗 차이라고. 처음부터 아이를 크게 다치게 하거나 죽일 의도를 가지고 폭행을 하는 부모보다는, 잘못을 했으니 때려서 알려줘야 한다는 체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자신이 화가 났을 때도 아이 탓을 하며 폭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체벌을 당하며 자라온 세대로서, 체벌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결혼을 앞두고 혹시나 출산과 육아를 하게 되는 경우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 "세상에 맞을 짓이라는 게 어디 있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세상에 맞아도 되는 사람과 맞을 짓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동들은 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이중적인 잣대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가 궁금했다.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동학대와 체벌 사이에 금을 긋듯 아이들에 대한 폭력과 성인에 대한 폭력을 다르게 대하는 시각도 꽤 널리 퍼져있다. 2016년 경기도 가족여성 연구원이 경기도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폭력 허용태도>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98%가 '상대방을 때리려고 위협하는 행동은 폭력'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부모 자녀 관계에서는 생각이 달랐다. '자녀의 습관 교정을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를 때리고 위협해도 된다고 답한 비율은 48.7%,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때리겠다고 위협해도 된다'는 35.3%,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때리겠다고 위협해도 된다'는 응답이 23.3%로 나타났다.

 상황에 따라 부모는 자녀에게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여전히 강한 것이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바라보기 때문에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체벌은 엄연히 별개인 인격체에 대한 구타이고 폭행인데도 아이의 관점이 아닌 성인, 부모의 관점에서 지속된다. 어느 누구도 사랑을 이유로 또는 타인의 행동 교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는데 오직 아이들만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때리는 것이 용인되는 유일한 집단이다.

 미숙한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체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열등한 상대에 대한 교정 목적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오래된 논리다.(ebook기준 18p)"


 이런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어 온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가정에서의 아내 폭력이 그것이다.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듣는 존재기 때문에, 혹은 상대방이 나의 화를 돋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때렸다는 논리, 가정 내에서의 사적인 일이기 때문에 경찰 등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논리가 거의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결국 둘 다 상대를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볼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체벌이 교육에 효과적이다?

 물론 아이를 작은 어른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아이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행동을 전부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아직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때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아직 우리 모두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체벌이 교육에 효과적일까?


 "그러나 수많은 경험적 연구는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없고 되레 폭력의 내면화를 통해 뒤틀린 인성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에게도 반성보다 공포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ebook기준 18p)"
 "매를 들고 무섭고 엄하게 다스려야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고 잘 자란다는 통념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무수한 실증적 데이터는 오히려 그 반대를 가리킨다. 체벌의 긍정적 효과는 그저 믿음뿐이고, 체벌의 부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연구들은 워낙 많아서 이건 논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2016년에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발달심리학자 엘리자베스 거쇼프Elizabeth Gershoff는 이 분야의 거의 '끝판왕'이라고 할만한 연구를 발표했다. 체벌과 관련한 50년 치 데이터를 메타 분석한 결과 체벌을 받은 아이도 반사회적 행동과 공격적 성향을 보이게 될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ebook기준 18-19p)"


 사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이다.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는 자라서 폭력을 대물림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거쇼프의 연구는 '손바닥으로 아이의 엉덩이나 팔다리를 때리는 정도'로 체벌을 규정하여 일반 사람들이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는 수준의 체벌을 대상으로 그 영향을 분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체벌과 신체적 학대가 동일한 수준으로 아이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 것이다.

 

 정말 아이들의 교육을 중요시 여긴다면 체벌이 영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폭력의 대물림


 "부모의 훈육적 체벌은 의도가 선하기 때문에 신체의 온전성 및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상 부모 중심, 성인 중심 해석일 뿐이다. 체벌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에 대해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체벌은 갖가지 이유로 행해질 수 있고, 거기 따라붙는 훈계도 그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표면상의 다양성을 넘어서, 체벌은 언제나 단 하나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한다. 바로 체벌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너의 몸은 온전히 너의 것이 아니며, 나는 언제든 너에게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체벌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 가르침을 수용한다는 뜻이다. (하략)」

 나는 언제든 너의 몸에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 과거 여성에 대한 폭력도 같은 메시지를 깔고 있었다. 체벌을 비롯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는 타인에 대한 반복적 폭력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언제든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메시지, 당신이 존재할 권리를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인 나라는 주장, 그렇게 힘으로 상대를 침묵시키고 상대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때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상대 안에 심으려 하는 시도다.(ebook기준 19p)"


 나보다 약하기 때문이든, 소유물이라고 생각해서든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아이들에게 '나 역시 같은 상황에 있다면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라는 무의식적인 가르침을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화가 났기 때문에, 상대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기타 등등 다양한 이유로 부모가 훈계를 했던 것처럼 아이도 같은 상황이 오면 분노를 폭력으로 표현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공권력의 개입


 저자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으로 가정 내에서도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 내에서 가장 약자인 아이들을 보호하는데, 가족 구성원의 도덕성에만 기대는 것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쓰인 시점은 2017년(ebook기준)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인 2022년 8월 사이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기긴 했다. 민법 제915조에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하거나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된 징계권이 삭제된 것이다. 그동안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해돼 아동학대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해당 규정을 삭제해 자녀에 대한 체벌이 금지됨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한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77795.html#csidx373bb23d0c05fafa88d94042873ea1e)



 나는 사실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 때 폭력의 대물림이 끊긴 사회의 모습을 살짝 꿈꿔본 적이 있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시위 장소를 겁내지 않고, 스스로도 폭력적인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으며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었겠으나, 나는 그것이 학교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체벌이라는 폭력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세대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체벌을 금지했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훈육이 어려운 아동, 청소년이 있다고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문제행동의 이면에는 폭력을 포함한 여타 이유가 내재되어 있어, 체벌이 이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단순히 보기 싫은 것에 뚜껑을 덮어 잠시 보이지 않게 만드는 임시방편이다. 오히려 그 문제행동의 이유를 고민하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2024.5.15.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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