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헤라디야 Oct 30. 2023

어느 취미 연주자들의 주말 이야기

사람 네 명에 악기 네 대, 함께 소리를 만듭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 연주할 기회가 생겼다. 기타를 치는 M과 첼로를 켜는 H, 밴조를 퉁기는 C, 그리고 올해 들어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한 나. 이렇게 네 명이서 함께 모 식당 겸 바에서 공연이라기보다는 합주에 가깝게 함께 연주하게 된 것이다. (밴조는 동그랗게 생긴 몸통에 지판이 붙어 있는 악기이다. 기타보다 울림이 짧고 경쾌한 뚱땅뚱땅 소리가 난다.) M과 J 두 사람은 지방에 살고 각자 하는 일이 있기에 거의 한 달간 넷이서 모일 기회가 없었다. 어떤 날은 C가 바쁘고, 또 어떤 날은 M과 H가 서울까지 올 수 없었다. 스케줄이 여유롭고 이동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나로서는 불만스럽다기보다는 미안했다. 단순히 친구들과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온다는 게 얼마나 큰 헌신인가.


거의 정규 멤버(?)에 가깝게 굳어진 우리 사인방 외에 어쩌다 한 번씩 합류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중 가장 열심인 친구는 아마도 제주도에 사는 D일 것이다. 바이올린과 만돌린을 잘 다루는 D는 제주도 생활에 크게 만족했지만 함께 음악을 연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늘 한탄한다. 얼마 전에 어머니의 방문으로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게 된 D는 바이올린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하필 그날따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빴고, 서울에 사는 C와 나만이 함께할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못 온다며 울상이 되어 있던 D는 C가 도착하자마자 달려들어 격하게 포옹했다. 바이올린 두 대에 밴조 한 대. 우리 세 사람은 작은 바에서 열심히 합주를 했다. 술 취한 캐나다 장정 두 사람이 신나게 발을 굴러대며 장단을 맞췄다. 동행한 D의 어머니는 거의 매니저라도 된 듯이 행인들에게 들어와 보라며 손짓을 하고 바 안의 손님들과 대화를 나눴다. 참 시끄럽고도 즐거운 밤이었다.


제주에서. 몸통이 동그란 악기가 밴조이다. 그 옆으로 보이는 D의 바이올린(뒤)과 내 바이올린(앞).


한 번은 M과 C, 내가 오로지 D와 함께 연주하기 위해 제주도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중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해서 해변도 구경 못하고 올라온 거, 실화인가? 안타깝게도 그렇다.) D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두 악기를 번갈아 연주하며 신명 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온종일 음악을 연주해도 지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D와 C가 그렇다. 나는 그만큼의 열정을 갖추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에너지가 없는 것인지 몰라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한다. 그래도 제주도에서 보낸 둘째 날은 몇 시간이나 D와 음악을 연주하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함께 작은 연주곡을 하나 만들었고, 돌아서자마자 그 곡이 가락과 리듬을 모두 까먹어 버렸다. 까마귀 고기라도 구워 먹은 것처럼.




도중에 마주친 M과 함께 음식점에 도착하자 2층에는 손님이 많았지만 우리가 연주하기로 되어 있던 3층에는 C와 사장님, 그리고 곱상하게 생긴 바텐더, 그렇게 세 사람뿐이었다. 나는 평일 저녁에도 이 식당 3층이 인파로 붐비는 것을 보아 왔길래 의아했다. 사실 우리로서는 '공연'이 아닌 '합주'를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다만 사장님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주말 저녁인데 층 전체가 이렇게 한가하다니.


잠시 후에 H가 첼로를 등에 매고 도착했다. 우리 사인방이 모두 모이는 건 한 달 만이었다. 늘 서로 일정이 어긋나다가 이번에는 모처럼 넷이 연주할 수 있게 되어 다들 은근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D는 제주도에서 마음속으로 반쯤 통곡하고 있었으리라.) 식당 겸 바의 사장님은 우리에게 연주의 대가로 음식과 음료를 제공했다. 곱상하게 생긴 바텐더가 음료 주문을 받았다. 다들 맥주. 나는 클럽 소다. C가 바텐더에게 말했다. "쟤만 클럽 소다 마신대요." "클럽 소다가 어디가 어때서?!" 내가 건너편에서 외쳤다. 나는 술이 들어가면 늘 리듬부터 엉성해진다. 그다지 술에 약한 편이 아닌데도 그렇다. 어쩌면 심리적인 요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다들 어떻게 체내에 알코올을 담은 채로 멀쩡하게들 연주하는지 대단할 따름이다.


약속한 시간이 됐지만 여전히 3층은 비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잠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연주를 시작했다. 레퍼토리는 주로 미국의 전통 음악 중 하나인 올드타임(old-time) 곡들이다. 흔히 생각하는 컨트리 음악과 약간 비슷하지만 더 예스러운 느낌이 들고 화성 진행도 더 단순하다. 연주곡과 노래가 있는데, 연주곡은 경우에 따라 열 번씩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지루해하지 않는 것은 연주할 때마다 달라지는 작은 뉘앙스들 때문이다. 올드타임 연주곡은 장조의 밝고 신명 나는 곡이 많다. 반면에 가사가 있는 노래들은 더 느리고 다소 서정적인 분위기의 곡들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연주하는 곡들은 그렇다.


M과 C의 목소리가 듣기 좋은 화음을 이루며 네 악기의 연주 위로 펼쳐졌다. 이런 음악을 좋아한다는 바텐더는 손님이 없는 김에 신나 하는 표정으로 다가와서 열심히 비디오를 찍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주 서서히 손님들이 나타났다. 한 명. 또 두 명.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2층으로 내려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우리야 사람이 없어도 상관없지만 좀 난감하네'하고 생각할 즈음 가까운 친구 N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사교성이 뛰어나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우리의 사랑스러운 N. 고맙기도 하지. 사장님에게 조금 덜 미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장님은 M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근데 오늘 저녁은 사람이 별로 안 올 것 같네요."




N의 친구들은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떨면서도 곡이 끝날 때마다 열심히 소리 지르고 손뼉 치는 매너(?)를 잊지 않았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구나. 한참을 연주하고, 또 노래하고. 아는 곡들을 다 꺼내 놓고, 간혹 확신이 안 서면 그 자리에서 곡 정보를 검색하고 가사를 찾으면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소리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곡을 즉흥에서 합주하는 건 소위 '곡을 따서 하는' 합주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대개 노래를 하는 M과 C는 직접 반주를 해야 하므로 곡의 구성 등이 더 익숙하다. 나는 주로 화음에 따라 바이올린 활을 짧게 쓰며 리듬을 맞추거나 멜로디에 어울리는 선율을 뒤에서 연주한다. 정말 대단한 사람은 H인데, 곡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첼로현을 퉁기며 베이스 파트를 연주하고 또 활로 선율을 켜서 연주하기도 한다. 다들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표현이 부족함 없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나만 빼고. 우연히도 나이까지 제일 어린 나는 세 사람을 따라가려면 갈 길이 한참 멀었다.


한참을 연주하자 웨이트리스가 와서 식사를 주문하겠는지 물었다. 평소에는 하루에 한 끼를 크게 먹어서 종일 연명하는 나지만 공짜 음식인데 당연히 먹어야지. (공짜는 아니고 노동의 대가라고 해야 하나.) 배가 안 고프다던 M만 빼고 다들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은 매우 맛있었지만 메뉴가 잘못 나온 H는 살짝 실망한 표정으로, 그래도 꾸역꾸역 접시를 비워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한참 수다를 떨다가 우리는 다시 악기를 잡고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안면이 있던 N의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던 M도 부리나케 다가와 기타를 잡았다. 우리 몸속에는 아직 몇 곡을 더 연주할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연주했다. 이걸로 정말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이 경험을 위해 먼 길을 온 M과 H가 전혀 아쉬워하지 않도록. 그리고 애수 어린 왈츠 한 곡을 연주하며 그날 밤의 연주를 마무리지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뭐 그런 느낌이랄까. (우연히도 오래전 내게 그 곡을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은 지금 연주하는 어쿠스틱 바이올린을 내게 준 친구이기도 했다.)


물론 아직 헤어질 시간은 아니었다. 숙소를 예약해 놨다며 아쉽게 일찍 떠난 H만 빼고. 즐겁게 얘기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우리도 식당을 나왔다. C가 말했다. "한 잔 더 하고 갈 사람? 내가 쏜다!" C가 강추한다는 '이름은 모르지만 그 근처에 있는 위스키 칵테일이 아주 맛있는 이층짜리 바'를 찾아서 근처를 헤매다가 아는 사람들도 마주치고, 반쯤 포기해서 다른 바에도 들어갔다가 우리는 드디어 그곳을 찾아냈다. C가 그 늦은 시각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서 바 이름을 알아낸 것이다. 새벽 한 시 가까운 시각이었다. 아, 위스키 칵테일에 대한 너의 집착은 정말로 존경스럽구나, C.


정말 맛있었던 위스키 칵테일...의 1%도 못 미치는 그림.


그렇게 해서 찾아간 이층짜리 바의 위스키 칵테일은 정말로 맛있었다. 그 시점에서 M은 이미 나사가 살짝 풀려 있었다. 술에 강한 C도 이젠 취한 기색이 보였다. 늦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재미있게 감상(?)했다. 원래 안(or 덜) 취한 사람이 취한 사람 틈에 섞여 있으면 아주 어색하거나, 아주 재미있거나 둘 중 하나 아닌가. '세상에서-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네가 원하는 한 사람의 공연을 볼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할 거야?' '넌 어렸을 때 무슨 음악 들었어?' '예전에 우리 아빠가 악기상을 하셨는데 하루는 문신투성이 아저씨가 가게에 나타나서는...'


우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이층짜리 바의 이층에 앉아 취담을 나누었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언젠가는 여기서 나가서 집에 가야 할 테고, 그럴 생각을 하니까 지금부터 아쉽다'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찾아왔다. 자그마치 새벽 2시 30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늦게까지 친구들이랑 밖에서 논 게 언제였더라. 친구들이 가는 걸 보고 나서 근처에 사는 나도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밤을 마쳐야만 하기에 아쉽지만 그 밤을 보냈기에 충만한 마음으로.


그리고 얼마 후, 단톡방의 알람이 울렸다. "거기 사장님이 이번 주말에 다시 와 달래. 시간 되는 사람?"


당연히 가야지.

작가의 이전글 라면을 끓일 수 있는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