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축제의 4가지 전환 키워드
매년 한국 곳곳에서 축제들이 터지듯 생겨난다.
꽃이 피면 꽃 축제, 눈이 오면 눈 축제, 뭐라도 있으면 일단 축제를 연다.
표면적으로는 "활기찬 문화 현장" 같지만, 가끔은 이게 축제인지 야시장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K-콘텐츠는 전 세계를 휘젓고, 글로벌 팬들은 셀카봉을 들고 몰려들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축제, 과연 세계 축제 지도에서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나 역시 그럴 역량을 갖췄다고 자신하긴 어렵다. 다만, 축제 현장에 애정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최근 개최된 전 세계 주요 축제와 박람회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았다.
거기서 드러나는 흐름과 변화 속에, 한국 축제가 참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1. 디지털과 현실의 결합, 축제는 이제 플랫폼이 된다
최근 세계 주요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디지털’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이다.
단순히 AR 필터나 이벤트 앱 수준을 넘어서, 디지털이 축제의 기획, 운영, 확장, 수익 구조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표 사례로는 SXSW 2025를 들 수 있다. 이 행사는 기술·음악·영상 산업을 아우르는 복합 페스티벌로, 오프라인 현장에서는 AI 기반 큐레이션이 논의되고, 온라인에서는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참여자가 동시 접속한다. 또 다른 예시로 Art Basel은 VIP 고객을 위한 ‘가상 프리뷰룸(VIP Viewing Rooms)’을 운영하고, 작품 구매가 개별 갤러리와 바로 이어지며, ‘현장’과 ‘데이터’ 두 축으로 분산되고 있다.
Summer Game Fest는 ‘스트리밍이 곧 본 행사’인 구조로 완전히 전환한 최초의 게임 페스티벌로 꼽히며, 현장보다 온라인 뷰어가 수십 배 많고, 여기에 스폰서·브랜드·게임 체험이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 SXSW(South by Southwest) 2025 소개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_Ee7x57gv_0
* Summer Game Fest 2025 리액션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9S5SPGsb5M
(Summer Game Fest는 스트리밍이 중심이 되는 행사답게 유튜브에 리액션 리뷰가 많다.)
한국은 어떨까? 물론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는 축제도 있다. 일부 전시에서 VR 체험, 메타버스 박람회를 시도하고, 유튜브 생중계나 SNS 이벤트도 활발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디지털을 하나의 부속 요소로 활용할 뿐, 그것이 ‘축제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에는 이르지 못했다. 온라인 관람객이 실시간 참여할 수 있는 구조, AI 기반 큐레이션, 디지털 콘텐츠 아카이빙과 수익화는 아직 초기 단계이거나 부재하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온라인에서 이 콘텐츠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현장을 오지 못하는 관객은 어떤 참여 방식으로 환대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축제는 이제 특정 장소에서 특정 시간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확장을 통해 시공간을 넘는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2. 정체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 ‘왜 이 이야기를 지금 해야 하는가’
전 세계 축제 트렌드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흐름은, 축제가 단순한 소비형 문화 행사가 아니라 동시대의 정체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최대 사진 축제로 스페인에서 개최되는 Photo España 2025는 ‘After All’이라는 주제로 4월부터 시작되어, 여러 전시에서 환경·기후·사회 인권 관련 작품을 조명했다. 관람객은 단지 아름다운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작가의 시선과 ‘나의 위치’를 돌아보게 된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WorldPride 2025 역시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축제다. 겉으로는 퍼레이드, 콘서트, 마켓이 펼쳐지는 대형 문화 행사지만, 그 안에는 LGBTQ+ 인권 포럼, 젠더 교육 세션, 가족 단위 프로그램, 퀴어 아트 전시 등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이 축제는 단지 ‘함께 노는 장’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존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열린 플랫폼이었다.
* Photo España 2025 소개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abNaAklifQ
* WorldPride Washington, DC 2025 소개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lu016dmTMA
한국은 아직 이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물론 환경, 전통, 마을 공동체를 주제로 한 지역 축제도 있고, 젠더나 사회적 약자 이슈를 다룬 전시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다수 공공 축제는 여전히 계절성(봄꽃, 단풍), 관광 유치, 지역 특산물 중심으로 기획된다.
왜 지금, 왜 이 지역에서 이 콘텐츠를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서사는 빈약하다.
관객이 ‘이 축제는 나와 어떤 연결이 있는가?’를 자문할 수 있는 구조가 부족하다.
이제는 축제에도 정체성, 시대성, 공동체성이 필요하다. 청년 세대의 번아웃과 회복을 다룬 ‘마음 쉼 축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을 위한 ‘도시 생태전환 페스티벌’, 젠더와 다양성 감수성을 중심에 둔 ‘퀴어 도시 문화주간’ 같은 테마형 축제가 더 많이 기획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축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 없이 반복된다면, 그 축제는 결국 기억되지 않는다.
3. 산업 전시마저 축제화, B2B와 B2C의 경계를 허물다
과거 전시·박람회는 기업의 제품 소개와 거래를 위한 B2B 플랫폼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산업 박람회조차 ‘축제화’되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다.
참가자는 물건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경험’하고, ‘참여’하며, ‘공감’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Bar Convent Brooklyn(BCB) 이다.
이 행사는 바텐더와 음료 전문가, 주류업계 관계자들이 모이는 어찌보면 좀 지루해 보일 수 있는 트레이드 행사이다. 하지만 2025년 행사에서는 트레이드 이벤트 특성은 유지하면서도, no/low-alcohol 트렌드를 중심으로 한 실무 교육 강화, 정신건강과 다양성 중심의 사회적 주제 확장, VIP 및 저자·피치 발표 등 새로운 포맷 추가, 코트야드·파티의 네트워킹 경험 확대를 통해 전반적인 참여자 경험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또한, 프랑스 파리의 Maison & Objet나 이탈리아의 Salone del Mobile 같은 디자인 박람회는 ‘전시’에서 ‘문화 축제’로 확장되었다. 각 브랜드의 전시는 단순한 제품 배열이 아니라, 공간 디자인, 음악, 미각 체험, 관객 참여형 설치예술이 결합된 하나의 스토리텔링이다.
* Bar Convent Brooklyn 2025 리뷰: https://chilledmagazine.com/inside-bar-convent-brooklyn-2025/
* Maison & Objet 2025 리뷰: https://www.essentialhome.eu/inspirations/lifestyle/maison-objet-paris-2025-a-glimpse-into-the-future-of-design/
한국의 산업 박람회는 여전히 ‘기업 부스 중심, 전문가 관람 중심’인 경우가 많다.
참여자는 관람객이 아니라 바이어로만 분류되고, 프로그램은 B2B 회의나 세미나에 한정되는 구조다.
관객이 즐기고, 놀고, 직접 체험하면서 브랜드와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은 부족하다.
더군다나 지역 축제나 창업 박람회가 함께 열리는 경우에도 두 행사 간 연결은 거의 없다. 이제는 산업 박람회도 체험 중심의 축제형 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스타트업 피칭을 공개 오디션처럼 구성하고, 제품 시연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워크숍으로 전환하며, 로컬 브랜드와 청년 기업의 협업 스토리를 전시관 안에 담아내는 방식이 필요하다.
산업 콘텐츠도 ‘문화’가 되고, 전시도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획자와 기업, 그리고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전시와 축제는 하나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연결될 수 있다.
4. 글로벌 협업과 다국적 네트워크, '축제는 함께 만든다'
영국 런던에서 매년 개최되는 Totally Thames Festival은 템스강을 중심으로 열리는 9월의 대형 문화축제다. 이 축제는 단순히 지역 행사에 머물지 않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방글라데시, 우간다 등 세계 각국의 공동기획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해 템스와 그들 고유의 강을 연결하는 다국적 협업 프로젝트를 운영해왔다.
예를 들어, ‘Rivers of the World’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이 각자 자기 강의 환경 문제를 예술로 풀어내며 서로 교류한다. 단순한 초청이 아닌, 공동 창작·공동 메시지 전달의 방식이다.
또한, 프랑스의 European Youth Event(EYE) 는 유럽의회 주관 하에 열리는 대규모 청년 축제이자 정책 토론 플랫폼으로, 유럽 40개국 이상의 청년들이 직접 주제 제안부터 콘텐츠 제작, 퍼포먼스 기획까지 참여한다. 이는 축제를 단지 문화 소비가 아닌 정책 실험과 다국적 시민연대의 장으로 만든 사례라 할 수 있다.
* Totally Thames Festival 알아보기: https://thamesfestivaltrust.org/
* European Youth Event(EYE) 2025 소개: https://jef.eu/news/call-for-participants-european-youth-event-eye-2025/
반면 한국의 많은 축제는 여전히 ‘K-콘텐츠 수출’ 관점에 머물러 있다. 외국 관객과 관광객은 많지만, 콘텐츠 기획 단계에서부터 해외 기관, 작가, 큐레이터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기획 구조는 아직 미약하다.
국제 교류는 여전히 초청이나 공연 참가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외국 기획자, 큐레이터, 창작자와 함께 기획 초기부터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프로그램 실행까지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는 공동 창작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해외 축제와의 MOU, 도시 간 협업을 통해 ‘서울×런던’, ‘전주×오슬로’처럼 도시간 문화 교류축제를 설계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 한국 축제 현장을 돌아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화려한 숫자 너머에 숨겨진 구조의 문제, 그리고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축제의 틀.
두번째 파트 'K-축제의 현 주소와 다음을 위한 과제'에서는 ‘K-축제’라는 이름이 진짜 힘을 갖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