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한국 축제의 현 주소와 다음을 위한 과제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2025년 상반기 국내 축제 동향을 살펴보면, 표면적으로는 꽤 활발해 보인다.
서울 썸머바이브, MyK FESTA, Mundo Pixar 전시 등 다양한 장르의 이벤트가 열리고 있고, 관람객도 적지 않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디지털 플랫폼, 체험 콘텐츠, 글로벌 IP, 팬덤 연계 등 최근 축제 트렌드에 약간이라도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 하다.
예컨대, MyK FESTA는 K-콘텐츠 팬덤을 위한 몰입형 체험과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의 소통 방식을 시도했고, Mundo Pixar 전시는 글로벌 콘텐츠와 관객 체험을 결합해 ‘IP 기반 체험형 축제’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서울 썸머바이브'는 대중음악, 여름 테마, 도심 공간을 엮어 하나의 복합 문화 이벤트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향후 한국 축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나침반쯤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사례와 비교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보인다.
대부분의 축제는 오프라인 경험을 전제로 설계되고, 디지털 플랫폼은 보조적이거나 이벤트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스트리밍, 실시간 인터랙션, 온라인 큐레이션 등은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았고, 사후 콘텐츠화도 약하다.
국내에서 메타버스 페스티벌이나 AR 체험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회성 기획이거나 기술 자체에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거리예술축제를 들 수 있다.
이 축제는 코로나19 기간이던 2020년, ‘낯선일상’이라는 제목의 티저 영상을 시작으로, 평소 개방되지 않았던 서울의 장소에서 촬영한 거리예술 퍼포먼스 영상과 더불어, 해외 아티스트들의 원격 공연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며 한때 디지털 전환의 실험적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오프라인 무대가 봉쇄된 상황에서, 기획 영상과 원격 참여 콘텐츠로 새로운 축제의 형식을 타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그러나 2023~2024년 축제는 다시 오프라인 중심 구조로 회귀했고,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큐레이션 등의 구조는 거의 사라졌다. 일부 개막식, 공연 영상이 SNS와 유튜브 하이라이트, 티저 영상으로 남긴 했지만, 축제 전체의 서사나 경험을 온라인에서 따라가거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는 부재했다.
디지털 전환은 일회성 대응에 머물렀고, 축제 구조에 내재화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 미공개 공간 '캠벨 선교사 주택'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https://www.youtube.com/watch?v=wdrzXtfnCaM
* 서울 도심 곳곳에서 선보인 거리예술 퍼포먼스: https://www.youtube.com/watch?v=5KpFFWPaRgE
대부분의 축제는 계절(꽃, 바다), 지역 특산물, 전통문화, 관광자원 중심이다.
물론 지역축제의 기본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후 위기, 젠더, 고립, 치유, 생태 회복 같은 현시대의 중요한 질문에 응답하는 축제는 여전히 드물다.
그나마 젠더나 청년 세대를 다루는 소규모 기획이 존재하지만, 공공 주도의 축제 기획 체계에서는 이러한 이슈들이 ‘민감한 주제’로 분류되며 여전히 회피되고 있다.
축제가 담아야 할 시대의 목소리를 기획자가 먼저 외면하는 구조는, 결국 관객과의 정서적 거리만 키울 뿐이다.
그 결과 많은 축제가 ‘재미는 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행사로 머무르게 된다.
예를 들어, 2025 서울퀴어문화축제는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과 다양성을 정면으로 다룬 몇 안 되는 사례다.
올해는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내걸고, 퍼레이드, 커뮤니티 토크, 아트 전시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의 존재와 연대를 강하게 드러냈다.
정치적 반대와 공공 지원 배제라는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이 참여한 이 축제는, 단순한 문화 이벤트를 넘어 동시대의 긴장을 품은 공공적 실천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예외에 가깝다.
대다수의 축제는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을 외면하고, 반복되는 포맷과 익숙한 테마에 안주한다.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축제는 단지 흥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를 묻고 답할 수 있는 사회적 서사의 플랫폼이어야 한다.
산업 박람회는 전시 부스 중심, 축제는 체험 중심으로 따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며, 스타트업 피칭이나 로컬 브랜드 체험이 함께 이루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서울디자인페어나 각종 창업 행사에서도 축제적 요소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없지는 않지만, ‘산업 전시도 재미있을 수 있다’, ‘비즈니스도 축제처럼 할 수 있다’는 개념은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
다만 최근 일부 시도에서는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 전시와 토크 콘서트, 푸드트럭, 라이브 공연을 결합해서 문화형 박람회를 시도하거나, 지역 산업과 청년 디자이너의 협업을 통해 체험 프로그램과 시제품 판매를 연계하는 등 산업과 문화의 연결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산업, 창작자, 소비자, 관람객이 서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 채 각각의 이벤트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예산은 중복되고, 효과는 분산되는 비효율의 원인이 된다.
해외 아티스트의 초청은 종종 있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외국 기관, 큐레이터, 작가와 함께 설계하는 프로젝트는 흔치 않다.
문화 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은 많지만, 축제 자체가 글로벌 플랫폼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국제 교류는 ‘교류를 위한 교류’에 머무르기 쉬운 현실이다. 실질적 공동 기획과 공동 메시지를 만드는 구조, 공동 예산과 공동 책임이 수반되는 기획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다국적 문화 생태계는 이루어질 수 없다.
앞으로의 한국 축제산업은 단순한 방문객 수나 경제효과 중심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온라인 관람자에게도 ‘참여하고 있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며,
실시간 콘텐츠와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통해 경험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기술이 단순한 홍보 수단이 아니라, 콘텐츠 설계의 핵심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사후에도 남는 온라인 콘텐츠와 축제 아카이브 플랫폼 구축 역시 중요하다.
이 행사는 왜 필요한가?
이 공간에서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획자는 축제를 통해 동시대의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년 번아웃 이슈를 다룬 '마음 쉼 축제'나, 기후 위기 대응을 주제로 한 도시 생태전환 페스티벌 등은 축제가 사회적 질문에 반응하고, 관객이 직접 참여하며 성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례다.
관객이 ‘이 축제는 나와 무슨 관련이 있지?’라고 물었을 때,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지역 축제는 단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나고 자란 브랜드와 사람,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전시회도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만드는 구조로 변해야 한다.
B2B 중심이었던 산업 박람회도 B2C 구조를 결합한 참여형 콘텐츠로 탈바꿈할 수 있다.
국제 기획자, 작가, 기관과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단발성 초청이 아닌 중장기 파트너십 기반으로 설계해야 한다.
축제의 국제화는 단지 해외 예술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콘텐츠와 기획자가 ‘함께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서울도, 전주도, 강릉도 하나의 ‘글로벌 축제 도시’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서울은 IT와 K-콘텐츠 기반의 디지털 아트 축제를 통해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 도시로,
전주는 전통과 독립영화를 결합한 시네마&레지던스 축제를 통해 아시아 영화 플랫폼 도시로,
강릉은 자연과 지역 문화를 활용한 생태·힐링 축제를 통해 기후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규모가 아닌 구조의 전환, 반복이 아닌 실험, 이벤트가 아닌 플랫폼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축제 기획자, 지자체, 민간 기업은 지금부터라도 디지털 인프라 개선, 공동기획 파트너 발굴, 콘텐츠 방향성 점검 같은 실질적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축제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도 '구경'이 아닌 '참여'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다음 축제의 공동 기획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축제의 미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