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두근 Oct 22. 2020

당신의 재산목록 1호는 무엇입니까?

가장 소중한 것

아내와 1박 2일 주말여행을 갔다.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이라는 곳이다. 그곳은 명상을 테마로 하는 곳으로 아침에는 명상, 저녁에는 요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침과 저녁 식사를 사찰음식으로 제공하는 것도 특이하다. 숙소는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TV와 인터넷이 안된다. TV와 인터넷이 안돼서 심심은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제대로 쉴 수 있다. 근처 월정사 전나무 숲, 상원사로 가는 선재길 등이 가까이 있어 자연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오후 3시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편백나무로 꾸며져 있고, 명상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다. 정원을 바라보는 큰 창이 있고 그 앞에 방석이 놓여 있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세련되게 꾸며진 카페테리아로 갔다. 채식으로 차려진 사찰음식 스타일의 맛있는 음식을 저녁으로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치유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강사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듣게 되었다.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현대인은 움직이기를 싫어해 근육이 망가져 병이 생기는 거란다. 건강하려면 피를 잘 순환시켜야 하고, 피가 공급되는 곳에는 암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이 과학적으로 정확한 것인지는 나는 모르겠다. 한참 요가 동작을 하는 도중에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재산 목록 1호는 무엇입니까?”
“......”


우리는 강사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강사는 다시 말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몇십억 하는 아파트인가요?”
“...... ”
“아닙니다. 여러분의 재산 목록 1호는 튼튼한 허벅지입니다.”
피를 잘 순환시키기 위해 가장 근육이 많은 곳인 허벅지가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뭣이 중헌디? 여러분은 뭣이 중한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재산이 아니라 생명이고 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요가를 하면서 내 몸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느꼈다. 작년에는 오십견으로 한참 고생했는데, 요즘은 오른쪽 고관절 부위가 불편해서 걸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에게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의 지도에 따라 한 시간 동안 ‘치유요가’를 하고 나니 뭉쳐있던 근육이 풀리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나는 주말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말이 묘하게 귓속을 맴돌았다.
“뭣이 중헌디?”
나는 무엇이 중요한지 제대로 알고 있고 거기에 맞게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머리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건강을 지키지 못했다. 말로는 가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직장과 일이 우선이었다.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지만 건강을 지키지 못했고, 어느새 가족과 서먹해져 있다.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것을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았고, 휴가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여행했다. 경치 좋은 곳도 여행하고 맛난 음식도 함께 먹었던 추억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추억이 내게는 크게 위로가 되었다. 소위 사회에서의 성공을 후순위로, 가족에게 우선순위를 두었기에 가능한 추억들이다. 그 결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맞벌이 직장인들이라면 직장의 일로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때는 아이들 생각이 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직장인이라면 직장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고, 집에 있거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오히려 적다. 시간은 많지 않아도 가족과의 시간을 더 밀도를 높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가족도 직장도 개인 생활도 모두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갈등과 후회가 생길 수 있다. 현실에서 무척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무엇이 더 소중한지 우선순위는 마음속으로 정해두는 것이, 인생의 안개를 걷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면서 산다. 어떤 때는 아들이고, 아빠이고, 남편이고, 형제이고, 친구이고, 연인이고, 회사원이고, 동료이고, 선배이고, 후배이고, 동호회 회원이고, 시민이다. 다양한 역할에 여러 가치들이 있다. 어떤 때는 A라는 가치가 B라는 가치와 서로 충돌되는 경우도 많다.


직장, 가족, 나의 꿈과 목표에 대한 가치관과 우선순위 정립이 필요하다. 인생의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다면 마치 안개 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고속도로에 안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 속도로 달리기 힘들 것이다. 아니면 내가 놓쳐버린 어떤 일이 인생의 후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전 06화 오십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