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병동 14박 15일 기록 (1)
2022년 메모장에 적어두고 언젠가 써야지 했던 건데,
사실 재작년에는 항암으로 와신했고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아프고 힘들 때는 그 감정에 내 존재까지 녹아 버려서 거기서 뭔가를 글로 쓸 무언가를 걸러내기란 어려우니까.
나는 1년쯤 지나면 이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6인실을 썼지만 코로나 덕분(?)에 4인이 있었는데 환자와 보호자(간병인)까지 여섯이 쓴 거나 다름없다.
수술 후 3일째까지는 통증에 괴로웠지만 그 후부터는 통증이 줄어들어 점점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튼,
입원 나흘 째 새벽에 중환자실에 계시던 할머니 한분과 다소 수다스러운 간병인 한분이 들어왔다.
할머니는 여든 정도 되셨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셨는데
먹는 것도 없이 실변을 하셨다. 다른 때는 견딜 수 있었는데 식사시간 전후에는 참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할머니의 간병인은 할머니 수발을 조용히 드는 게 아니라 생중계하다시피 해서
더 애를 먹었다.
(이제 와서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그 할머니는 어떠셨을까도 싶다)
그런 날(?)은 식욕이 반감되어서 엄마도 나도 밥 먹기를 중단하고 말았는 데,
엄마가 그릇을 반납하러 간 사이에 간병인이 커튼을 반쯤 걷어놓는 바람에 나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옆에서 달그닥달그닥 식사소리가 들리고
화장실에서 간병인이 변기물을 내리고 걸레를 빠는 물소리가 들리는 와중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았고 나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지쳐 보였는 데, 나는 뭐라 말 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삶이다. 삶. 이것이 삶이다.
그냥 계속되는 것.
계속되고 지속되는 것들 사이에서 할머니와 나의 눈빛만이 멈춘 채였다.
할머니의 다리뼈는 앙상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할머니의 커튼을 닫아 드렸다.
할머니는 간병인이 떠나고 셋째 딸인가 넷째 딸이 와서
할머니가 그렇게 드시고 싶어 하던 사과 간 것을 드시더니 내가 퇴원하기 전에 기력을 되찾으셨다.
물론 거동을 하실 순 없었지만
다시 시간이 흘렀다.
메모장에는 그때 상황 묘사되어 있는 데 그 끝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언젠가는 글로 쓰자고.
무욕의 순간에도 기록하는 것을 욕망해버리는 나란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삶이란 정말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