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의 기록
어제부터 쓰려고 했던말.
소설을 쓰기 전에 나는 항상 분명한 사람이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메뉴를 정할때부터 뭘먹을지 정하고 했고, 오래 고르거나 뭘먹야될지 모른다는 그 말. 어떻게 모를수가 있느냐는 생각으로 속으로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거지.(드라마 미생)라는 대사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부터, 그러니까 소설을 배우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아졌다
목록화된 메뉴를 보면서도 가령 아인슈페너라는 것, 아인슈페너는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 왜 아인슈페너일까. 사람들은 왜 저런 방식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그런생각들을 하다보면 아인슈페너라는 메뉴(그러니까 이름)는 모호해져버렸다.
이런 명칭이 있는 메뉴에서부터 감정,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사실 미움이 한스푼 정도 섞여있고 신뢰는 세스푼 정도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건 나의 경우에 국한한 감정이었고 다른사람의 경우는 또 다를 수 있었으므로 세상에 이런 형태의 사랑들(단수가 아닌 복수)이 존재한다면 정말 세상은 굉장한 곳이구나. 그리고 그런 감정 비단 사랑뿐 아니라, 연민같은 더 복잡한 종류의 감정을 매일 찰나마다 생각하는 인간은 더 대단한 존재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밝혀두건데, 사실 분명하다는 내 세상에서 나는 오만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불분명한 것은 없다는 확고한 편견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간을 하찮게 생각했었다. 인간은 나약하고 비천한 인식세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소설을 배우면서부터, 그래서 소설을 쓰면서부터는 세상은 모호해지고, 존재는 위대해졌다.
8월 1일, 월요일이었다. 달의 첫날이 월요일인 달이었고, 올해는 이제 5개월 남짓 남았다. 나는 작년에 많은일들이 있었는데, 유방암진단을 받았고, 1년을 쉬며 소설을 썼다.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은 휘몰이장단처럼 대게가 한 번에 몰려오는데 작년이 나에게는 그런 시기였다. 나는 브런치 작가를 등록하고, 스무편도 안되는 글들을 올렸고 소설쓰기를 핑계로 게을렀다. 그래서 어제부터 쓰려고 했던 말들, 내가 쓰고 싶었던 말들은 결국 글로 부화하지 못했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쯤 다시 글로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