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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채 May 13. 2023

위대해졌다가 하찮아진다

계절의 변화에 대해 자각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겨울이 여름같고 여름이 겨울 같았던 그런 날들.

무뎌진걸 무던해졌다고 느끼던 날들.


한 계절이 또 바뀌어 간다.

5월인데 여름 같은 한낮 기온이 27도이던 날, 반팔티에 린넨 재킷을 꺼내 입었다.

1년 만에 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정확히는 1년 3개월만.

지난달부터 일이 늘면서 림프절 후끈거리는 열감이 생겼다.

복직을 한지 석 달째에 접어들었다.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만 글을 쓴다.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게 정말 힘든 일임을 새삼 느낀다.

꾸준함.

매일의 식습관과 운동 약속을 지켜야 하고 언제나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한다.

해롭고 편리한 무엇으로부터.


ct, 본스캔, 피검사는 각각 한쪽 팔의 다른 부위에 바늘을 찔렸다.

팔목엔 검푸른 멍이 들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어제의 나는 생각이 참 많았었는데, 오늘의 나는 또 아무 생각이 없다.


위대한 무언가가 되었다가 하찮은 무언가가 돼버린다.


어쩌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매일매일 위대해지고 위대해지는 생각으로 나를 고무시켜야 하는 행위 일까?

아니면 하찮아지고 하찮아지는 불안으로 달궈진 쇠를 두드리듯 끊임없이 나를 련시키는 걸까.


인생이 재밌다.

코미디. 블랙, 코미디.


브런치를 처음 개설 하고 작가등록을 했을 때 생각이 난다.

뭔가 대단한, 암 선고, 죽음 직전에 놓였단 생각에 위대해졌던 나 자신.

지금은 이 얼마나 하찮고, 가벼운지.

먼지 같아졌다가

깃털 같아지고.

그래서 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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