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캡틴 큐
다합에서 살 집을 구했다. 이곳애서 언제 나갈지 모르지만 룸메이트로 지낼 우리 친구들을 소개해본다. 우선 이 집에서 내가 들어오기 전 대장을 맡고 있었던 김예윤. 예윤이는 이곳에서 총무이자 반장을 맡고 있었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 싫어하고, 축구 이야기 싫어하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제일 싫어하지만 역할 분담은 마치 군대처럼 정해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예윤이의 한국에서 직업은 은행 관련 종사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총무를 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를 담당하는 원혁이는 이 집에서 다합에 가장 오래 있었던 친구다. 스쿠버 강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고, 스쿠버 샵에서 사람들을 인솔하는 일을 한다. 다음으로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는 다혜랑 예원이는 한국에서 의료 종사자로 일하면서 여행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규종이는 다혜와 예원이 보다 나이 많은 친구였는데,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기 위해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에는 볼 수 없었지만 다음만 인사를 나누게 된 나래는 동기랑 동갑내기 친구다. 어쩌다 보니 떠나는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의 인사가 이어졌고, 같은 집에서 지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제 곧 떠나는 다혜와 예원이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다합에선 먼저 들어온 사람의 계급이 더 높다. 진짜 계급은 없지만 이곳에 오래 살수록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경험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막 다합에 떨어진 병아리와 같다. 그래서 많이 배워야 했는데, 우리 집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곧 떠나는 이들에게 유용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맛집은 어디 있는지 다이빙 샵은 어디가 좋은지, 물가는 어떤지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부터 코샤리 포장마차가 얼마나 자주로 출몰하는지에 대한 보석 같은 이야기를 알아냈다.
먼저 온 이들의 고급 정보를 그냥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우리가 가지고 온 귀한 면세점 술을 꺼내 놓았다. 한잔씩 늘어가는 술 잔과 함께 이야기도 쌓여만 간다. 과하면 독이 될 수 있지만 즐거운 만남에 술이 취하는지 분위기에 취하는지 모르고 밤은 새웠다. 정말로 밤을 새워 버렸다. 집만 보고 인사만 잠시 하려고 들렀지만 너무 즐거운 나머지 날이 밝아 오는지도 모르고 놀아버렸다.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가워
혜미는 원래 아프리카에서 먼저 만나서 인연이 있는 친구였다. 아프리카의 작은 섬-잔지바르라고 하는 섬에선 같은 숙소에서 지내기까지 했었던 친구였다. 나이는 동기랑 동갑이라 나와 나이차가 있긴 하지만 쉽게 이 여길 트고 지낼 수 있었다. 잔지바르 이외에도 아프리카 곳곳에서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다시 다합에서 만나게 되니 그때만큼이나 기대가 되었다.
혜미는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별다른 스케줄 없이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나름의 여행으로 스타일이 만들어진 친구로 주로 혼자서 여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보단 어리지만 정신적으론 성숙한 부분도 있어 보인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이다.
숙소도 정했고, 그간 다른 여행으로 소원했던 혜미와 식사를 했던 역시나 우리 첫 숙소였던 치킨집에서 통닭을 먹으면서 다시 만남을 축하했다.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을 하니씩 배우고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했다. 나도 이제 들어온 다합이기에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팁들도 맛있는 집들도 대강 파악한 상태로 이곳에 녹아들어 갈 준비를 시작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여기서 만나서 더 반가워 2
대원이형네 식구는 수가 좀 많은 편이다. 진짜 가족이 여행을 하는 건 아니다. 형과 형수는 가족이 맞고, 같이 여정을 함께하며 가족과 같은 유대를 만든 식구들이 더 있었다. 지영과 승희누나는 지금 만 나이로 바뀌기 전에 외국에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태어난 로 그냥 친구가 되어버렸다, 태어난 해가 같은 건 맞지만 한국의 학년으로 나보다 한 학번이 높은 두 명의 누나는 지영애겐 지영이라고 부르고 승희누나는 승희 누나라고 부르는 족보 꼬임이 있었다. 둘은 친군데 말이다.
한국에선 그래도 자주 볼 수 없으니 다시 누나라고 부르지만 그땐 인사하면서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걸로 그냥 친구가 되어버리곤 했다. 아마 그날 술자리에서 인사를 해서 그런 건지 친구가 쉽게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날은 대원이 형의 생일이라 모인 자리였다. 역시나 아프리카에서부터 인연을 이어오던 옹형이랑 4명의 동행자, 상일이, 동기와 나까지 완전 숙소를 가득 채워버린 우리는 시원한 방에서 준비한 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고, 집에 돌아가는 차 편이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놀았던 것이다.
여행 전에 나는 '인연'이라는 것이 말로만 중요하다고 했었다. 소중한 인연이라고 말로만 했을 뿐 진짜 인연에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지금도 잘 아는 것 같지 않지만) 여행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연이라는 것이 또 다른 인생에 메커니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힘이 들 것 같은 곳에 힘이 되어 줄 사람이 늘 준비되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나 보다 먼저 와서 이곳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혜미, 아프리카에서의 인연을 이어온 대원이 형님의 가족들, 혼자 여행을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다가 만난 동기처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딱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계획적으로 연산을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다합에선 그 인연을 더욱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래서 훨씬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