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생의 여정엔 후회가 남는다.
처음 혼돈의 카이로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메케한 매연과 무질서한 사람들의 모습에 혼이 빠져나갈 정도였다. 거기에다가 골목에 들어서면 마치 시장 같이 소리를 지르며 호객 영업하는 가게들이 가득한데, 그 앞을 지날 때면 괜히 이곳에 왔나 싶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서울보다 더 한 곳이 바로 카이로였으니 말이다.
혼돈의 카오스. 아니 카이로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선 더 많은 스트레스가 생긴다. 세계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각 국의 언어들이 귀를 어지럽히고, '무질서가 곧 질서다'라는 말이 들어맞을 정도로 혼돈하고 어지러운 곳이 바로 가자지구 피라미드 앞이었다.
가자지구 피라미드 앞 매표소에는 수많은 이집트 인(이집션)이 모여 있다. 일던 처음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본인이 이집트 사람이니 자국민이 사면 표를 싸게 사는데 본인이 표를 사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그렇게 표 값을 받은 사람은 홀연히 사라진다. 물론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정신없이 만들어 버리는 건 기본이다.
이들을 물리치고 무사히 표를 사고 이집트의 상징인 대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입장을 했더라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입구를 통과하고 나면 '가이드 명찰'의 폭격이다. 그나마 가이드 명찰이라도 준비한 사람은 그나마 성의가 있는 사람이다. 명찰도 없이 어설픈 영어를 하며 달려드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성의가 없는 것인가. 아님 우릴 무시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어설프다. 심지어 뭘 알까 싶은 꼬마까지 달려든다. 주머니에 중요한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야만 한다.
2단계 관문을 모두 통과했다면 이젠 사람이 아닌 짐승을 만나게 된다. 짐승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짐승을 만나게 된다.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꿈꿔왔던 낙타들이 나타난다. 사람의 키는 훨씬 넘어가고 등에 혹이 볼록 튀어나온 짐승은 내가 흔히 짐승이라고 불었던 동물들과는 결이 달랐다. 무서운 느낌의 짐승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낙타를 타면 포도존에 데려다주겠다며 협상을 제안한다. 혼자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사진을 찍어준다는 사실에만 해도 혹 할 것 같았다.
난 동물에 등에 올라가는 일이 달갑지 않아서 거절했었다. 나같이 덩치 큰 사람이 말 못 하는 짐승 위에 올라탄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잡아서 기른 동물에게 가혹한 일을 시키는 일을 하는 것 같아 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덩치에 비해 가냘픈 다리를 가진 짐승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걸어 대 피라미드로 들어갔다.
여행자의 천국, 다합
바다가 지척에 있고 한국 사람들이 언제나 밀려 들어오며 다양한 바다 스포츠를 즐기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곳이 바로 다합이다. 일상이 마치 여행이고 여행이 마치 일상이 되어 버린 곳.
어떤 사람이라도 환영받으며 어떤 사람이라도 친해질 수 있었던 곳이 바로 다합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선 바다에 들어가고, 신나게 놀다가 나와 코샤리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곳. 멀리 나가지 않아도 바로 앞에 바다가 있고, 친구가 없어도 한국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그저 한 팀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게 아쉽다면 다합에서 출발하는 택시에 올라 돼지고기를 파는 '누 웨이바'로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상의 여행이다. 든든히 고기를 먹었다면 대형 마트가 있는 큰 도시로 나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샴엘세이크로 나가면 쇼핑을 할 수 있다. 까르푸에서 다합에선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챙겨 올 수도 있다.
쉽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탓에 만남과 이별이 늘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다합이다. 그러한 다합은 이집트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역사의 나라 이집트
수 천년을 살아온 동상이 있고, 지하철 역으로 갈 수 있는 피라미드가 있는 곳. 나일강을 따라 배를 타고 떠나며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집트는 말도 안 되는 곳이었다. 역사적 지식이 그리 많이 있지 않은 나조차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집트 왕자의 모세가 거닐었던 곳, 성경에 나오는 장소가 있는 이집트는 기독교의 성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많은 역사가 공존하고 보호되어 있는 이집트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모험가의 모험심을 불러일으킨다. 알 수 없는 묘한 호기심도 생기고, 역사를 더 배워 보고 싶은 지식에 대한 욕심도 생긴다. (그래서 요즘은 유튜브로 이집트 역사를 배우는 중이다.)
역사적 가치가 놓은 나라는 그대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혹시나 그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면 과연 발전을 막을 수 있을까? 싶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곳만 해도 개발 제한으로 묶여 있어 본인 집 담장이 무너져도 관공소에 신고를 하고 고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과연 역사를 위해서 그 사람들의 불편함을 묵인할 수 있는 것일까? 세금을 감면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를 막아서는 대가가 없는 상황에서 희생을 강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집트에 대한 존경심도 느낀다.
다시 이집트
이젠 이집트를 나설 때가 되었다. 남미여행의 대장정에 오르기 전에 한번 쉬어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머무는 동안 꽤 많은 것을 얻었다. 여행을 떠나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친우를 얻게 된 것. 일생에 한번 더 가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역사적 공간.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된 다양한 훈련들, 내 손으로 탄생시킨 체육대회까지.
돌아보면 수많은 일들이 있었던 곳이 이집트였다.
이집트라는 단어를 떠 올려보면 수 없이 많은 장면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게 수많은 장면이 나의 여행이 되었다. 수많은 장면의 이집트는 결국 나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고, 똑같은 상황이 생길 수 없겠지만 내가 만약 또 한 번 다합을 가게 된다면 또 한 번의 체육대회 준비를 해서 갈 것이다. 호기심 많은 다합 여행자들과 세계를 누비는 여행가들과 함께 다시 한번 체육대회를 열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