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슨 역사 학자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닌 그저 이공계열의 한 사람으로 느낀 룩소르는 압도적이다.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룩소르를 여행하는 동안 야외에 놓인 신전과 동상을 보면서 감탄을 안 했던 적이 없다. 그저 남아 있는 역사적 유물이지만 이걸 만들 당시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신념으로 이런 신전을 만들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영어로 적힌 안내판에 의지해 연대와 인물에 대한 역사적 기술 몇 마디가 내가 볼 수 있는 정보의 끝이다. 그저 크기와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바람에 쓸려 나가지 않은 돌에 대한 감격이다.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 신전과 동상에 대한 감상이 겨우 연대기 별로 나열된 위키 사전의 몇 마디 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손에 닿는 느낌이 그 감상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홀로 쓸쓸하게 서 있는 동상 앞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역사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부끄러웠을까? 그 답은 그날에 쓴 일기에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투어를 다녀온 오늘은 무지하게 더운 날이었다. 이집트의 바람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이 바람도 하나 불지 않는 가을 날씨이다. 들고 다니는 물이 무겁긴 해도 없어선 안될 것 같아 버릴 수 없었고, 무게라도 줄여볼 심산으로 마구 마셔대긴 했지만 무게는 줄어들지 않는 기분이다.
너무나도 말라버린 땅엔 풀 하나 없고, 모래로 만든 건지 돌을 깎아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동상이 서 있다. 지어진지 3-4천 년은 넘어 보이는 수많은 건축물 앞에 서 있으니 나의 존재가 먼지처럼 작게 보인다. 물론 크기에서 압도당했지만 말이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역사적 유물은 그 규모가 대단히 크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쉼이 없어 붐비는 곳이 되어 있었다.
눈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중에 최고의 경험이 아닐까 한다. 많은 역사적 배경 위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주 한다는 것은 어떤 여행보다 흥미로운 여행이 된다. 뭔가 더 알고 보면 좋았을 터이지만 모른다고 해서 이곳이 나쁜 건 아니다.
훼손이 심해 보이긴 하지만 그 나름의 역사를 지킨 모습이라 생각하니 이 나름의 멋이 느껴지기도 한다. 겨우 나의 한 때지만 이곳은 나 같은 이들이 몇 천년을 걸쳐 방문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몇 천년이 넘는 시간을 또 그렇게 보낼지도 모른다. 날이 밝으면 새로운 사람들의 모습으로 붐비는 이곳이 말이다.
먼지같이 미미한 발자국 하나를 남긴다는 것이 룩소르 전체의 역사에 아주 작은 흔적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를 사는 나의 인생에는 큰 획이 될 사건이다.
보이는 모든 것이 역사이고, 유적이다. 말로 다 할 수 없고, 아는 게 없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까 싶기도 하다. 뭔가를 알고 보면 의미와 사실에 대한 연결을 찾기 바빴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찾는 것은 그저 이곳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정도이다. 큰 게 아닌 것이다.
어쩌면 일기장에 적힌 내용이 이날의 느낌을 가장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역사를 모르고 이곳에 오니 머리 복잡하게 시대 순으로 연결할 필요도 없고, 그저 발길이 닿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유물이 나와 함께 현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으로 충분한 감동이었다.
우리의 여행이 이젠 점점 막바지로 다가가면서 준비하고 찾아보는 것보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역사 위를 걸으면서 여행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