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합에 있는 사람들과 꽤나 오랜 시간 함께 보내면서 가족과 같은 유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린 가족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통해 여행이 사람과 인연이 그 무엇보다 진정으로 소중하다는 사실이 여행모토가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곳을 떠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낸 모든 순간들이 이젠 사진과 기억 속 추억으로만 남아 해마신경 한 부분에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젠 정들었던 다합을 떠나 이집트 여행을 시작한다. 이집트는 모든 지역이 역사책이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로 많은 유물이 있고 심지어 야외에 아무렇게나 둔 곳도 많으니 고고학의 나라다. 이집트는 대소시든 중소도시든 그 어떤 도시,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유물과 유적이 있다. 심지어 기독교 문화의 성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의 배경이 되는 나라다. 나는 다합을 떠나 이제 역사의 이집트라는 나라를 여행한다.
사막을 달리는 기차를 타고, 나일강 위를 떠다니는 배를 타기도 하고, 무수히 많은 차를 타기도 하는 우리는 낭만 여행객이다. 이집트 낭만에서 빠질 수 없는 낙타를 타는 것을 물론이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3륜 오토바이 택시등 다양한 이동 수단으로 여행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아직은 다합의 색이 빠지지 않았다. 아직 다합을 떠나 온지 만 하루가 되지 않은 우리는 전혀 낭만여행객 답지 않지만 다합에선 볼 수 없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에 도착한 우리가 기차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플랫폼에서 낭만 여행객의 모습이 살짝씩 엿보였다. 매일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다합의 삶. 아무렇게나 가방을 놓아도 전혀 적정이 없던 한국과 비슷한 삶에서 이젠 귀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가방을 끌어안고 있어야만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경계하기도 해야 한다. 심지어 무거운 집을 들고 이동하기 힘드니 길바닥에 앉아 빵을 뜯어먹는 여행객이 된다.
처음 한국에서 외국에 나와 전혀 긴장감 없던 삶을 살아 봤다는 게 나에겐 유의미한 일이었다. 여행객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편안했다. 하지만 여행이 결코 편안하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긴장감과 경계가 오히려 여행의 텐션을 느슨하지 않게 당겨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집트 여행에선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사람을 여행의 가장 최우선으로 놓고, 편하게만 살 던 여행도 때론 긴장감 있는 여행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다양성을 가지게 했다.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여행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이 모여서 좋았다. 나이가 많아진다고 성장하는 게 아닌 거였다. 배워야 하는 거였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배우고, 어린 친구에게 배우고 외국 친구에게 배우고 한국 사람에게서 배우며 다양한 사람이 되어가는 게 좋았다. 학창 시절 겪은 마음의 상처는 다른 사람으로 치유가 되었다.
마음을 심하게 다쳐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닫아둔 마음의 문은 누군가도 들어올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렸다. 적당한 대화 몇 마디를 건네고, 일상적인 가벼운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뾰족한 마음에 찔리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벽을 낮췄고, 문을 열어 두었다.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고 나갈 수 있게 열어 두었다. 사람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나의 낭만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집트에서 처음 피라미드를 보면서 연금술사의 나오는 보물은 결국
'집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진짜 보물을 이집트에서 찾았다. 돈으로 환산해도 어마하게 큰 돈일 것이고, 시간으로 바꾼다면 수년이 걸리지도 모르는 보물이다. 인생에서 한 번 해볼까 말까 한 이집트 여행의 경험도 물론 중요했지만 이번 이집트의 여행은 나를 바꾸고 성장시킨 게 가장 큰 보물과 같은 것이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여행에서 중요한 건 너 자신을 여행하는 거야'
하는 문구가 갑자기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