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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by SseuN 쓴

내 여행은 늘 100% 만족을 채우지 못한다. 설령 내가 세운 계획이더라도 나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이번 여행도 아쉬움이 가득 남는 그런 여행이었다. 생각보다 기간이 짧은 건 아닌지, 돈을 마음껏 쓸 수 없었던 건 아닌지, 사람이 많은 이 시기에 꼭 와야만 했었는지, 내가 미처 선택하지 못한 것들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 나간다.


맑은 물에 떨어트린 잉크 한 방울처럼 검 푸르게 퍼져 나간 아쉬움들은 젓가락 하나 넣어 마구 휘 저 버렸다. 그러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그 아쉬움조차 여행에 한 부분으로 남기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여행을 추억하기도 좋았다. 여행에 아쉬움은 내가 해보지 못한. 혹은 내가 선택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 일 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체험하고 직접 눈으로 본 것들을 기록하고 남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공항에 들어오면서 창밖으로 비치는 수많은 장면들이 '0'과 '1'로 바뀌어 핸드폰 사진첩 안에 차곡차곡 쌓여 들어갔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만난 해넘이는 교토에 청수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장관이었다. 아마도 여행에 대한 미련이 강력하게 남아 마지막 불꽃을 발하는 태양과 같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우리가 출발할 비행기가 계류하고 있는 제2터미널로 자리를 옮겼다. 여행을 마치고 난 우리 손에는 기껏해야 10,000원 정도에 엔화가 들려져 있었고 이걸 가지고 그 어떠한 것도 세 명이서 누릴 수 없었다. 배가 심하게 고픈 것도 아니었고. 목이 너무나 말랐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손에 있는 동전을 털어내고 싶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발견한 게 '당고'다. 당고는 우리에게 조금 특별한 간식이다. 우리가 처음 시라카와고에서 여행을 시작했을 때 일본어를 하나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주 진한 간장 맛을 선택하면서 당고에 대한 안 좋은 추억만 남기게 되었다. 몇 번이나 당고를 먹어 본 광수는 그 당시에도 '이러한 맛이 아니라' 며 극구 이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설명하기엔 조금 어렵지만 그때 먹은 당고라는 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금 짜긴 했지만 일본간장 특유의 향도 있었고 겉면에 발려진 살짝 달콤한 맛을 내는 양념 또한 특별한 맛이었다. 그래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맛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간장 맛 당고가 존재하는지도 몰랐지만 그 당고를 먹고 나니 당고가 단맛만 있는 게 아니구나를 경험했고 또다시 실패를 할 것만 같아 도전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에 유수의 관광지를 다니면서 입이 심심해 간식을 살 때, 특히 당고는 피했다. 정 먹고 싶다면 우리가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는 평범하고 보통의 맛을 선택한 경우가 더 많았다. 굳이 잔돈을 털어 공항 편의점에서 고른 음식이 당고라니 꼭 안 먹어도 될 것 같긴 했다. 그래도 당고에 대한 경험을 한 번이라도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 있게 집어 들었다.


맛은 사실 실패가 없었다. 한 가지 맛 밖에 없었고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달달하고 쫀득한 식감을 가진 귀엽게 생긴 간식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떡 하나의 가격이 극악무도하다는 점에서 두 번 다시 사 먹지 않았겠지만 왠지 모를 일본에 특수한 상황에서 동전을 써 버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맛에 도전했고 결과는 성공적.


물론 당고만 먹은 것은 아니다. 세 명이 듣고 있던 모든 잔돈을 모두 털어 낼 만큼의 간식을 샀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올라타면 잠시 눈을 부칠 예정이기 때문에 목이 마를까 싶어 음료수 세병을 사고, 세 개 들어있는 당 고를 집었다. 빵 세 개를 사서 같이 나누어 먹고 나니 모든 잔돈은 일본에 돌려놓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터미널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모두 비행기 올랐다. 우리 중 한 명은 남은 데이터를 모두 써야 한다며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 YouTube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남은 둘은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 이후 텅 비어 버린 좌석에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눈을 감으면 지난 시간들이 사라질 것만 같은 달콤한 경험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아주 가깝고 꽤 자주 접하게 되는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세 명이서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도 잘 없기에 더욱더 소중한 여행이었던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하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시라카와고 눈밭에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 나고야 술집에서 옆 테이블에 여자들이 너무나 시끄러워 우리가 하는 이야기조차 들리지 않았던 기억, 나고야 숙소에서 아주 맛있는 커피를 먹었던 기억, 교토에서 맛있는 초밥을 먹었던 기억, 청수사에 올라 한 해를 마무리했던 기억, 오사카에 도톤보리에서 엄청난 인파를 구경했던 기억, 우체국에 들러 집으로 보낼 엽서를 붙인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셋이 함께 안전하게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던 기억.

이러한 모든 기억들이 이번 일본 여행에 잔상으로 남아 있다. 이 글은 2월에 어느 날에 쓰고 있지만 그 감정은 마치 1월에 일본에 있는 것과 같이 설레고 기분이 좋다. 아마도 이러한 기분은 내가 직접 다녀온 여행에서 생각나는 대로 옮겨 적는 이 시간이 또 한 번 여행을 하게 되는 순간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일본이라는 가까운 나라에서 보낸 휴가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물론 휴게소에서 먹은 라면 한 그릇이 내가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열쇠이자 현실에 감각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신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청도 휴게소에서 먹은 라면을 끝으로 우리의 여행은 진짜 막을 내린다.


아마도 다음 여행은 유럽에 어느 나라가 될 것 같은데 나의 세계여행에서 유럽의 경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다음에 여행기는 조금 더 생동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그날 저녁에 작성을 해 볼 생각이다. 원래 일기장에 썼던 것을 옮겨적지만 그 과정에서도 생동감이 조금 떨어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로바로 글을 써 두고 편집하서 나눌 생각이다.


일본 여행이 다시금 생각나면 열어 볼 요량으로 이 책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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