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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늦게 온 엽서

by SseuN 쓴

1. 오사카의 마지막 여행

만약 당신이 오사카를 여행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나 역시 이번 오사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대하고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이 바로 도톤보리 지역이었다. 아마 말로만 들었던 오사카의 명물로 잘 알려진 '글리코 상'을 본다던지 도시 한가운데 만들어진 '수로' 와 그 위에 떠 있는 '배'를 보고 조용한 거리를 걷고 싶어서였다.


이번 여행을 돌아보면 일본의 나고야, 교토, 오사카를 정신없이 여행을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짐을 풀고 한숨 깊게 쉬고 나니 벌써 마지막 날 아침이 되었다. 오사카에 온 지 벌써 5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4박 5일이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순식간에 그 시간은 지나가 버린 것 같다.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숙소에서만 보낼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 오사카를 조금 더 즐겨 보기로 했다. 짐은 일층 로비에 맡겨 두고 지하철을 타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혹시 사야 할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확인까지 했다. 이젠 정말 한 번 나갔다가 들어오면 바로 공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조금 큰 쇼핑몰로 들어갔다. 일본도 새해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러 나왔고 우리 역시도 그 쇼핑몰에 몰려 든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다. 한참을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고 나서야 배가 고파 점심을 먹기 위해 푸드코트로 향했다.


일본에서 먹어 봐야 할 웬만한 음식은 모두 맛보았기 때문에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은 없었다. 광수는 오사카 여행 오면 먹었던 '오므라이스' 추천했다. 배도 안고팠는데 식당을 보자마자 급격하게 배가 고파졌다. 우리가 도착한 오므라이스 가게는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직원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식당이었다. 투명하게 만들어진 주방의 창을 통해서 요리사가 직접 오므라이스와 하이라이스를 만드는 것을 보니 배가 더 고파졌다. 웨이팅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오므라이스는 생각보다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학교 앞 분식점에도 오므라이스는 쉽게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이었고 한때 유행하던 24시간 김밥집에서는 오므라이스의 계란까지 덮혀져 나와 아주 먹음직스러운 식사가 되었다. 어느 순간 인터넷에 유행하던 오므라이스 위에 올려진 계란을 칼로 자르면 화산처럼 흘러내리는 스크램블달걀이 우리나라 오므라이스 판도를 바꾸어 놓은 적도 있었다.


원래라면 간단하게 분식점에서도 먹을 수 있었던 오므라이스는 이제 유명한 식당에서만 주력으로 판매하는 상품이 되었고 쉽게 접할 수 없는 만큼 가격도 꽤나 높이 올라간 상태이다. 오므라이스를 만드는 것이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고 할 수 있지만 터무니없이 올라 버린 가격에 한국에서는 쉽게 오므라이스를 접할 수 없는 메뉴가 되어 버렸다. 나도 근래 몇 년 동안은 오므라이스를 먹질 못했다.


막상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추억에 잠겨 들었다. 어쨌든 나의 추억 속 음식이 일본 여행 마지막 음식으로 선택되었다. 골고루 음식을 먹고 싶어서 나는 하이라이스를 주문하고 친구들은 오므라이스와 카레라이스를 주문했다.


2. 나보다 늦게 온 엽서

내 여행 중에 낭만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바로 우표와 엽서를 사는 것이다. 내가 세계 여행을 하면서 가장 설레고 즐거웠던 시간은 집으로 엽서를 보내는 시간이었다. 허름해서 아무것도 팔지 않을 것 같은 기념품 가게 들어가 빛바랜 사진의 엽서를 골라 집으면 벌써부터 집에 도착해서 만나게 될 엽서에 흥분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엽서로 마무리한다.


조금 느린 세상일 때는 엽서가 가장 빠른 소식이었다. 내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집으로 보낸 대여섯 장의 엽서는 내가 도착하기 훨씬 전에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 이후에 보낸 수많은 편지들도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도착해 있었고 내 방 책상 위에 놓인 엽서를 보며 또 한 번 여행에 설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이 있었다.


물론 일본이라는 아주 가까운 나라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엽서가 도착했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도착하고 받은 엽서다 보니 기분이 묘했다


손에 들어 보면 아주 가볍고 얇은 종이지만 그 속에 적어둔 찰나의 기억들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우리와 여행을 하지 않은 친구에게 쓰는 엽서, 그리고 나보다 늦게 도착할 엽서에도 엄지손가락 한마디만큼 크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우표를 붙인다.


3. 글리코 상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어서였을까 1월 둘째 날에 걷는 오사카에 가장 번화한 도톤보리는 이색적인 장면이었다. 고즈넉한 도시에 일본을 경험하며 그 며칠간에 조용한 일본을 여행했다면 마치 오늘은 그간 보지 못했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오사카 중심부에 내가 서 있었다.


도톤보리라는 지역은 오사카에서도 사람이 가장 많다고 소문난 곳인데 이 날 따라 관광객까지 몰려 드니 엄청난 인파였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그러한 환경에서 오직 '글리코 상'을 만나겠다는 집념 하나만 가지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어쩌면 반발력 있을지도 모르는 언행일지만 '글리코 상'에 대한 감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오직 전광판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 더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도 물론 비슷한 포즈를 하며 사진도 찍고 친구들과 함께 셀카도 찍었지만. 그저 내가 서 있는 곳이 오사카에 도톤보리라는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긴 사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은 무사히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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