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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수술, 입원 가방 싸기-크리스마스기분 추가요!

3. 유방암 수술 후 기록

by Psyber Koo

유방암 CP1(유방보존 유방절제술+감시림프절 생검술).


유방암 수술은 계획했던 대로 성탄절을 기점으로 치러졌고, 산타가 내게 보낸 선물은 ‘수술부위 출혈 없음. 전이 없음.’이었다.

수술 전날까지 일한 나는 퇴근길 운전대를 잡으면 내문제로 마음은 어김없이 복작복작해졌고, 차 안 라디오에서는 이런 내 마음을 비웃 기라도 하는 듯 연신 캐럴송이 들려와 더욱 쓸쓸하고 비참하기까지 했는데 이런 결과를 주시다니!

오~ 산타오빠 땡큐!


수술 후 림프생검술로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누워있어도 팔에는 쿠션이 필요한 상황이라 성가시고 불편한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배액량이 많아 퇴원은 계획보다 1일 미루어져 월요일 수술, 배액관 제거 후 금요일 퇴원했으니 총 6일간 입원하였다. 입원기간에 수술부위 확인 및 배액량 체크뿐만 아니라 수술 후유증으로 가장 우려되는 림프부종예방을 위한 운동교육을 위해 재활의학과 협진이 있었고, 영양 및 식이 컨설팅이 1:1로 이루어졌다.


퇴원 후 상처관리는 당연히 상처부위에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2, 3일에 한번 소독하는 것으로 퇴원 후 1주 차가 되면 외래진료에서 최종 진단 및 치료계획 설명이 있을 예정이라 했다.

직접 소독이 불편하면 집 근처 외과를 이용해도 되니 이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처음 암을 찾아 주신 따뜻한 외과선생님이 계신 유방외과에서 소독했다. 나 혼자 거울을 보며 할 수도 있겠지만 두 군데(가슴, 겨드랑이) 모두 테이프 제거 시 너무 아프기도 했고, 암을 찾아주신 선생님께 수술 경과를 재차 확인받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수술부위 깨끗하네요. 아주 좋아요.”

감사한 선생님의 짧은 이 한마디에 딱딱한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빚어 나와 날아갈 듯하다.




2024년의 12월은 기괴함으로 시작해 춥고 아팠고 괴로웠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퇴원 후 연말을 조용히 보내고 새해맞이를 하자 했으나,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허망한 무안여객기사고로 인해 온 나라는 비통함에 젖어 새해맞이는 무음이었고 검은 날이 이어졌다.


일 년을 정리하는 연말에 암을 알게 되어 한 해가 평가절하되었다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여름보다는 나았다 싶다. 가슴통을 꼭 조여 소화마저 힘들게 하는 써지브라에 팔 사용이 불편해 입원 내내 제대로 씻지 못해 물티슈로 가볍게 닦는 수준이어 머리위생은 엉망이었다. 헐렁한 옷을 마구 껴입고 모자를 쓰면 되니 조금이나마 수월하다 싶었다.


입원을 위한 가방정리는 단출했지만, 곧 크리스마스이니 여행스럽게 기분을 내봤다. 모두 잘 사용했기에 기록해 본다.


1. 큰 면티와 겨드랑이가 넉넉한 카디건

퇴원 시 암 제거한 쪽 팔 사용이 어려우니 옷을 입고 벗기가 힘들다. 수술 후 피부는 민감해져 있을 터이니 면소재를 선택하고 앞 단추 디자인이 좋겠다. 난 큰 면티에 겨드랑이 부분이 넉넉한 카디건과 품이 큰 외투를 챙겼다. 카디건은 입원 중 면회 시 혹은 산책 시에도 유용했다.


2. 속옷, 양말

따뜻한 느낌의 면소재 팬티와 수술 후 보온을 위한 두꺼운 양말이 필요하다. 슬리퍼를 신고 병동뿐만 아니라 협진된 외래 여기저기를 다녀야 하므로 양말은 꼭 필요하다. 수술 후 한 손으로 양말 신기가 매우 불편하니 보드랍고 잘 늘어나는 수면양말을 선택하면 조금 수월하다.


3. 슬리퍼, 욕실용 슬리퍼

난 수술 후 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미끄럽지 않은 욕실용 슬리퍼를 따로 챙겼는데 이건 쓰지 못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배액관을 달고 있던 난 한 팔로는 도저히 씻을 수가 없었다. 대신 슬리퍼는 수술장 가는 길을 제외하고 내내 함께였고 두툼한 양말을 신을 것이기에 볼 조절이 가능한 슬리퍼로 챙겼다.


4. 일반 물티슈, 얼굴용 물티슈

침대테이블등을 닦기 위해 일반 물티슈를 챙겼고, 얼굴 등 몸에 사용할 물티슈를 따로 구매했다. 몸 닦기 용도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구하지 못해 아쉬운 대로 얼굴사용이 가능한 물티슈 2개를 샀는데 아주 유용했다. 입원기간 내내 가족이 당번으로 와 주었지만 분주한 병원의 밤을 함께 보내는 건 무리 같아 밤 10시가 되면 집으로 돌려보냈다. 참 신기하게도 가족이 가고 혼자 남으면 어김없이 얼굴이 가렵다. 분명 그의 도움으로 세수를 했음에도 말이다. 서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때 얼굴용 물티슈 두장이면 외로움 대신 개운함을 쟁취할 수 있다.


5. 얼굴용 미스트, 립밤

겨울 병실은 극건조 상태다. 가습기를 따로 챙기면 좋겠지만 물갈고 필터청소하고 어쩌고는 번거롭고 혼자서는 이런 일련의 행동을 못한다. 절대. 한 밤 중 외로움의 옷을 입은 가려움이 찾아오면 개운하게 물티슈로 닦아내고 웃으며 그냥 자면 말짱 도루묵! 피부는 끝장이다. 개운함은 일시적 마음일 뿐 현실은 쩍쩍 갈라지는 건기의 메마른 땅이 된다. 잊지 말고 뿌려주고 립밤도 꼭 챙겨서 발라줘야 한다.


6. 고보습로션, 오일

건조를 달고 사는 나에겐 보습이 언제나 큰 과제이기 때문에 추가로 오일과 고보습로션을 챙겼다. 낮동안 양말을 신었으니 발을 닦은 뒤 로션을 척척 발라줘야 뱀껍질 같은 갈라짐을 면할 수 있다. 오일은 선물 받은 도테라 코바이바오일을 애용하던 중이라 함께 챙겼고 스트레스가 최강이었던 수술당일날 밤엔 로션에 오일을 추가해서 발랐다.


7. 책

입원으로 시간부자가 되었지만 잘 쓸 줄도 모르고 제대로 쓸 여력도 없다. 시간을 보내기에 영상매체가 손쉽기는 하지만 과각성되는 경향이 있어 회복이 필요한 시기이니 책을 좀 더 추천한다. 적당히 자극될 만한 내용이어야 통증이 아닌 내용에 집중할 수 있을 거 같아 소설류를 조금 더 넣었다.

- 변신, 시골의사 / 프란츠 카프카

- 어느 존속살해범의 편지 / 마르셀 프루스트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 류시화

- 희랍어 시간 / 한강

- 동물농장 / 조지 오웰


선택한 책 모두 많은 이들에게 검증이 된 책들이기에 실패는 없었다. 단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현시국과 오버랩되어 이성을 잃을 것 같아 병실에서는 펼치지 않았다. 병원 내 도서관을 서성이다 혼불(최명희작가)을 만났고 단숨에 1권을 마셨다. 병동에서의 호출이 아니었다면 계속 읽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마터면 대여신청을 할 뻔했다. 다음날이 퇴원예정인데 말이다. 정신줄 잡고 고이 꽂아두고 나왔다. 다음에 꼭 내돈내산 해야지!


8. 유, 무선이어폰, 충전기

모두가 암환자인 암병원의 병실은 기본적으로 조용했기에 초반에는 이어폰이 필요치 않았으나, 복병이 나타난 뒤 멘털 관리를 위해 이어폰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라디오 클래식 FM 프로그램은 책을 읽는 동안에도 자는 동안에도 내내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포노사피엔스에게 충전기가 없으면 안 되지 암!


9. 안대, 구부러지는 빨대

팔 사용이 어려우니 뚜껑 따기도 불편하고 물병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고 싶지만 힘이 안 난다. 어떤 자세에서도 맞출 수 있는 구부러지는 빨대가 유용하다. 병실에 밤은 없다. 수시로 바이탈을 체크하러 오는 간호사,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환우님이 있으니 옆으로 잘 수 없는 유방암 수술환자는 급작스런 불빛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안대도 추천한다.


10. 종이컵, 종이티슈

종이컵으로 무언갈 따라 마시지는 않지만 양치할 때 가벼워 사용하기 좋았고, 물티슈를 더 많이 쓰긴 했지만 콧물제거 같이 소소하게 마른 종이티슈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11. 마스크

코로나19 이후 호흡기관련해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라 혹시 몰라 두둑하게 챙겨 왔다. 독감이 유행하기 전이어서 그랬는지 제대로 꺼내지 않았지만 사람이 많은 로비나 도서관 이용 시에는 어김없이 사용했다.


12. 못 가져가서 아쉬운 존재, 고양이

가방을 싸자 자동으로 자리 잡은 냐옹이. 저도 데려가라는 듯이 척하고 들어갔는데 규정상 어쩔 수 없으니 내려오렴. 그나저나 꽉 차네. 언제 이렇게 컸냐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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