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방암 수술 후 어떻게 일상으로 복귀했나요?

3. 유방암 수술 후 기록

by Psyber Koo

우리의 뇌는 기존의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이번처럼 경험치가 없는 데이터 앞에서는 우왕좌왕하다 불안감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불안감을 잠재우고자 부족한 경험을 간접경험으로라도 채워보려 하지만 허사였다.


유방암 수술 후 일상으로의 적응을 먼저 경험한 그들은 과연 어떻게 해냈을까?


외과 수술에 대한 직접 경험은 제로요 간접경험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라 수술 이후 일상으로의 적응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직장인에게 휴가신청은 예견한 뒤 선행해야 하는지라 만족스러운 근거 없이 어림잡아 일주일이면 되겠거니 했다.

수술주간 그 다음 주에는 출근이 가능할 줄 알았으나 말 그대로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유방암 환자는 암재발 및 전이방지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었다. 림프부종. 수술 시 림프절 생검 혹은 제거를 하기에 수술 상처는 겨드랑이에도 생긴다. 이는 재활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팔이 머리 위로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씻는 것도 힘들고 옷도 갈아입기 어렵다. 그렇게 앉은자리에서 3일의 휴가를 추가로 썼다.



유방암 수술을 시행한 쪽의 팔은 림프부종방지를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다.

기한 없이 살아있는 동안 관리해야 할 팔. 예상치 못한 복병이다.

유방암은 5년 추적관찰을 하는데 함께 시행한 림프절을 품은 팔은 평생이라니.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랄까?


유방외과에서도 협진 한 재활의학과에서도 가는 곳곳마다 일러주는 유의사항은 상처가 생기는 것을 막고 봉와직염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 주사, 혈압측정 금지

- 침, 뜸, 채혈, 사우나 금지

- 날 면도기 사용 금지

- 손톱 짧게 깍지 않기

- 집안일 할 때는 장갑을 껴서 보호하기

- 자외선 차단제 바르기 및 화상주의

- 과로하지 않기

- 한랭, 고온 노출 금지

- 매일 팔을 깨끗이 씻고 보습제 바르기

- 꽉 끼는 장신구 금지

- 과도한 집안일 피하고 일은 조금씩 나누어 수시로 하기

-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매일 운동하기


이쯤 되니 유방암 수술을 한 건지 팔 수술을 한 건지 혼동이 온다.

손톱은 키보드 사용에 불편감 없게 손끝에 맞춰 깎기를 좋아하고 왼손에 시계를 착용하며, 보습제는 거의 안 바르고 비타민 디 공급이라며 여름 내내 자외선에 노출하며 산책하는 것을 즐기는 내가, 혼자 남은 휴일이면 가족 아무도 모르게 거실이며 방 가구를 옮기며 구조 바꾸기가 취미인 내게 저 리스트는 좀 비현실적인 거 아닌가?




퇴원 안내사항에는 퇴원 후 1-2주 후 직장복귀를 권고했다. 1주가 채 못되어 시도해 보았으나 내 직업은 일반적인 범주에 들어갔는지 권고의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퇴원 후 1주 차가 되는 외래진료일엔 최종 결과와 치료계획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침윤성 유방암 2기, 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사람 표피성장인자 수용체) 음성.


교수님께서는 가장 흔한 타입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기에 사례도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평범함이 주는 위안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이제 샤워해도 된다는 말에 너무 기뻤지만, 힘도 없거니와 팔의 가용범위가 예전만 못하여 혼자 샤워는 어려웠다. 내내 옆에서 도움 준 가족이 없었다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출근을 위한 준비시간은 몇 배로 늘어났다. 관리를 위해 짧게 다듬은 머리는 미리 전날 정리해두어야 해 납작 헤어스타일로 출근했고, 옷은 팔을 쓰기 어려우니 넓은 셔츠를 골랐고 앞 단추가 있는 카디건을 덧입어서 보온을 유지했다. 서지브라는 딱딱한 부분이 많아 약해지고 민감해진 살에 직접 닿는 것이 부담스러워 맨살에 얇은 면 런닝을 먼저 입고 그 위에 서지브라를 했더니 조금 덜 까슬거렸다.


하루 종일 앉아 말을 하는 일인데 몸을 이렇게 썼던가? 마주 앉은 상대에게 질문하는 내 소리의 톤이 예전만 하지 못하고 쉬엄쉬엄하라는 과장님의 만류에도 막상 하다 보면 예전 버릇 나오게 마련이었고 체력은 바닥이니 금세 피로가 밀려왔다.

20여분 후 내 방에 들어왔던 환자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으면 방을 둘러싼 시야는 어찔거렸고 등뒤에서 식은땀이 쭈륵 흘러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과 함께 몸을 의자에 널듯 던져버렸다.

눕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졌다.


일을 쉬지 않고 항암치료를 받았다는 몇몇의 사례들을 보았는데 진심으로 그들이 경이롭고 위대하다는 생각만 가득 찼다.


나는 도대체 나는 어떻게 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걸까?

일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나 존재감을 나는 과연 유지할 수 있을까?


눈 흠뻑 맞은 날 외투를 털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와 무심히 의자에 걸쳐둔 외투 같은 모습으로 울음 같은 물음만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수술 후 복귀, 가슴에 패용하는 직원명찰도 무겁다.
keyword
이전 10화유방암 수술, 입원 가방 싸기-크리스마스기분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