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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수술 후, 첫 질문은!

3. 유방암 수술 후 기록

by Psyber Koo Feb 08. 2025

“아 너무 아파요.”


끝났다고 눈 뜨라는 외침이 어렴풋 들렸고 전기를 꽂은 듯 파직하고 정신은 돌아왔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수술이 끝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묵직한 통증과 한기였다.


‘현실적인 생생한 꿈을 종종 꾸니까 이건 어쩌면 꿈일 수도 있잖아?’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고 많은 치료진이 강조하고 강조했던 깊은 숨쉬기를 하며, 되물었다.


“지금, 몇 시예요?”


바쁜 소음에 묻혀 대답해 주는 이는 없고 분주하게 침대 옮기는 바퀴소리 환자 깨우는 소리가 공간을 흩어 다녔고, 제대로 된 확인이 어려운 고도근시자는 눈에 힘을 주어 주변을 살핀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 보니 이건 꿈일 수도 있어!


힘을 써야 하는 곳의 핵심을 잃어서인가 극도의 추위가 몰려왔다.

어디선가 환자가 실린 침대를 여러 명이 끌고 와 내 옆 먼 언저리에 두었고, 침상의 그를 깨우는 치료진들의 외침에 가까운 소리에 나는 더욱 현실감을 느끼고 숨쉬기에 몰입해 보았지만  실패다.

팔, 배, 다리 등 온몸에 자잘한 고드름이 떨어지는 듯한 떨림과 추위가 찾아왔고 온몸은 정말 덜덜덜 떨렸다. 무릎은 또 왜 그리 시린 건지.

덜덜 떨며 추위를 호소하는 내게 치료진은 온풍기 자바라와 담요를 덮어주며 연신 “폐를 움직이셔야 추위도 사라져요. 깊게 숨 쉬세요.”를 외쳤다. 그들의 보살핌과 응원으로 숨쉬기 패턴을 찾았고 오늘이 며칠인지, 여기는 어디인지 혼자 지남력을 체크하다 보니 회복실을 나올 수 있었다.


온풍기 자바라.

코로나시국에 보건소에서 일하며 비상근무로 코로나대응근무를 했을 때 썼던 개인용 크기의 온풍기는 겨울 동장군을 거의 보내고서야 지급이 되었었고 그나마도 돌아가면서 사용이 가능해 내 차례가 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해 겨울은 너무 추웠고 바이러스 특징상 근무장소는 문이 열려있어 방호복 아래에 핫팩을 덕지덕지 붙이고 온열기를 둔 것도 모자라 결국 온풍기 자바라의 도움을 돌아가면서 받았는데, 4시간의 근무가 끝나면 온몸이 추위에 꽁꽁 절고 소리를 질러 목소리는 변했고, 손발은 너무 시렸던 내 평생 그토록 묵직한 추위는 잊을 수 없던 그해 겨울에 만났던 그 친구를, 다시는 볼일 없을 줄 알았는데 너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수술받을 사람은 나 혼자인데 반해 수술실 인원은 제법 많았다. 초록색 수술복은 ‘새’라고 여기기로 했다. 고도근시인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뒤돌아 무언가를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 초록새는 여섯이었던 것 같다. 서늘한 수술실 온도에 비해 손길은 깃털처럼 부드럽고 빨랐으며 온기가 있었다. 도구를 향하거나 나를 향한 초록새들.


몇 번의 이름확인이 이어진 뒤, 수술침대로 옮겨 앉는 것이 허락되었고 수술부위 확인을 위해 상의는 탈의되었고 등에 무언가 부착하고 드디어 진짜 수술방 침대에 뉘어졌다. 초록새의 움직임은 빠르고 가벼웠다.


나를 내려보며 자신을 마취과 교수라 소개하는 이는 자세하게 전신마취과정을 설명했고, 큰 눈을 휘둥그리며 공포에 절어 보였을 내게 마취가 깨면 느낄 수 있는 사항들을 설명하며 구조물을 눈앞에 보여준다.

자기도 모르게 깨물 수 있는데 그러면 이도 아프고 입술이 찢어질 수 있으니 전신마취라 모르시겠지만 깨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임해보라는 말에 턱을 까딱이며 연신 힘을 풀어본다.

코 가까이로 들이대며 산소를 마시게 하고 수면마취 주사제를 넣었다 설명했고 다시 산소이니 편하게 숨 쉬라는 선생님의 말과 동시에, 생경한 낯선 장소에서 얻은 긴장감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어? 졸려요…”


그 많은 사람들은 깨어있었고, 나는 살아 있지만 죽어있었지. 나를 향한 초록새들에게 인사도 못했는데.

아. 그나저나 지금은 몇 시일까?




내가 시간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뻔했다.

부분절제 수술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마취하고 깨고까지 합치면 4시간 정도인데 수술장에서 열어보고 전이가 확인되면 시간은 더 길어진다했던 수술 전 설명 때문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면 내가 죽어있던 그때 어떤 상태로 진행되었음을 역추적하며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유방암은 수술 후 확진이다. 수술장에서 떼어낸 종양에 의해 확진 및 서브타입이 판가름 난다 한다. 그러니 내가 더 시간에 집착했지.


온풍기 자바라는 준비 없이 안녕을 고했고, 그 덕에 따뜻해진 담요를 두른 채 회복실에서 이동되어 옮겨지자 가족이 곁으로 왔고, 그제야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지금, 몇 시야?”




마취가 깨면 2시간 동안은 잠들지 않고 깊은 숨쉬기를 해야 한다. 전신마취로 인한 여러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라 했다.

잠이 올래야 올 수가 없다.

몸통은 두툼하게 꽉 조여있고 어깨가 굳는 통증이 느껴지니까.

회복실에서 통증억제 주사를 맞았는지 모르겠는데(비몽사몽이라 기억이 가물) 병실로 오자마자 통증억제 주사를 넣는다 하였고, 무통주사는 달려 있지 않았다. 병실침대로 옮기며 알았다. 덜렁거리는 배액관을 달고 나온 사실을.


병실침상으로 옮겨진 내가 할 일은,

1. +2시간은 깊은숨 쉬며 잠들지 않기.

2. 1의 +2시간 동안 소변보았는지 확인하기. 물먹기 가능.

3. 2의 +4시간 이후 미음 가능.

4. 배액관(피주머니)은 임의로 비우지 말 것.


나는 오후 4시가 좀 안되어서 가족과 상봉했기에 안내받은 수술 후 사항을 적용하면 밤 11시가 넘어야 매직이 풀리는 거였다. 아침에 죽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30시간 넘는 공복유지라니. 허허.

난 공복 취약재질 이라고요.


병실의 밤은 길고 분주하다. 4인실이지만 2명으로 채워진 병실에 새로 들어온 환자는 자신의 실패한 암치료의 상황을 울면서 여러 명에게 같은 내용으로 반복해서 큰 소리로 통화했고 통화가 끝나자 트로트 음악을 틀어두는 무례함까지 보였다. 내 앞 침상의 보호자가 음악 들으시는 거면 이어폰을 꽂으시라는 우회적인 항의를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보다 못한 나는 간호사실에 컴플레인을 넣었다.

마취가 깨고 통증에 집중이 옮겨지자 외부자극에 민감해져 버렸고, 큰 수술을 마친 당일이어서 쉬어야 함을 알지만 각성된 채 병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간호사는 나를 찾아 몸은 휴식이 필요하다며 살살 달랜 뒤 침대에 뉘었고, 지금 생각하면 참… 나…. 살아있았네! 배고팠네!


암병동 이용자의 기본 나이는 60대 이상인 것 같다.  아직 40대인 내가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인간사 기본 예의가 있지… 하아…

혹시나 하고 챙겨 온 이어폰으로 클래식 FM을 들으며 다시금 깊은 숨쉬기를 청했다.


오른쪽 입술 안쪽이 부르터 혓바닥이 자꾸 그쪽에 머물러 시큰거리게 했다. 마취과 선생님이 깨물지 않겠다 생각해 보라 했는데… 실패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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