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방암 수술 당일 기록
수술은 전신마취로 이루어진다. 전신마취는 내 의지대로 장기들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말인데, 그래서 기억도 없다. 그냥 무 자르듯이 숭덩하고 잘려나가 버린 시간. 해석을 제대로 못할지언정, 내 무의식이 반영되었을 ‘꿈’을 품고 있는 수면과는 또 다른 상태다.
핸드폰이 생기면서 그때마다 사진으로 저장하고 메모하고 쉽게 서치기능을 쓰느라 뇌의 저장기능을 소홀히 하고 있어 기억력은 자꾸 퇴화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뭐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수술날을 기점으로 전후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진다. 아니 선명해진다는 말이 좀 더 맞겠다.
어느덧 2주가 지났는데도 말이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고 입원했지만, 수술실로 실려가기 전에는 수술복 외엔 모든 것을 놓아야 하기에 자연인의 모습으로 이동식 침대에 누웠다.
고도근시는 모든 사물을 둥그렇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마음이 저절로 푸근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수술실로 향하는 동안의 내 시력은 불안감인지 호기심 때문인지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최대기능을 발휘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천장을 향해 누웠지만 옆을 보며 내가 이 병원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궁금했고, 따라오는 내 가족의 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은 여기까지입니다”
저지된 내 가족의 당황스러움이 공기로 전해졌고, 수술실로 향하는 나를 마중하는 가족의 얼굴이 어쩐지 또렷하게 보였다. 멀어지는 순간임에도.
“잘하고 올게! 이따 봐! “
내가 뭘 하는 게 없는 시간인데 이 말이 불쑥 나왔다.
웃기네 나.
“Lt arm save.”
입원하면서 내 오른팔에 걸린 표식이다.
이제 나는 수술을 하게 될 왼쪽 팔에 혈압을 재도 안되고, 주사를 맞아도 안 된다고 한다. 심지어 무거운 것도 들면 안 된다고 한다.
“가슴수술인데 팔을???”
뭐 얼핏 듣긴 했지만, 이런 류의 보호라고 생각을 못했고, 내게는 지금까지도 꾀나 충격이다. 수술한 가슴부위보다 팔이 너무 아프다.
수술을 위한 금식과 만일을 위해 잡아둔 대바늘을 손목에 꽂아 불편하기 그지없는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분주해졌다. 난 4번째 순서의 수술이라 했기에 오후에나 들어가겠구나 예상했고 금식이 길어지는 것에 한탄하며 있었는데, 교수님은 아침 회진을 돌며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다 하셨다.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만류했건만 부모님은 빨갛게 짓눌린 눈으로 딸을 보러 오시고야 말았고, 멀다는 핑계로 1년에 고작 서너 번 찾아뵙는 무심한 딸을 직접 봐야지만 안심이 되었을 팔십이 된 노부부의 마음을 생각하니 애잔함이 밀려와 노부부와 마주 앉은 난 더 씩씩해졌다.
아침 9시 핵의학과에서 수술에 필요한 주사와 촬영을 마친 후, 로비에서 4시간 걸려 이동하신 부모님을 뵙고 있자니 병실에서 전화가 왔다.
오전 11시 24분.
노부부의 애잔함을 먹이로 씩씩함을 장착한 나는 덤덤한 듯 용감하게 다음 행선지가 정해진 이동식 침대 위에 올랐다. 처음이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