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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암환자는 웁니다.

1. 유방암 수술 전 기록

by Psyber Koo Feb 07. 2025

약 열흘에 걸쳐 그간 아껴둔 연차를 활용하여 수술 전 확인을 위해 치른 검사를 토대로 주치의 교수님을 뵙는 날이 코 앞이다. ‘전이’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고, 잠도 살짝 설쳤다.

오후 반차만 쓴 상태라 뿌슝한 얼굴로 출근해서 오전 업무를 준비하는데, 암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외래간호사님이 빠르게 내용을 전달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교수님께서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며 오늘 외래는 의미가 없어 취소되고 추가로 검사만 하면 된단다. 그리고 수술 전 보기로 했던 유방초음파 일정을 좀 당겨서 보겠단다.


저기요 선생님, 저도 예약된 환자가 있다고요!

이 말이 목구멍에 고롱고롱 매달려있다.


내 사정은 역시 아웃오브안중.

이번 주 휴가서류도 다 올렸다고요! 후.

아! 직장인 암환자는 웁니다.


어쩔 수 없이 과장님께 사정얘기하니 걱정 말라며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아직 명확하게 결과가 나온 거라곤 ‘유방암 2기‘라는 것 밖에 없고, 암환자가 되기 이전에는 몰랐던 것인데 유방암은 서브타입이 워낙 많고 그에 따른 치료방법도 달라진단다. 아직은 모호한 상태로 지내려니 계속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되도록이면 잘 짜여지고 흐트러짐이 적은 일상을 추구하는 나에게 열린 가능성이 파다한 이런 일상은 좀 버겁다.


지금 상태로는 교수님을 뵙는 게 의미 없고 추가검사를 해야 한다는 거 보니, 뭔가 아사모사한 건가? 내 상태가 경계선에 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또 스멀스멀 올라오려 한다.

STOP!


내일까지 제출할 심리평가보고서는 잠시 넣어둬야겠다. 이렇게 뒤숭숭한 마음가짐으로는 쓸 수가 없다!


오늘 추가검사받고 책 사러 가야지!

수술 후 읽을 책 몇 권 안고 집으로 가야지!

완전 재미있는 소설로 고를 거야! 고전 중에 골라볼까?

반영구시술로 짱구눈썹이 되어있지만 표시 안 나게 앞머리로 덮었으니 됐어! 가자!




수술을 아는 몇몇 내 사람들의 응원은 취향저격제대로여서 놀랍다. 부쩍 사랑받는 요즘이다.

칭찬을 처음 받는 아이마냥 아직 어색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푹 고아 진국이 된 한우갈비탕을 한 솥 끓여 준 선물에 이어 꽃이 담긴 한우케이크까지! 이렇게 응원이 한우한우하니 암 따위는 진짜 한방에 낫겠다!

이 글을 못 보겠지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정중모드).


드디어 내일은 유방외과교수님을 뵙고 며칠에 걸쳤던 검사결과와(제발 전이가 없기를) 수술 전 확인차 초음파 검사가 있을 예정이다.

지우다 쓰다를 반복한 메모장에 적어둔 교수님을 향한, 유방암을 향한 나의 질문들은 과연 유효할까?


멀리 계신 엄마아빠에게 ‘교수님 뵙고 수술일정 가닥이 잡히면 말해야지’하고 미뤄두었던 숙제 같은 소식을 알릴 때가 다가온다. 독립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아이’로만 보는 부모님. 하긴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러하기에 할 말은 없다. 얼마나 울며 마음 아파하실지가 선하다.


언제나 내뱉기 어려운 말 ‘나 암이야’.


부모님께는 최대한 가볍게 넘어가듯 알리자 다짐하는데 아직도 내 입은 꿀 먹은 푸처럼 무겁기만 하다.


한방에 나을 것만 같은 영롱한 한우케이크! 고마워요! 애정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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