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방암 수술 전 기록
“어? 최근에 크게 앓았거나 폐렴 같은 거에 걸린 적 있어요?”
수술 전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초음파검사에서 암이 있는 쪽 겨드랑이를 보시다가 분주해진 교수님.
외래에서는 검사자료들을 보며 전이가 없어 부분절제술로 진행하고 이후 치료계획을 세우자고, 예정대로 입원하면 되겠다 했는데…
암이 있는 쪽 겨드랑이에 초음파를 확인하다 ‘어?!’하는 외마디 낮은 비명과 쏟아지는 낯선 질문에 난 어리둥절해진다. 상의를 탈의한 채 팔을 머리까지 올려 어정쩡하게 누워있는 나를 두고 교수님은 급한 발걸음으로 방에 다시 들어가서 (아마도 검사 자료들을) 확인하고 다시 내게 돌아와 양쪽 가슴 구석구석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초음파검사를 하며 몇 가지 설명을 하다 후다닥 나가 외래 간호사에게 오더를 하니 간호사가 뭔가를 들고 분주하게 초음파실로 들어왔다.
“여기 이렇게 사이즈 큰 게 2개가 보이는데 이건 검사를 해야 해요. 병리과에 지급으로 확인해 달라고 할게요.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일요일 입원이시니까… 혹 월요일 오전에 못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돌아가셔야 할 수도 있어요. 나와도 걱정 안 나와도 걱정이네요. 조금 아픕니다. “
나와도 걱정 안 나와도 걱정이라니 왜죠?
옵세시브하게 말꼬리를 무는 내게 말을 아끼는 교수님은 익숙하고 숙련된 솜씨의 조직검사를 시행하였고,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 와중에 조직검사를 시행하는 일련의 모습을 통해 내 가슴 집도를 맡겨도 되겠다는 신뢰감을 얻었다.
불안정감이 느껴지는 멘트와는 달리 옷을 추슬러 입은 내게 얹은 교수님의 토닥임에는 따스한 힘이 담겨있었다.
하아. 이런… 또 다른 문이 있었다니…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하고 되뇌어본다.
그렇게 수술 전 외래 초음파에서 임파선 조직검사를 두 개나 시행했고, 마음은 몇 배로 심란해졌다. 설명간호사실에 들러 입원 관련 사항을 들어야 하는지 물었더니 외래 간호사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별거 아닌 이 말에도 민감해진다.
치료진의 입장에서는 입원, 즉 수술이 지금은 어려울 수 있다는 51%의 확신인가?
환자들로 가득 찼던 암병원 외래 대기실은 점심시간으로 한산해졌는데, 내 짜증은 이곳을 가득 채울 기세로 치밀어 오른다.
잠깐 멈춰 생각해 보니 지금 내 감정의 핵심은 계획한 대로 시행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거 같았다.
1. 수술-(건너뛰고 픈)항암치료- 방사선치료-호르몬치료
2. 항암치료-수술-항암치료-방사선치료-호르몬치료
이 두 가지의 기로인 것인가?
내일모레가 입원인 이 시점에!!!
기로에 서 있다니??!
하아.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먹자!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연결될 거야!
지금은 그다지 소용없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로 하고 미리 찾아둔 근처 맛집으로 향한다.
점심을 먹고 집에 오니 힐링치트키가 위로해 준다.
생각지 못한 조직검사를 해서 그런지 피로감이 쏟아졌고, 전날의 수면 부족까지 더해져 비몽사몽해지며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악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때 마침 오후 햇살은 빛났고 손끝에는 보드라운 털을 지닌 고양이가 있어 불편했던 마음들이 조금 더 가라앉는 것 같았다.
늦은 오후 외래 간호사에게 결과와 수술가능 전화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엄마에게 암밍아웃을 했다. 전화기 너머의 엄마는 눈물바다였지만 나는 수술할 수 있다는, 아니 내 계획대로 일정을 맞출 수 있다는 안정감에 기쁘기만 했다.
그리하여 너무도 황당하고 어이없던 ‘암 수술’이, 감사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렇게나 난 참 간사한 인간이다.
그간 그리도 무거웠던 ‘수술가능’이 이렇게 기쁠 일인가!
당연히 이 글을 못 보시겠지만, 빠르게 검사 진행해 준 병원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자, 이제 예매해 둔 송년음악회 보러 가자!
한 달 전, 1년간 고생한 나를 위해 예매해 둔 공연으로 힐링해야지!
이 공연을 예매할 때의 나는 이런 상황이 올지 전혀 몰랐다. 정말 한 치 앞도 몰랐지만, 잘했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