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방암 수술 후 항암화학요법 치료기
언제나 내 생각은 짧다.
멀리 계셔 더욱 마음 쓰던 엄마가 항암치료 중에는 요양병원에 가 있어 보라며 수없이 다독였을 때 내가 무슨 요양이냐며 손사래를 떨쳤다. 걱정 말라고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조그맣게 버럭 했다.
항암화학요법치료 중 부작용은 사람들마다 다르니 나는 일을 지속해 보겠다 다짐했을 때도 틀렸다. 수술 후 이틀 근무하고 내 방에서 링거투혼을 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암면역재활요양원에 예약하면서 일주일을 권고하는 주변의 조언을 만류하며 3일이면 퇴원할 수 있지 않겠냐는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매사 이렇게 나는 틀렸고 모자랐다.
수술 후 내 체력은 급격하게 저하되었고, 항암화학요법치료가 결정된 이상 결단이 필요했다. 수술 후 방사선치료만 하게 될 줄 알았던 상황에서 이렇게 바뀌었으니 ‘포기’가 필요한 시점임을 알았다. 치료자로서의 자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 과장님과 상의 후 항암시작 주엔 컨디션 조절을 위해 병가를 쓰기로 했다. 인수인계서만 덜렁 남겨놓는 게 너무 미안하고 나 같지 않은 처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치료가 길어질 것을 대비해 ‘질병퇴사’도 언지해 두었다. 부원장님, 원장님, 과장님 모두 잘 치료하고 오라고 기다린다 하셨는데 늘 인력이 모자란 작은 지역의 중급 병원의 일이 어디 그런가, 실제 그렇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이름대로 욕이 나온다는 ac치료를 받은 나는 호기롭게 3일이면 되겠거니 했지만, 예외 없이 익히 알려진 대로 1주일은 꼬박 죽고 살고를 반복했다.
사고과정을 거칠 겨를 없이 밀려오는 고통들. 나는 덜 사회화된 아이의 모습으로 이 무수한 고통에 던져지는 것이 가장 싫었다. 까무러치듯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정신만 들면 과민하게 내 증상과 상태를 관찰하는 나를 보며, 무엇하러 이렇게 또 피곤하게 구나 싶기도 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을 몸소 부딪히는 나를 나로 바로 볼 용기가 필요했고,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음을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하며 이 무력감을 이길 수 있도록 다독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지러움증에 땅속으로 쑥 하고 빠져드는 피로감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 눈을 번쩍 뜨며, 더는 이 어지러움이 멈추기를 기원하던 어느 날. 이 모든 내 관찰 행위가 나를 사랑하기로 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자 부끄럽게 느껴졌던 과민함은 세심함으로 이해되었으며 비록 평소에 비해 판단력이 흐린 상태에서 써내려 갈 이 모든 것들 또한 ‘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처럼 치료 중 부작용 수렁 속에 빠져있을 누군가에게 당신의 평소와 다른 이 과민함은 실은 ‘자신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공포의 빨간약이 들어감과 동시에 코와 목에서 약냄새로 어지러움이 시작되었는데 이 어지러움은 나에겐 너무나 취약한 포인트였다. 2020년 2월 갑자기 찾아와 놀랐던 메니에르와 유사한 어지러움으로 시작하여 울렁거림이 추가되었다. 또한 20년도 지나 이제는 잊었을 법한 9달 내내 입덧했던 구역감이 불쑥 서랍을 열고 튀어나왔고, 까무룩 해지는 피로감에 숨 가쁨에 안구건조로 잠이 깨고 다음날은 흉통이 목조임이 홍조가…그러나 걱정 마시라! 이 모든 것은 6일을 기점으로 서서히 회복되었다. 물론 2,30분 활동하면(밥 먹기 포함) 2시간은 끙끙 소리 내며 누워있어야 하지만 증상들의 수치는 시간에 착실하게 훈련된 것 마냥 한결 낮아졌다. 첫날부터 주증상에 따른 정도와 식이등 치료노트를 꼬박꼬박 기록해 두어 치료진과의 소통도 원활했고 나를 살펴보며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했다.
주변에 항암치료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있는 엄마말대로 암면역재활병원에 바로 입원하지 않았다면 어찌 보낼 수 있었을까? 주변 내 사람들의 관심 어린 응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올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고통 후 다시 살아난 나는 ‘감사함’을 덧입은 게 아닌가 한다.
항암화학요법의 주기는 3주다. 이유가 명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1주일은 내 안에 퍼져 떠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죽이며 건강한 세포도 죽는다. 남은 건강한 세포는 2주 동안 회복 후 다시 싸움을 반복하는 거다.
이 모진 길, 의료진의 도움을 방패 삼아 감사한 내 사람들의 염원과 응원을 이불 삼아 덮고 가는 거다.
그저 앞으로.
내 주어진 길 대로.
유독 따뜻한 이불이 내게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어 더욱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