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책을 만나다
속초로 향할 준비를 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밥을 먹고 학회 행정 그리고 학교 논문 업무를 진행했다. 오전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났고 바로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할 준비를 했다. 오전 10시 40분쯤 부랴부랴 집을 나서서 오후 12시 고속버스터미널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터미널에 붐볐다. 신기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일 날 일을 하지 않고 먼 곳으로 이동을 하다니. 여름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 휴가 복귀 앞둔 듯한 군인. 고향을 찾아가는 어르신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터미널로 찾았다.
버스터미널과 추억의 과자
버스에 타기 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우도 땅콩'과 '호두과자'.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휴게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다. 1 봉지 10개 6,000원. 고민 없이 바로 선택했다.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원도 속초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2시간 30분 동안 버스 안에서 넷플릭스를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는 역시 '잠'을 자는 것이 제일 효율적인 일이었다.
‘ㅅㅊ’에 도착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속초해수욕장'. 그곳에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부산 바다와 비슷한 파도 냄새와 눈부시게 빛나는 노란 모래사장을. 마치 고향에라도 찾아온 듯 낯설지 않았다. 근처 카페에 들러 감성에 젖어 있는 동안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향할까?' 생각했다.
*속초에는 참고로 버스터미널이 2군데 있다. 속초해수욕장에서 가까운 '속초 고속버스터미널' 그리고 차량으로 2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으니, 버스표 예매를 할 때 꼼꼼히 확인하도록 하자.
속초중앙시장으로 향하다
9-1번 마을버스를 타고 오늘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지나 속초중앙시장, 속초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가 냄새가 풍겨지는 거리. 곧장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혼자서 '아바이 + 오징어순대' 세트를 시키고 시원한 사이다는 덤으로 마셨다. 꾸덕꾸덕하지만 담백하기도 한 순대의 맛은 현장에서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속초중앙시장에서도 순대를 종류별로 냉동으로도 포장으로도 판매하고 있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생각났다. 후식으로 시장 근처에 있던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고 속초 백년가게 '문우당 서점'으로 향했다.
백년가게 ‘ㅁㅇㄷ’
'문우당'은 무슨 뜻일까? 가게 입구에 간판에는 초성 글자만 따서 'ㅁㅇㄷ'이라고 되어있었다. '백년가게'라는 간판도 화려하게 빛났다. 들어가자마자 무언가 도서관 특유의 조용함과 책 냄새가 풍겨졌다. 일반적으로 대형서점에는 감성적인 음악과 노란 조명의 불빛 그리고 다양한 굿즈와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은 무언가 또 다른 특유의 느낌이 있었다. 책 진열이 마치 어떤 누군가가 섬세하게 정리를 한 듯. 책 배열, 위치, 생각의 흐름... 책들이 정말 다양하게 *큐레이션(curation)*이 되어있었다. 모든 책들이 하나하나 섬세하게 느껴졌다. 한 모퉁이에서는 서점 직원들이 일일이 고객들을 맞춤형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2층 중고등학교 교재, 참고서 코너에서는 한 학생이 서점 직원에게 어떤 교재를 찾기 위해 문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우당에서 서점 직원은 '서림인'이라 불렀다. 그 직원은 자신이 알고 있는 교재의 종류와 최근 잘 나가는 것들, 자신의 중고등학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 및 추천을 곁들여 그 학생이 교재를 고를 수 있도록 섬세하게 '큐레이션' 해주었다. 일반 책들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여기도 저기도 '큐레이션'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었다. 문우당 서점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보면 누군가에게 '큐레이션'을 당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1984년부터 '문우당'에서 이어온 '백년가게'의 '정신'이자 '비법'이었다.
*큐레이션(curation):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쉼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포트락 파티
오후 7시가 되어서야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30분에 뒤, *포트락 모임*에 참가하여 처음 보는 여러 사람들과 술과 음료 그리고 음식을 나눠먹었다. 내가 준비한 음식은 떡볶이, 과자, 음료(17,000원 정도)였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니 그 이상의 것들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포트락(potluck party): 참석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요리나 와인 등을 가지고 오는 미국·캐나다식 파티 문화.
사람 같은 책을 읽다
책 같은 사람을 만나다
2시간 동안 정말 재미있었다. 대학생들의 이야기, MT 이야기, 술 문화, 패션 이야기, 아르바이트했던 경험담, 광고업, 패션업의 이야기.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생활권에서는 듣기 힘든 이야기들. 식품영양학과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21살 대학생 1명과 동갑내기 직장인 1명. 그들은 파티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남달랐다. 높은 텐션과 남다른 분위기를 풍겼던 그들은 직장인 친구의 생일을 맞아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스타벅스에서 사 온 '슈크림이 잔뜩 들라면 쿠움바헨 케이크'와 꼬갈 모자를 준비했다. 누가 봐도 생일 축하를 받고 싶어 하는 상황이 적극적으로 연출되었다. 사회 초년생인 그들은 모임에서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고 자신을 열심히 표현했다. 덕분에 유쾌하고 재밌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성적인 매력을 보이는 한 남자는 자신을 MBTI 성격유형의 'I(내향적인 면)'를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2시간가량 얘기를 들어본 결과 선택적 'I'임이 밝혀졌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남다른 옷에 대한 식견과 철학이 있는 듯했다. 더불어 졸업작품을 만들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디자인 작품 문제가 아닌 자신의 옷을 착용하는 모델에게 분풀이를 하며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롯데월드, 옷 가게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와 일을 해본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그 남성이 모임에서 밤이 새도록 끝까지 낭만을 즐겼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내 맞은편의 25살 젊은 여성은 자신이 작업치료사라고 얘기하며,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현재는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 상황이라 얘기했는데 모임에서 풍겨져 나오는 텐션과 센스가 20대 초반의 직장인과 대학생에 뒤지지 않았다. 29살 수원에서 왔다는 한 남성은 과거 자신이 경영학, 산업공학을 전공했으며 패션은 자신의 최애 취미 중 하나라고 얘기했다. 모임이 끝난 다음 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데이터 정보를 처리하는 업종 즉, 빅데이터 전문가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는. 어제 모임에서도 느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 정보를 듣고 재밌게 가공하고 분석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상당히 논리적이고 침착해 보이는 그는 다음날 아침, 게스트하우스 당직실에 휴대폰 충전선을 분실 신고를 하기 위해 로비로 내려왔다. 마침 그 장소에서 조식을 먹고 있던 나와 마주쳐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은 사람이고 사람은 책이다.'라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양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 행동, 일, 자기표현 등을 직접 만나 느낄 수 있어서 재밌는 시간이었다.
기록하는 삶
글을 쓰는 삶
저녁 10시가 넘어서 지금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부엌에서 혼자 우두커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있었던 일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내 인생도 내 글도 계속 쓰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