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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Dec 02. 2023

'프랑스 한달살기'의 기쁨과 슬픔

천국과 지옥이 나란히 담겨있는 도시

 

파리를 향한 찬가는 차고 넘친다. 특히 '낭만과 사랑의 도시'라는 별칭은 이제는 고유명사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석양이 지는 센강변을 나란히 걷고 있으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그렇게 달콤한 로맨스 소설 같은 이야기가 파리에서는 끊임없이 탄생한다. 나 역시 앞서 파리를 '청춘을 간직하는 도시'라고 명명하며 그 반열에 슬쩍 발을 얹은 바 있다.


그러나 언제나 기쁨만 누릴 수는 없는 법. 파리는 방문객들의 호불호가 가장 극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거리에서는 찌린내가 나고, 소매치기가 차고 넘치며, 지하철역에는 쥐가 기어 다니기 때문에. 나 역시 파리에 한 달간 머물며, 프랑스 살이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차고 넘치게!




맥도날드를 찾아 떠나는 여정


파리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말이 있다. 파리에서는 화장실이 정말 귀하다. 길을 걷다 갑자기 요의라도 온다면 아주 곤란해질 수 있다. 지하철역에도 공중화장실이 없고, 애플스토어처럼 큰 매장에서도 손님에게 화장실을 내어주지 않는 경우가 꽤 흔하다. 심지어는 물건을 구매했는데도 상점 화장실에 돈을 내고 입장해야 한다거나, 카페에 손님용 화장실을 마련해두지 않는 경우도 있다.


5년 전, 태어나 처음으로 파리에 갔을 때는 이 사실에 엄청나게 당황했었다. 지하철역이나 공원, 관공서 등 화장실 들를 곳이 넘치는 한국에서만 지냈던 탓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생리 현상에 이렇게 박할 일인가! 그렇게 불평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러한 곤란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룰, '맥도날드를 찾아라!'를 따르면 된다. 어느 나라에 가든 맥도날드 화장실은 오픈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파리의 맥도날드 화장실에는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죄다 맥도날드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찌린내와 향수의 도시


파리 출신 방송인으로 유명한 파비앙이 남긴 명언이 있다. "파리에는 화장실이 부족한 게 아니다. 파리 전체가 거대한 화장실이다!" 공중화장실이 심각하게 부족한 탓인지 몰래 노상방뇨를 하는 남성이 차고 넘친다. 물론 모든 곳에서 찌린내가 진동하는 것은 아니고, 다리 밑이나 인적 드문 담벼락 아래 등 몇몇 은밀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지하철역 내부 통로 같은 상상치 못한 곳에서도 종종 마주하게 되지만.


냄새가 오죽 심했으면, 친구와 나란히 거리를 걸을 때마다 "자, 저기 굴다리 보인다. 지금부터 숨 참아!"라고 서로에게 경고를 해주곤 했다. 프랑스가 향수로 유명해진 건 다 이런 극악의 환경을 감추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시 차원에서 파리 전체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길 곳곳에 물을 뿌리며 청소하는 모습이 흔하게 보였다. 나의 파리지앵 친구는 이 현상을 두고, "평소에는 진짜 도시 청소 안 하는데 갑자기 깨끗한 척하는 거야."라고 평가했다.






우리 집에서 낯선 이의 소리가 들려


하루는 욕실에서 혼자 씻고 있는데, 나의 여행메이트 M이 문밖에서 노크를 하며 말했다. "잠깐 나오지 말아 봐." 잔뜩 긴장한 듯한 목소리에 괜히 주눅이 들어 이유를 묻자, 끔찍한 답이 돌아왔다. "내가 방금 쥐를 봤어." 아파트 4층에서, 우리의 아늑한 집안에서, 소파에 앉아있다가 쥐를 발견했다고?


M은 내 담력이 얼마나 처참한 수준인지 잘 알고 있었고, 과거 런던에 살면서 쥐를 여러 번 본 적 있었다. 그래서 태어나 한 번도 쥐를 본 적 없는 나 대신 용감하게 현실을 마주하기로 한 거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어딘가로 숨어버린 쥐를 찾아내 무사히 현관문 밖으로 유인하는 거였다.


아무리 M이 나보다 용감하다고 해도, 혼자서 비겁하게 욕실에 숨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욕실 한편에 놓여있던 기다란 대걸레를 쥐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그걸 M에게 건네주었다. 최대치의 용기였다. 하얗게 질린 내 표정을 본 M은 쥐가 방문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걸 봤으니 이 틈을 타서 방에 들어가 밀린 글을 쓰고 있으라며 날 안심시켰다.


나는 M의 배려를 사양하지 않고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마감해야 할 글이 있었으니까. 거기에 쥐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이불을 한번 뒤적거려 본 다음, 침대 위에 숨어 애써 글쓰기에 집중했다. 그러던 차에,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


부스럭? 이 방 안에는 나 혼자뿐인데. 나는 불길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거실에 있는 M에게 물었다. "혹시 쥐 찾았어?" 소파 밑, TV 뒤, 냉장고 아래의 틈까지 찾아봤는데도 보이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어떤... 소리를 들은 것 같아." 그리고 그건 환청이 아니었다. 나는 쥐를 피해 들어온 방 안에서 쥐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거였다. 그 순간, 쥐가 우리의 다리 사이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는 나란히 비명을 질렀다.




깜찍이와 이쁜이


1시간이 넘는 혈투 끝에 어떠한 유혈사태도 없이 쥐를 무사히 문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지만, 갑자기 우리 집의 모든 게 낯설고 싸늘하게만 느껴졌다. M과 손을 나란히 맞잡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한국에 가고 싶은 건 처음이야."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아파트에 쥐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글에 대고 열심히 검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글이 쥐가 들어오는 족족 잡는 걸 추천하고 있었지만, 정말이지 쥐덫 같은 건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작성한 글을 발견했다. 파리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집안에서 쥐를 발견하고 패닉이 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쥐를 완전히 내쫓을 수 있냐는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드디어 해답을 찾을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서둘러 댓글창을 눌렀다. 그러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내용이 나를 반겼다. "저희 집에도 쥐 살아요. 저는 이제 반려쥐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이름은 '깜찍이'랑 '이쁜이'예요." 파리의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이상, 가끔씩 쥐를 마주치는 건 체념하라는 이야기였다.


며칠 뒤, 파리의 한 카페에서 프랑스인 친구를 만나 집에서 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친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Rat이랑 Mouse 중에 뭐였는데?"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집안에서 쥐를 마주쳤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둘 사이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집에서 마주친 건 문틈으로 도망 다닐 정도로 작은 생쥐였다.


"Mouse는 주택가에도 흔하지. 나도 며칠 전에 우리 집에서 봤어. 너 Rat 본 적 있어?" 고개를 젓는 나에게, 친구는 뤽상부르 공원에 가면 언제든지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팔뚝만 한 쥐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피크닉 하는 건 피해야겠군. 그렇게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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