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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Nov 18. 2023

프랑스 파리에서 집밥을 차려 먹습니다

바게트, 에스까르고, 그리고 김치찜!


미식의 도시, 파리. 맛집이 넘치는 이곳에 오랜만에 다시 오니 들뜬 마음을 숨기기 힘들었다. 신난 발걸음으로 여행메이트인 M과 함께 집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을 주문했다. 에스까르고, 얼마나 그리웠는지!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어니언 스프라고? 그렇다면 시켜야지! 오리 콩피와 스테이크도!


그렇게 에피타이저 두 개, 메인 메뉴 두 개를 고른 뒤 레드와인을 한 잔씩 시켰다. 음식 맛은 훌륭했다! 파리를 향해 쌓였던 그리움을 싹 워줄 정도로. 입안을 가득 채우던 즐거움도 잠시, 현실적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한 끼에 얼마를 쓴 거지? 머릿속으로 식사값을 가늠해 봤다. 저렴하기로 소문난 레스토랑이었는데도 어느새 11만 원 가까운 금액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애써 배부른 척을 하며 디저트를 정중히 거절했다. 크림브륄레까지 시킬 돈은 없었기 때문에!





미식의 나라에서 집밥을


파리의 외식 물가는  비싸다. 저렴한 음식을 사 먹고 싶다면, 선택할 수 있는 메뉴의 폭이 현저히 좁아진다. 나의 경우 한 끼에 사용할 예산을 대략 10유로(대략 14,000원 정도)로 정해두었기 때문에, 주로 아시아 음식이나 가벼운 샌드위치 정도만 먹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한국의 1.5배가 넘으니 인건비가 반영되기도 했겠지만, 치솟은 유로 환율 탓도 컸다.


우리가 생각하는 '프랑스 식당'을 즐기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필요했다. 에피타이저-메인-디저트 풀 코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에피타이저 하나를 나눠먹고 그럭저럭 괜찮은 디쉬 하나씩, 와인을 딱 한 잔씩 곁들이는 사치를 누리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이렇게 식사를 하려면 두 명이서 최소 6만 원은 들었다. 파리에 한 달 동안 머물러야 하는데, 매 끼니를 이렇게 해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었으니, 그건 바로 파리의 마트 물가가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다는 점이었다!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간단하게 언급한 바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1유로, 그러니까 1400원 정도로 과일이나 샐러드를 배불리 사 먹을 수 있다. 외식을 하는 대신 집밥을 차려먹으면 한국에서보다 훨씬 풍족한 식사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파리의 마트는 언제나 천국


두 명이서 나눠먹고도 남을 길쭉한 바게트는 단돈 1유로. 먹기 좋게 손질된 샐러드용 채소(한 끼에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았다!)도 마찬가지로 1유로. 베이컨도, 복숭아 한 봉지도 1유로였다. 단돈 10유로를 들고 가서 샐러드와 신선한 착즙오렌지 주스와 과일을 잔뜩 사 올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베이컨 같은 가공육도 저렴하고, 치즈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채소나 육류, 해산물도 한국의 마트에 비하면 눈에 띄게 저렴했다. "프랑스에 살면 굶을 일은 없겠는걸..." 중얼거리며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프랑스 마트는 요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한 마디로 천국 같은 곳이었다. 요리에 필요한 신선한 식재료가 모두 이렇게나 저렴하다니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건 와인 코너였다. 소주도, 맥주도, 양주도 선호하지 않는 '오직 와인파'인 나로서는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와인이 생필품으로 꼽히는 나라답게, 아무리 작은 마트에 들어가도 늘 거대한 와인 코너가 나를 반겨주었다. 5유로 정도의 저렴한 와인을 집어와도 늘 맛있었다. 한국에 가면 주류세가 붙어 가격이 두 배가 될 텐데... 하는 마음으로 매일 한 병씩 와인을 해치워버렸다.




마트 대신 시장에 가면


시내 곳곳에서 특색 있는 시장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게 파리의 큰 장점 중 하나다. 특히 우리 집  바스티유 광장에서는 파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 매주 두 번씩 열렸다.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정도로 넓어서, 온갖 식재료를 구매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시장에 가면 마트보다 더 싱싱하고 저렴한 과일이 가득하다. 사실은 굳이 무언가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활기가 가득한 시장을 그냥 거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있다. 허브를 잔뜩 넣어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오븐구이 통닭집이라든지, 갓 구운 빵을 잔뜩 올려놓고 파는 가게들. 자연스레 점심 식사거리를 사들고 돌아오게 된다.


비록 인파를 뚫고 프랑스어로 주문해야 한다는 점이 늘 난관이긴 했지만, 몇 번의 도전 끝에 간단한 먹거리는 시장에서 수 있게 되었다. 종류가 100개는 되어 보이는 고수의 치즈 가게나, 생선 이름을 알 수 없어 접근조차 어려운 해산물 가게는 끝내 들르지 못했지만.




참을 수 없는 김치의 맛


프랑스에 한 달 머물며 가장 많이 먹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는 와인이요 둘째는 바게트와 치즈, 셋째는 김치찌개라 하겠다. 갓 구운 바게트에 잠봉을 얹고, 샐러드와 치즈를 잔뜩 얹은 샌드위치나 냉동 에스까르고를 곁들인 치아바타도 훌륭했지만, 역시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맛있긴 한데, 매콤한 김치가 먹고 싶어." 평소 한식을 그렇게까지 사랑하는 편이 아닌데도 지구 반대편에 오면 항상 김치가 그리웠다. 결국 우리는 주기적으로 한인마트에 들러 냉장고에 항상 김치를 채워두기로 했다.



멀디 먼 타국에서 김치를 구하려니 너무 비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한국 마트의 높은 물가에 적응했던 덕인지 그리 손 떨리는 가격은 아니었다. 게다가 채소와 육류가 저렴하니 총액의 부담도 덜했다. 우리는 이점을 활용해 김치찌개와 김치찜, 달걀말이, 불고기, 육전 등 갖가지 한식을 마음껏 차려먹었다.


돼지고기 김치찜과 쌉싸름한 레드 와인이 이렇게 찰떡궁합일 줄이야! 비록 젓가락도 없이 포크로 푹푹 찍어먹어야 했지만, 파리에서의 집밥은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요리하는 즐거움이 넘치는 도시, 파리에서의 생활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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