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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Nov 11. 2023

프랑스인들은 불친절하다고?

10배 즐거운 여행을 위한 마법의 주문

 

파리를 향한 외국인의 환상을 담은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면 프랑스인, 특히 파리 사람에 관한 고정관념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파티장에 도착한 주인공 에밀리가 배가 고프다며 핑거푸드를 집어먹자, 프랑스인 상사인 실비가 배가 고플 땐 담배를 피우라고 충고한다. '왜 먹는 거냐'는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인은 에밀리는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이런 까칠하고 차가운 모습이 프랑스인 하면 떠오르는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인들은 정말 차갑기만 한 걸까?





까칠하고 콧대 높은 프랑스 사람들


파리에서 한 달 동안 머물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인들은 까칠하고 콧대 높다는 편견에 일부 동의하고 있었다. 지난 두 번의 여행에서 마주쳤던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제법 냉담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인종 차별을 당한다거나 엄청나게 불친절한 사람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정 많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먼저 말을 걸거나 적극적으로 반겨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그런 사람들을. 뜻밖의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상점 주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도시를 구경하는 걸 넘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분명 똑같은 파리인데, 왜 이렇게나 다른 경험을 하게 된 걸까?




프랑스 여행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들


사실 이전에 파리에 갔을 때는 프랑스어를 일절 하지 못해서, 모든 소통을 영어로만 했었다. 첫인사부터 끝인사까지. 유명한 관광 도시인만큼 웬만한 상점 직원들은 다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평범한 관광객이라면 영어만 쓰더라도 전혀 불편한 점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어를 조금 공부한 상태이니, 인사라도 프랑스어로 건네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인을 친절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들이 있다는 걸!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단하다.


Bonjour 안녕하세요 | 봉쥬흐
-아파트에서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도, 상점에서도, 어디에서나 습관처럼 뱉는 인사! 저녁이 되면 Bonsoir로 바뀐다.

Excusez-moi 저기요, 실례합니다 | 익스큐제-모아
-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때 자주 쓰게 된다. 마트에서 물건이 어디 있는지 물을 때 애용했다.

Merci 감사합니다 | 메흐씨
- 프랑스인들은 이 말을 정말 달고 산다! 상점이나 레스토랑, 마트 그 어느 곳에서나!

s'il vous plaît 부탁합니다 | 씰부쁠레
- 무언가를 주문할 때, 문장 끝에 붙인다. 영어의 Please와 비슷한 개념.

Pardon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 빠흐동
죄송하다는 뜻을 가진 다른 말도 있지만, 일상적으로는 이 표현이 훨씬 자주 들린다. 길에서 누군가와 부딪혔을 때마다 습관처럼 뱉는 말!


프랑스어는 발음이 정말 어렵기 때문에, 그들이 듣기에는 내 발음이 다소 우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더라도, "thank you"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서툴더라도 "캄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외국인을 더 챙겨주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bonjour, Merci, Pardon은 정말 마법의 주문에 가깝다. 웃으며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네기만 해도 사람들이 놀랍도록 친절해진다! 독자 여러분도 프랑스에 갈 일이 있다면 꼭 활용해 보시길.




프랑스어를 조금 썼을 뿐인데


한 와인 가게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앞선 고객이 직원과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차례가 다가왔을 때 여행메이트인 M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사를 건넸다. 관광지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동네 작은 상점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카운터에는 사장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와인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와인가게 사장이라니, 내가 꿈꾸는 삶이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Bonjour!" 그러자 사장님이 냉큼 새 와인잔을 꺼내, 와인을 한 잔씩 따라주었다! 나보다 와인을 잘 아는 M은 맛을 보더니 이걸 사야겠다며 냉큼 직원에게 달려갔다. 졸지에 사장님과 단둘이 남게 된 나는, 잔을 돌려주며 용기를 쥐어짜 프랑스어로 감사인사를 했다.


"Merci beaucoup, monsieur. C'est très bon!(정말 감사합니다, 이거 엄청 맛있네요!)"


그러자 사장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가 직원과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본 데다, 동양인이니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비록 아주 짧고 쉬운 말에 불과했지만, 사장님을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갑자기 함박웃음을 지으며 카운터 아래에서 새로운 와인 한 을 꺼내 따라주었다. 이번에는 아까 전보다도 더 넉넉한 양이었다.


아무래도 판매용이 아닌 사장님의 즐거움을 위한 컬렉션이 따로 있는 듯했다. 내가 프랑스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신 건지, 신난 목소리로 와인 설명을 이어갔다. 비록 보르도 산 와인이며, 훌륭하다는 내용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열심히 "Oui, oui, oui!" 하며 들었다. 프랑스어를 조금 썼을 뿐인데, 졸지에 사장님 pick 와인을 무료로 두 잔이나 맛보게 됐다.




관광객을 위한 가격표


나는 빈티지 제품들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파리에 가기 전부터 빈티지 마켓에 갈 생각에 들떠있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방브시장이었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이곳에는 프랑스인만큼이나 한국인이 많다. 많은 블로그에서 파리 여행 필수 코스로 방브시장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길게 늘어선 상점에는 아기자기한 물품이 가득했지만, 그 명성과는 다르게 장바구니에 담을만제품은 없었다. 마음에 드는 걸 집어드는 족족 5만 원, 6만 원을 호가했기 때문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문진이나 트링킷에 불과했는데도 그랬다.


결국 "에이, 파리 빈티지 마켓도 별 거 없네!"라는 투덜거림과 함께 별 수확도 없이 돌아와야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방브시장은 이미 관광지가 되어버린 지 오래라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라고 했다. 오직 관광객이나 나이대 높은 현지인을 대상으로 비싸게 판매하는 시장이 된 셈이다.

 



'진짜' 현지 시장에 가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좋게 파리 시내 중심부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발견하게 됐다. 방브시장과는 다르게 매번 다른 장소에서 열리기 때문에 파리 시민이 아니고서야 찾아내기 힘들 듯했다. 주요 관광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탓일까? 규모가 꽤 컸는데도 불구하고 관광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파리의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현지 시장의 물가는 방브시장의 3분의 1 수준으로 엄청나게 저렴했지만, 단점이 있다면 오직 프랑스어로만 소통할 수 있다는 거였다. 덕분에 그동안 공부했던 몇 가지 표현과 숫자를 총동원해야 했다. 그래도 영어가 일절 통하지 않는 현지 시장에서도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덕분에 이 아름다운 화병들을 무려 한국 빈티지샵의 10분의 1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그날, 두 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프랑스어 공부하길 정말 잘했어." 프랑스인들은 왜 90을 '20 곱하기 4에 10을 더한 것'이라고 부르는지, 숫자와 유로를 연결해서 발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투덜거리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 고통의 시간 뒤에 이렇게나 즐거운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을 텐데! 언어가 여행의 폭을 획기적으로 넓혀준다는 것을 한번 더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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