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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Dec 23. 2023

오픈카를 타고, 파리를 떠났습니다

파리 말고 프랑스 여행을 하기 위해서!


파리 한  살기 중 처음으로 다른 도시에 가게 된 날. 떨리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 일어나 짐가방을 챙겼다. 무려 20만 원을 더 얹어주고 예약한, 우리의 은색 컨버터블을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에 올랐다. 파리에 처음 도착한 날을 제외하고선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게 처음이었다. 혹시나 나를 노리는 소매치기가 있는 건 아니겠지? 미어캣 같은 태세로 주위를 둘러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인지, 무사히 멋진 차와 상봉할 수 있었다.






파리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고맙게도 운전은 여행메이트인 M이 맡아주었다. 스무 살이 되지 마자 면허를 딴 M과는 다르게, 나는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면허를 딴 탓에 아직 잉크도 안 마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핸들을 맡기기보다는 본인이 혼자 운전하는 편이 마음 편할 거라고 했다.


여느 대도시처럼, 파리의 도로에는 차들이 빼곡했다. 서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골목이 훨씬 좁고, 차선도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다는 거랄까. 몇 번이나 2차선과 3차선을 오가는 자유분방한 교통체계 덕분에 파리를 빠져나오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운전대를 잡았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파리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지 알겠네..." 혼잡한 도로를 보며 괜스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쨌거나 부족한 운전실력과 M의 배려가 어우러진 덕분에, 소도시로 향하는 내내 조수석에 앉아 평화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출국 바로 직전에 차기작을 계약하고 온 탓에 여행 내내 노트북에서 해방될 수 없는 신세였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사이로


30분 만에 정신없이 붐비는 파리를 벗어나 고속도로 위를 달리게 됐다. "고속도로는 어느 나라나 똑같은가 봐. 서울 가는 길 같네."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마감에 쫓기는 내 처지를 깨닫고는 다시 정신없이 노트북 속 글자들에 빠져들었다. 한참 동안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무렵.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핸들을 잡은 M이 이렇게 말했다. "혜교, 밖을 봐!"



영화에서나 보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쪽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포도밭이, 다른 한쪽에는 초원이. 태양이 내리쬐는 푸르른 잔디 위에 말들이 풀을 뜯고, 양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때 M이 차의 천장을 열었다.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이 쏟아질 듯 펼쳐졌다.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노트북을 덮고 선글라스를 썼다. 써야 할 글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해도, 이런 순간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20만 원, 그리고 버킷리스트


분에 넘치는 차를 빌릴 때만 해도, 아니, 렌터카 회사에서 차키를 건네받고 차에 탔을 때까지도 내심 너무 사치를 부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만 원이 뉘 집 애 이름도 아니고, 계란 한 알과 지하철 티켓 한 장도 아끼던 가난한 여행자인 우리에게는 천금 같은 돈이었다. 그러나 머리 위로 따뜻한 햇살과 바람이 스치던 그 순간, 모든 고민과 걱정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M의 경우, 멋진 차를 타고 유럽의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달려보는 게 로망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와 달리 시속 130km 제한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 다다르자 M의 눈이 반짝였다. 국토가 넓어서인지, 평일이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주위에 차도 별로 없었다. 우리는 고속도로 위를 빠르게 질주했다. 돈을 아껴 낡은 수동 차량을 빌렸더라면, 도시까지 이동하는 길이 이렇게 신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데 둘 다 동의했다.


20만 원을 더 내고 은색 컨버터블을 빌림으로써 우리는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기자기한 유럽의 소도시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예쁜 자동차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사이를 달리고 싶다는 꿈을 키워왔다. 정말 막연하고 비현실적이지만, 원래 로망이라는 건 다 그런 거니까. 머리카락 사이를 간질이는 바람을 느끼며, 창틀에 팔을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샴페인과 왕의 도시에서


우리의 첫 목적지는 바로 랭스였다. 영어로는 레임스, 프랑스인 친구의 발음으로는 헹스. 랭스는 샴페인의 고장이라는 샹파뉴 지방에 위치해 있다. 많고 많은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도, 이곳에서 만들어진 와인만이 공식적으로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


우리는 랭스 구석에 있는 유명한 와이너리에 들러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하고, 서둘러 시내로 달려갔다. 꼭 보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쪽인가 봐." 숙소에 차를 주차하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 저 멀리 거대한 성당의 형체가 보였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나긴 성당의 측면을 따라가다가, 드디어 성당의 정문을 바라보게 된 순간.



말문이 막히며 턱이 툭- 떨어졌다. 그동안 수십 개의 유럽 도시를 방문하면서 성당을 수도 없이 보았다. 개중에는 바티칸 대성당이나 피렌체 대성당 같은 유명한 성당도 많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어느 성당을 보아도 그리 큰 감흥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은 정말 처음이었다.


노트르담 드 랭스. 수도도 아닌 소도시의 성당이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이유는, 예로부터 왕의 대관식이 항상 이곳에서 치러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1211년에 지어지기 시작했다는 랭스 대성당은 그 명성에 걸맞게, 누구라도 경탄할만한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역사 속 바로 그 장소에서


프랑스 역사에서 랭스 대성당이 가지는 의미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이 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러야만 공식적인 황제로 인정받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잉글랜드와 백년전쟁을 벌이며 영토를 뺏고 뺏기던 당시, 샤를 7세는 잔다르크의 활약으로 랭스를 탈환한 이후에야 왕이 될 수 있었다. 만일 이 성당이 아니었다면, 랭스는 역사의 중심지가 아닌 그저 소박한 소도시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성당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직전까지만 해도, "노트르담 드 파리를 두고 왜 여기까지 와서 대관식을 했대? 자동차도 없이 왕을 여기까지 모셔오려면 측근들은 고생 깨나 했겠군." 같은 농담을 했었다. 그러나 이 풍경을 직접 보고 나니 왜 이곳이어야만 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리기에 이보다 적합한 곳을 찾기는 어려울 터였다.


성당의 정면이 경이로울 정도로 섬세했다면, 그 내부는 고요함과 화려함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38m에 이르는 거대한 기둥과 찬란한 빛으로 공간 전체를 감싸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 그중에서도 작은 도시의 성당에 와서 역사 속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파리만 보고 돌아갔다면, 정말 아쉬울 뻔했어." 속삭이는 내 말에 M이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느릿느릿 성당을 거닐며 샤갈이 직접 디자인했다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잔다르크에게 바쳐진 작은 예배당, 화려한 창문들까지 둘러보았다. 이토록 멋진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게 괜스레 아쉬웠지만, 아직 봐야 할 것이 많았다. 고개를 돌려, 성당 중앙에 있는 길 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구름이 걷히고, 오후의 햇살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추었다. 문을 향해 걸어 나가는 얼굴 위로 붉고 푸른빛이 일렁였다. 역사 속 인물들이 왕이 되어 가장 먼저 걸었을 바로 그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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