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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Dec 30. 2023

프랑스 시골에서 5만 원짜리 숙소를 예약했더니!

낡고 수상한 숙소의 정체


여행을 계획한다는 건 끊임없는 선택을 거쳐 자신만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돈인지 시간인지, 체력인지 경험인지. 물론 저렴하고 효율적이면서도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중 최선의 옵션을 찾아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인터넷을 뒤지는 방랑자였다.




가성비 여행의 시작


여행을 계획할 때, 숙소만큼 중요한 건 드물다. 위치를 어디로 잡느냐, 얼마나 편안하게 쉴 수 있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여행메이트인 M과 나는 이 부분에서 의견이 잘 맞는 편인데, '일단 저렴한 게 우선이다'라는 게 우리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걸 성향이라고 봐야 할지, 통장 잔고와의 원만한 합의라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소도시 여행을 계획하면서 접한 한 가지 희소식은 파리를 벗어나는 순간 숙박비가 놀라울 정도로 저렴해진다는 거였다. 적은 돈을 내고도 쾌적한 숙소에서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앞서 포르투에서 캐리어 펼 자리조차 없는 호텔에서 일주일이나 묵은 경험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번 '여행 속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의견이 갈리는 일이 발생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탐색하던 나에게 M이 뜻밖의 제안을 한 것이다. "이 숙소에서 묵는 건 어때? 5만 원밖에 안 해."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M이 내민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여행은 도전이니까


내가 태어날 때쯤에 찍은 사진도 이보다는 화질이 좋을 것 같았다. 감성 넘치는 숙소가 주를 이루는 에어비앤비의 특성을 생각하니, 사진 속 으스스한 숙소가 더더욱 의아하게 느껴졌다. "사진이 이게 다야? 많이 낡아 보이는데..." 내 말에 M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덧붙였다. "위치도 관광지랑 가깝고, 호스트가 엄청 좋은 사람이래. 한국인 리뷰도 있어."


쾌적하고 넓은 신식 숙소를 보고 있던 참이기 때문에 썩 내키지 않았다. 집주인과 함께 지내는 개인실이라는 점, 이 사진만으로는 방이나 집의 구조조차 제대로 알아내기 힘들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1박에 5만 원이라니. 믿기 힘들 정도로 저렴한 금액이긴 했지만, 비용을 아주 조금만 더 얹으면 조금 좁더라도 깔끔한 집을 통째로 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심쩍다는 표정을 짓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M이 리뷰를 몇 개 읽어주었다. 약간 으스스하기까지 한 사진과는 다르게, 리뷰는 칭찬일색이었다. '호스트가 태극기를 흔들며 마중을 나와주었어요!', '위치가 최고예요. 정말 편하게 지내다 갑니다!' 같은 말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나는 M에게 설득당해 낡고 으스스한 숙소를 예약했다. 하루 정도 불편한 곳에서 자게 되더라도,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멋진 사람과의 만남, 그것 하나만으로도 멋진 여행이 된다는 지난날의 경험을 믿어보기로 했다. 여행은 도전이니까.




동화 속 시골마을을 향해서!


샴페인의 도시, 랭스를 떠나 프랑스의 동쪽 끝에 있는 콜마르로 향했다. 콜마르에 가는 건 내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어릴 적 우연히 이곳의 사진을 마주친 뒤,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사진 속의 콜마르는 마치 꿈속에서나 존재할 것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자동차에 올라 동화 속 시골마을로 향하고 있자니, 들뜨는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모습을 마주한 순간,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마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찰나였다. 붉은빛을 잔뜩 머금은 도시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따뜻한 공기가 내려앉은 골목에는 누구 하나 서두르는 사람 없었고, 맑은 새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도 그 정적을 깨지 않기 위해 조용히, 천천히 걸었다.




용감한 여행자의 행운


도시의 풍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이제는 우리가 예약한 숙소를 마주해야 할 때였다. 으스스한 사진 한 장만 보고 용기 내어 예약했던 바로 그 낡은 숙소를! 우리는 전달받은 주소로 향했고, 건물 앞에 도착해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채팅을 남겼다.


몇 분 , 얇은 스웨터를 입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손에 자그마한 태극기가 들려있었다. 그는 자신을 쟝-피에르라고 소개하면서, 프랑스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라며 웃었다. 각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을 반겨주기 위해 50여 개의 작은 국기들을 준비해 두었다고 했다.


꽤 오래된 아파트라서 그런 건지, 무거운 철문을 3번이나 지난 끝에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는 거실과 주방, 이쪽은 욕실이야. 나도 함께 쓰는 곳이니 왼쪽에 있는 수건을 쓰면 된단다." 인자한 말투에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자, 그리고 여기가 침실이지."



침실은 사진과는 다르게 꽤 넓고 아늑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예약할 때 봤던 사진과 같은 곳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기뻐하는 우리의 표정에 그도 씩 웃었다. 짐을 풀고 나오면 더 많은 걸 안내해 주겠다는 호스트의 말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M에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좋은 집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M 역시 과감했던 본인의 선택이 옳았음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용감한 여행자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아주 소소한 선물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어비앤비 홈페이지 속 으스스한 사진의 원인은 바로 구매한 지 10년은 된 것 같은 쟝 피에르의 스마트폰이었다. 게다가 일흔이 훌쩍 넘은 그는 사진 찍는 일에 서툴렀다. 이렇게 아늑하고 포근한 방이 귀신의 집 같은 모습으로 올라와 있었다니, 안 될 일이었다.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해 준 그에게 소소하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내가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 정성스럽게 방과 욕실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주방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쟝에게 다가가 보여주었다. "이 사진으로 바꾸면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예요.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실제 모습이 훨씬 멋지잖아요!"


우리에게 줄 웰컴드링크를 준비하고 있던 쟝은 예상치 못한 선물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에어비앤비에 올라가 있는 사진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으스스한 사진은 우리가 찍은 포근한 방 사진으로 변경되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주저 없이 이 숙소를 선택하겠지! 아주 소박한 선물이지만, 기뻐하는 그를 보니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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