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세상사 정도는 꿰고 있을 줄 알았다. 각종 시사·경제 뉴스를 줄줄 읊고 나의 견해를 수려하게 밝히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어른 아닐까 생각하면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되리라 수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으로 들어가면, 방대한 양의 뉴스가 쏟아진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 기능이 사라진 지 오래이니 분야별로 중요한 이슈를 직접 찾아봐야 하는데, 수많은 분야의 기사를 모두 확인하려니 귀찮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게다가 내 취향은 아직 그리 성숙하지 않아서, 글로벌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었다는 소식보다는 나의 최애인 아이유가 새 작품으로 돌아온다는 기사가 훨씬 더 눈에 띄었다.
어느 날부터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저 재미만 좇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자각이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이대로라면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어떠한 발전도 이루지 못한 채 "손예진 현빈 부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더라, 시간이 참 빨라. 분명 잘생겼겠지. 데뷔할 생각은 없을까?" 뭐 이런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이야기만 온종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행복하고 즐거운 소식만 읽어대는 건 분명히 사회적 존재로서의 퇴보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의 귀찮음을 얕잡아봤다
그래서 결심했다. 뉴스레터를 구독하기로. 알아서 뉴스를 요약해 보내주는 요즘 같은 세상에 뉴스레터 서비스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날부로 몇 개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찾아내 구독을 눌렀다. 매일 그날의 주요 뉴스를 요약해 보내주는 뉴스레터, 사회의 트렌드를 알려주는 뉴스레터, 책을 추천해 주는 뉴스레터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직접 손품을 팔지 않아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으니 정말 편리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 어떤 편리함도 나의 귀찮음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 뉴스 읽는 걸 미루게 되어 뉴스레터를 구독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뉴스레터 읽는 것을 미루기 시작했다. 메일함에 자꾸만 뉴스레터가 쌓여갔다. 어떤 날에는 클릭해보지도 않고 삭제를 누르기도 했다. 좋아하지 않는 일에 힘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까?
중요한 소식을 쉽고 간편하게 정리해 주는 뉴스레터들은 분명 편리했지만, 언제부턴가 뉴스레터를 읽는 것조차 업무 메일을 읽듯 무겁게 느껴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쏟아지는 업무 메일을 읽고 나면 뉴스레터를 읽을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 이게 전부 다 내 탓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게으름은 현대 사회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증상이니까.
게으를수록 취향을 알아야 한다
게으르니스트는 주류에 매몰되기 쉽다. 남들이 좋다니까 그냥 물건을 구매한다거나, 콘텐츠를 소비할 때 알고리즘만 따라가는 게 그 예시다. 모든 걸 비교해 본다거나 새로운 걸 찾아 나서는 건 분명히 힘든 일이다. '선택'도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뉴스레터를 구독하게 된 흐름도 그와 비슷했다. 포털사이트에 '뉴스레터 추천'을 검색해서 '갓생러 필수 뉴스레터 BEST5!' 같은 글을 읽고, 어떠한 판단도 없이 고스란히 따라 구독했다.
내가 '귀찮아서 구독한 뉴스레터마저 귀찮아하는' 귀찮음의 굴레에 빠지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명 그 시작에는 발전을 향한 열망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 나의 취향은 빠져있었던 것이다. 내 판단으로 구독을 누른 것이라 착각했지만, 사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좀 알아야겠다는 의무감과 기사를 하나씩 찾아 나서기 싫다는 귀찮음이 섞여 내린 선택일 뿐이었다. 쏟아지는 업무 메일 사이에서 톡톡 튀는 뉴스레터를 보고 반가워하는 그런 이상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또 하나의 미룰거리를 탄생시키는 데 그쳤다. 하루에 뉴스레터가 2개씩 온다고 치면, 평일 5일 동안만 안 읽어도 10개가 쌓이는 것이다. 이 정도면 뉴스레터가 아니라 뉴스테러 아닐까.
'완벽한 읽기'에 관한 허상
결국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일단 수많은 뉴스레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두어 개를 남기고 모두 해지했다. 그리고 모든 내용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눌러 한번 둘러보고 나오는 식이다. 그중 관심 가는 이슈가 있다면 더 다양한 기사를 직접 찾아본다. 그렇게 방식을 바꿨더니, 오히려 완벽하게 정독하려 애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뉴스레터를 통해 시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쌓이니, 포털사이트에 뜨는 뉴스를 이해하기도수월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뉴스레터를 읽는 날보다 직접 기사를 찾아 나서는 날이 많아졌다. 한 걸음 성장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귀찮아서 구독한 뉴스레터마저 귀찮아졌을 땐, 정말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대체 어디까지 게으름을 부릴 작정인지 나 자신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타고난 에너지가 이 정도뿐인 걸. 자책은 이제 그만두고 조금씩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찾기로 했다. 게으른 사람도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