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최소한의 갓생을 향하여
가끔은 내 게으름이 통제하기 어려운, 마구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 나의 이성이 "쓰읍, 소파에 눕기 전에 옷도 걸고 손도 씻어야지!"라고 말하면, 게으름이 튀어나와 "시러시러! 그냥 누워버릴 거야!"라고 횡포를 부리는 식이다. 그럴 때는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이솝 핸드워시를 (네 돈으로) 사뒀잖니. 그리고 어서 씻고 나와야 맥주 한 잔 하며 넷플릭스를 보지."라며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아이를 달래며 회유하듯, 나 자신을 끊임없이 달래 가며 성취하는 것이다.
모두가 갓생을 외치는 이 시점, '나도 갓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운동이든 자기계발이든, 뭔가 하나는 해야 하지 않을까?'싶은 묘한 압박감을 가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기 싫은 일이 있다. 게다가 게으른 사람일수록 하기 싫은 일의 종류도 많다. 하기 싫음의 정도도 강하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고 싶을 뿐인데,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흐르는 탓에 나만 같은 자리에 고여있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프로 게으르니스트'로서, 최소한의 품만 들이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게으름에 매몰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달래는 스킬도 생겼다. '게으름학'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분명 박사가 되었을 것이다.
진정한 게으르니스트에게 '그냥 얼른 하면 되지.' 같은 건 아예 없는 말이다. 하나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엄연히 과정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냥 하면 된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일까? 가벼운 조깅을 해야 한다고 치자. 만약 당신이 여성이라면, 입고 벗는 것만으로도 스포츠라고 불리는 스포츠 브라를 입어야 한다. 그 위에는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 끈도 단단히 묶어야 한다. 그리고 문을 열어 춥거나 덥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외부로 나가야 한다. 다녀와서는 분명히 샤워하고 운동복을 모두 빨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 없이 몸부터 움직일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침대 안은 이렇게나 포근하고 이불 밖은 저렇게나 위험한데 말이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위의 사실을 털어놓으면 의아해한다. "왜? 그냥... 하면 되지 않아? 그렇게 고민하고 괴로워할 시간에 해치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들은 우리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우리와 평생을 함께 살 친구 같은 거라고 이야기해도 알아들을 턱이 없다. '흠... 나는 그런 친구 없는데?'라고 생각할 뿐이다. 우리가 침대 안에서 꾸물거리면서 따스함을 즐기는 동안, 그들은 열심히 달리고 잠을 줄이고 승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 정말이지 재수 없고 대단한 족속들이다.
게으르니스트에게 '그냥 하기' 같은 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덜 귀찮아할 방법은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나 즉시 실천하는 경지에 이르기는 어렵더라도 '하기 싫어 죽겠음'을 '하기 싫음'으로 바꾸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스스로 눈치를 보면서 귀찮음의 요소를 줄여나가야 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도움이 된다.
앞선 글에서 '침대에 누워서도 가능한 공부법'을 찾다가 어플로 어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걸 이미 밝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있든 소파에 엎어져있든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거다. 이럴 땐, <거부감 중화하기> 전략이 효과적이다. <거부감 중화하기> 전략이란 내가 영어공부 습관을 들일 때 사용한 방법으로, 좋아하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을 연결 지어 감정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가 시간에 쉬엄쉬엄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튼다. 보다 보면 분명 지루해지는 장면이 온다. 그럴 때 잽싸게 핸드폰을 들어서 어플로 잠시 영어공부를 한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때는 다시 TV에 집중한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어플을 켜면, 적어도 출석에는 성공한 셈이다. 접속한 김에 단어 한 개라도 읽게 되는 건 덤이다. 처음에는 너무 산만한 것 아닌가 싶겠지만, 처음부터 공부에 엄청나게 집중하겠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며칠 연속으로 어플에 출석하는 데 성공하면 묘한 성취감이 드는데, 습관의 시작은 이 성취감에서 온다.
사실 <거부감 중화하기> 전략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면서 사이클을 타거나 러닝머신을 뛰는 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장면이 나올수록 페달을 돌리는 내 다리는 점점 느려진다. 극의 하이라이트에서는 어느새 멈춰서 입을 벌린 채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귀찮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멀티를 해보려다 그중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이럴 때는 몸을 자동화하는 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실내 사이클을 탈 때 유튜브에 '인터벌 사이클'을 검색한다. 수많은 유튜버의 영상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내가 보는 드라마와 같은 길이의 영상을 고른다. 드라마에 집중해 두 발이 느려질 때쯤이 되면, 영상 속 목소리가 나를 일깨워준다. '3초 뒤부터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3... 2... 1!!!!!' 포인트는 아무 생각도 없음에 있다. 머리를 비우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강제성을 부여하는 셈이다.
한 번은 줄넘기 다이어트에 도전한 적 있었다. 보통 줄넘기를 할 때는 하루에 1,000개, 하루에 3,000개처럼 횟수를 정해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국민줄넘기라고 불리는 김수열 줄넘기를 사서 집 밖에 나가 열심히 돌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첫날만 꾸역꾸역 줄넘기 1,000개에 성공했을 뿐, 다음날부터는 집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자꾸만 줄이 발에 걸리는 것도, 몇 개까지 세었는지 까먹는 것도 짜증 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줄 없는 줄넘기를 샀다. 무게 추가 달려있어 손잡이만 잡고 펄쩍펄쩍 뛰면 되는 제품이었는데, 몇 번이나 추가 돌아갔는지 횟수도 알아서 세어준다. 덕분에 줄이 꼬이는 불편함도, 속으로 숫자를 세는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줄이 없으니 실내에서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이렇게 나의 귀찮음을 줄여줄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과감하게 선택해야 한다. 습관을 들이기까지 장애물을 최대한 제거해 주는 것이다.
어느새 몸은 훌쩍 커버렸는데, 나의 게으름은 도무지 성장할 기색이 없다. 언제나 한결같은 태도로 '시러시러!'를 외치는 내면의 목소리가 가끔은 지긋지긋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도 내 성향인 것을. 게으름을 잘 관리하며 데려가는 건 내 평생의 숙제가 될 듯하다. 오늘도 게으름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조금씩 습관을 쌓아간다.
"가끔은 내 게으름이 통제하기 어려운, 마구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