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단단한 지지를 통해 자존감을 쌓았어야 했던 그때의 잘못
일본은 한국만큼이나 체면과 실적, 인정에 대한 강박으로 괴로워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사람이 많습니다. 오타 하지메는 촉망받는 신입 사원을 자살하게 만드는 인정 욕구를 10년 간 연구해 “인정 욕구의 강박(주: 일본어 원제)”이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돈이나 명예 같은 보상에 좌우되는 외재적(external) 동기가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는 기쁘고 뿌듯한 마음에서 오는 내재적(internal) 동기를 지니고 살아야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호사가 환자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행복해지듯, 우리의 내재적 동기 또한 본질적으로 타인의 인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겁니다.
돌아보면, 내가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결과를 산출한 일은 의당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유독 강했습니다. 혹여 중간에 실수를 하더라도 나의 본질인 열정과 순수함을 사람들이 알아 주리라, 그래야 정당하리라 믿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필요나 욕구를 표현하겠다는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여 해석하고 싹을 꺾는 게 야속하고 미웠습니다.
참을 수 없던 때면 SNS에 여과 없이 감정을 쏟아 냈고 그럴 때마다 비난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몇 년 간 관계와 팬덤을 쌓아 왔던 사람들 수십 명에게 차단당하기도 여러 번이었어요. 사이버 불링(익명 댓글 등을 통한 인터넷 폭력)은 저에게 지금도 큰 정신적 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학교 밖 성인"이었던 저는, 몇 번 서브컬처 커뮤니티에서 전쟁을 겪고 피 흘리며 쫓겨 나오기를 반복하며, 학교 밖 세상에서 저의 위치를 확고히 잡는 데마저 실패했습니다. 이 실패로부터 제가 얻은 것이요?
"미움받을 용기"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죠.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하면 행복할 수 없으며 때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평범하게 행동할 결의를 가지라는 교훈의 책입니다. 제게는 그 용기가 없었고 과거에 미움을 샀던 일들을 만회하려고 했습니다. 아니 만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제가 과거에 이런 활동들을 했기 때문에 저만의 특별한 가치와 퍼스널 브랜드가 형성되었음을 증명하려고 했죠.
2018년 여름, 서브컬처 소비자들을 타깃 고객으로 하는 온라인 패션 편집샵을 2년 반 운영 끝에 폐업했습니다. 최근, 저의 사업가 시절부터 열성팬이자 좋은 지지자였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가슴 아파하는 저에게, 친구는 사업가이던 시절의 제 모습을 "자아를 실현하던 모습"으로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을 누구보다 성공적인 사업 모델로 추구하던 모습만을 예전에는 보여주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자아를 실현하던 게 아니었습니다. 밑바닥 취미 생활이라고 나를 하찮게 질 낮은 사람으로 여기고 비웃거나 실망했던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걸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정신의 승리를 위한 인정의 무대에 제일 먼저 초대했던 관객이 부모님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마루에서 틀어놓고 보고, 덕후스러운 패션 아이템을 함께 오픈 마켓에서 고르고, 파격적인 록을 연주하는 밴드 공연에 초대했습니다. 사업자를 내고 직원을 뽑고 사무실을 얻고 스타트업 행사들에 대표 연사로 불려 다니며 제 마음속에는 늘 “보고 있죠 어머니?”라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한 때 가족에서 걱정하던 질 낮은 취미였을지 몰라도 이제는 대기업 다니는 자식만큼 돈도 벌고 대외적인 인정도 받게 해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제 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죠.
사업까지 일으키며 편견을 허물고 인정을 받으려 했습니다만, 부모님은 본질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주 작은 허물만으로도 고정관념이 신속하게 조립이 되었습니다. 편견이 있는 사람에게는 대부분의 사건사고들이 가치 편향적으로 해석이 됩니다. "날씬하지도 않은 네가 유아스러운 옷이나 입으니 쇼핑몰이 잘 될 리가 없냐”라든지, "너 같은 유리멘탈이 고객 대응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들은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나 폐업을 준비할 때나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번밖에 오지 않을 20대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전혀 칭찬의 말을 꺼내지 않을 타인들이 나를 어떻게든 다시 보게 만들려는 데 정력과 시간을 쏟았습니다. 그 시간에 제가 어떤 것을 잘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에 대해 정립하고, 주변의 미움과 핀잔과 조롱을 견딜 힘을 길렀어야 했습니다.
너무 서로가 달라 저를 이해하고 싶지 않은 비난자들은, 조금만 삐끗해도 제가 쏟은 열정을 조롱하고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이 입은 대미지는 실제로 쏟아졌던 공격의 10배, 50배, 100배였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중대한 잘못을 했는지와 상관없이요. 왜냐면 비난자들 눈 앞에 완벽한 철옹성이어야 할 제 브랜드의 아성인데, 한 번 방어선이 무너졌으니 내면 속 의지력이란 이름의 병사들은 모두 자멸한 겁니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허황된 노력을 할 게 아니라, 미움에 초연해지고 누가 뭐래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며, 믿음을 심어주고 힘들 때 도움을 받았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