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른 게 행복했던 시절

by Team Localinsa



“저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어요”

대학 시절 첫 집단 심리상담, 한 번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서 저는 모두에게 저렇게 발표를 했습니다. 당시 매일 듣고 불렀던 노래 중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의 주제가 'Reflections'가 있습니다. 이 노래의 페르소나는 진정한 자아는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구글 검색 없이 단숨에 써 내려갈 수 있는 이 곡의 가사를 보면, 당시의 저는 나라를 구한 여장부 뮬란처럼, 사회적 표준을 따르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면을 쓰고 자신과 타인을 대해야 하는 세상 법칙을 따를 마음이 없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집니다.


Why must we all conceal what we think, how we feel
Must there be a secret that I'm forced to hide
I won't pretend that I'm someone else for all time

(내 마음속 생각을 왜 언제나 숨겨야만 하지?
감춰야 하는 비밀이란 게 꼭 있어야만 하나?
매 순간 진짜 내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인 양 행세하지는 않겠어)


dependy_02.jpg Photography by Ruriring (c) 서은


2010년대 초반에는 한 번 사는 인생, 자신의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는 기조가 청춘들 사이에 들불처럼 유행이었습니다. (지금은 청년 누구도 쓰지 않는) 욜로(Yolo)라는 말, "인생은 한번이다"라는 말이 Drake의 더 모토 (The Motto)라는 곡을 통해 유명세를 탔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 월드비전에서 한국인으로 존재감을 날린 한비야,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김난도 등이 당시 청년들의 롤모델과 멘토로 추앙받던 때였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2011년 봄, 저의 "욜로"는 무엇이었던가요?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정말 꼭 하고 싶은 일이자 안 하면 후회할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는 보통 과거에 가장 가슴 뛰고 재밌고 즐거웠던 순간으로 생각의 태엽이 감기게 됩니다.


저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즐거웠던 순간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갑니다. 당시 여중생들은 원피스, 나루토 같은 일본 만화를 반 친구들과 돌려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보통 또래들 하는 이야기나 취미에는 관심이 없고 일본 만화 팬덤에 빠져드는 무리가 생겼는데 저도 거기 속해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만화 대여점을 들러 새로 나온 단행본을 붙잡고 읽으며 집에 갈 때의 재미와 흥분은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더라도 좀처럼 재현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중학생 때를 기점으로 어딘가는 좀 특이한 사람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파견근무 발령이 난 아버지를 따라 가족 전체가 미국에 일 년 남짓을 살았는데, 이때 미국 또래들의 두발이나 패션 등 개성의 자유로운 표현, 간섭당할 수 없는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등은 어린 저에게 큰 충격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성장 과정을 거치며, 언제부턴가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한 동경과 열망을 품게 된 것 같습니다. 개성과 취향 방출이 극히 제한되는 고교 시절에는 소소한 일탈을 일삼았습니다. 수능 일주일 전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장편소설을 잡고 읽는다거나 전교생 누구도 신지 않는 니삭스를 신고 학교에 가기도 했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학칙에 불응하면서 일부 보수적인 교사들을 적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공부만 잘 하는 전형적인 전교 일등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걸 즐겼습니다.


대학교에 가고 나서도, 학점이라든지 인맥 만들기, 교내외 활동 등은 관심 밖이었습니다. 학교수업은 철저히 형식적으로 가며 3년이 지나도록 학과 친구 한 명 친한 교수님 한 명 없었습니다. 친구 한 명 없던 수업 하나를 어느 날 출석했더니 그 날이 중간고사여서, 백지로 제출하고 그 날로 전공필수 과목을 '드랍'(수강취소)했다는 걸 자랑인양 생각했습니다. '아싸'인 스스로의 이미지를 즐겼습니다.


DSC02813.JPG Photography by Ruriling (c) 서은


저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위 문화(서브컬처)에 있었습니다. 향락적, 일탈적 문화를 동경하며, 코스프레나 로리타 패션, 사진모델 같은 반주류적인 패션과 취미, 삶의 양식을 즐겼습니다. 모바일 게임이나 뮤지컬에 몇 년 간 심취했고, 코스프레를 시작으로 밴드 피아노, 보컬, 사진모델에 이르기까지 7년 남짓한 시간을 쏟았습니다. 사진 취미 작가, 게임 개발자, 코스튬 플레이어, 음악계 사람들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친해졌고 거의 매일 밤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겨우 몇 년 사이에 1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혔고 100벌이 넘는 코스튬을 샀으며 200시간이 넘게 한 게임 캐릭터를 플레이했습니다.


그 때의 저는 학교 밖 성인이었으며, 그 이미지가 주는 쾌감을 즐겼습니다. 주류에서 벗어난 대안적인 활동들을 즐기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나만이 즐길 수 있는 둘도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안일하고 달콤한 로맨스이자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맛의 이상이라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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